나를 사랑하는 친구들 대여섯 명과 함께 수업을 빼먹고 솔숲 뒤에 있는 늪 언저리에 드러누워여학생 이야기를 하거나, 다들 기모노를 걷어 올리고 거기에 어렴풋이 자라기 시작한 털을 서로 비교하며 놀았다. - P42
우리들 오른쪽 새끼발가락에는눈에 보이지 않는 빨간 실이 묶여 있는데, 술술 길게 내뻗은그 실 한쪽 끄트머리는 반드시 어떤 여자아이의 같은 발가락에 묶여 있다. 두 사람이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그 실은 끊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가령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그 실은 엉키는 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여자아이를 신부로 맞이하도록 되어 있다. - P57
"아부지." 스와는 아버지 뒤에서 불렀다. "아부진 와 사는가요?" - P78
"모르겠는기라." 스와는 손에 들고 있던 참억새 잎을 씹으면서 말했다. "뒈지는 편이 좋은긴데." - P79
"그런기라 그런기라." 스와는 그런 아버지의 흐리멍텅한 대답이 하도 어처구니가없어, 참억새 잎을 퉤퉤 내뱉으며, "바보, 바보!" 하고 소리쳤다. - P79
추석이 지나 찻집을 거두고 나면 스와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시작된다. - P79
즉 그때까지의 스와는 콸콸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많은 물이 떨어지면 언젠간 꼭 없어져 버릴 게 틀림없어, 하고 기대하거나, 폭포 모양은 어째서 이렇듯 늘 똑같을까? 의아해하곤 했다. 그런데 요사이, 조금 생각이 깊어졌다. 폭포 모양은 결코 똑같지 않다는걸 발견했다. 물보라가 튀어오르는 모양이건 폭포의 너비건 눈이 어질어질하게 바뀌고있다는 걸 알았다. 마침내 폭포는 물이 아니야, 구름이야, 이것도 알았다. 폭포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하얗게 뭉게뭉게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아 그렇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물이이토록 하얘질 리가 없지, 라고 생각했다. - P77
초겨울 찬바람에 아침부터 산이 험해지면서 오두막에 내건 거적이 둔탁하게 흔들리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마을로 내려갔다. - P80
밤이 되자 바람이 그치고 으스스추워졌다.이렇듯 묘하게잠잠한 밤엔 산에서 어김없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산도깨비가 거목을 베어 넘어뜨리는 소리가 우지끈 들리거나, 오두막 - P80
입구에서 누군가 팥을 씻는 듯한 소리가 사그락사그락 귓전을울리거나, 먼 데서 산사나이의 웃음소리가 또렷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 P81
그러고 나서 머지않아 옥사했다. 하책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100
눈보라 소리 나를 부른다
바람 소리겠지. 나는 거침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갇혀 있는 나를 부른다 - P103
1896년 6월 중순, 런던박물관 부속 동물원 사무소에, 일본원숭이가 도주했다고 보고되었다. 행방불명이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두 마리다. - P111
옛날 옛날 이야기 들려줄까나. 산속에 상수리나무 한그루 있었어. 나무 꼭대기, 까마귀 한 마리와서 앉았어. 까마귀 까악 울자 상수리 하나 톡 떨어졌어. 또, 까마귀 까악 울자 상수리 하나 톡 떨어졌어. 또, 까마귀 까악 울자 상수리 하나 톡 떨어졌어. - P112
회화는 포스터에 불과하다, 라면서 히다를 풀죽게 만들었다. 모든 예술은 사회의 경제기구에서 나온 방귀다. 생활력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걸작이건 양말과똑같은 상품이다. - P122
‘여기를 지나 공몽의 늪‘ 1) 이슬비가 많이 내리거나 안개가 짙게 끼어 보얗고 자욱함. - P125
"사상이야, 이봐, 마르크시즘이야." 이 말은 어리숙해서 좋다. 고스게가 그렇게 말했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하고, 우유 잔을 고쳐 잡았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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