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359
사양
斜陽
다자이 오사무 유숙자 옮김
"나는 확신하련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 생전에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작품
민음사 - P1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본명은 쓰시마 슈지.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기로 태어났다.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부라는 사실에 편생 동안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는 도쿄제국 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후 동안 좌익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30년 연말 나나베 아쓰미와 투신 자살을 기도했으나 홀로 살아남아 자살 방조죄 혐의를 받고 기소 유예 처분되었다. 1935년 맹장 수술을 받은 후 복막염에 걸린 그는 진통제로 사용하던 파비날에 중독된다. 같은 해에 소설 「역행」을 아쿠타가와 상에 응모하나 차석에 그친다. 그는 이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야스나리에게 항의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듬해 파비날 중독을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데, 자신의 예상과 달리 정신 병원에수용되자 크나큰 심적 충격을 받는다.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그의 작품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특히 발표 당시 ‘사양‘이라는 유행어를 낳을 만큼 일본 사회에 일대 파문을 일으킨 작품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 생전에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대표작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와 시대를 관통하는 성찰을 엿볼 수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1948년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 수원지에 투신해, 생애 다섯 번째 자살 기도에서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 P1

옮긴이 유숙자
계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일어일문학 전공)에서 연구과정을 마쳤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받았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한국어센터 강사로 있다. 지은 책으로 
『재일(在日)한국인 문학 연구』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  『옛이야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손바닥 소설』,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  『유리문 안에서』,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오에 겐자부로의 『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쓰시마 유코의 『나』, 김시종의 『경계의 시』, 
데이비드 조페티의 『처음 온 손님』, 
사토 하루오의 『전원의 우울』,  가와무라 미나토의 『전후문학을 묻는다』 등이 있다. - P1

표지 그림 알렉스 캐밍커, 여름 들판(아침) (2015)

"주먹밥이 어째서 맛있는지 아니? 그건 말이야, 사람 손으로 꼬옥 쥐어서 만들기 때문이란다." - P10

"가즈코, 엄마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맞혀 보렴."
"꽃을 꺾고 계세요."
내가 대답하자 나직이 소리내어 웃고는,
"쉬 했어" - P10

오늘 아침의 수프이야기에서 꽤나 빗나가고 말았지만, 요전에 어떤 책을 읽다가 루이 왕조 시절의 귀부인들은 궁전 뜰이나 복도의 구석진 데서 아무렇지 않게 소변을 봤다는 사실을 알고 그 순수함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는데, 우리 어머니도그런 진짜 귀부인의 마지막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 P11

동생 나오지는 대학에 다니다 징집되어 남방의 섬으로 갔는데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행방불명이라 어머니는 다시 나오지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각오하고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그런 ‘각오‘ 따윈 한 번도 한 적 없고 꼭 만날 수 있다는 생각뿐이다. - P13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저녁무렵, 정원 연못가의나무란 나무에 전부 뱀이 올라앉아 있던 모습은 나도 직접 봐서 알고 있다. 나는 스물아홉이나 먹은 할머니라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미 열아홉 살이었다. - P16

"가즈코가 있으니까, 가즈코가 곁에 있어 주니까, 내가 이즈에 가는 거야. 가즈코가 있어 주니까." 하고 뜻밖의 말씀을하셨다. - P22

나는 덜컥 놀라,
"가즈코가 없으면?" 하고 얼결에 물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죽는 게 나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집에서 엄마도 죽어버리고 싶어." - P22

아아, 돈이 없다는 건 얼마나 두렵고 비참하고 희망 없는 지옥인가, 하고 난생처음 깨달은 양 가슴이 미어지고너무나 괴로워 울고 싶어도울 수 없었다. 인생의 엄숙함이란이런 느낌을 말하는 걸까. 옴짝달싹도할 수 없는 심정으로 똑바로 누운 채 나는 돌덩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 P23

"무엇보다 공기가 좋아요. 아주 깨끗해요."
삼촌은 자랑했다.
"정말 그래."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맛있어. 이곳 공기는 맛있어." - P24

다음날, 마을의 명의가 이번에도 흰 버선을 신고 왔다. - P27

뱀 알을 태우는 경솔한 짓을 저지른 것도, 이렇듯 초조한 내 마음이 표출된 게 틀림없다. 단지 어머니의 슬픔을 더욱깊어지게, 어머니를 쇠약해지게 할 뿐이다.
‘사랑‘이라 썼다가, 그 다음은 쓰지 못했다. - P30

뱀 알을 태운 일이 있고 나서 열흘쯤 지나 불길한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어머니의 슬픔을 한층 깊어지게, 목숨을 옅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불을 내고 말았다. - P31

"별일 아니야. 어차피 장작은 불태우기 위한 거니까." - P35

작년엔 아무 일도 없었다.
재작년에도 아무 일 없었다.
그 전해에도 아무일없었다. - P39

"여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름에 죽는다는데, 정말일까?" - P45

"난 장미가 좋아요. 그런데 장미는 사계절 내내 피니까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봄에 죽고 여름에 죽고 가을에 죽고 겨울에 죽고 네 번이나 거듭 죽어야 해요?" - P45

그런데 한 가지 안 좋은 일이 있단다. 그분 말로는 나오지가 꽤 심한 아편 중독자가 된 모양이라고…………."
"또!" - P46

다른 동물과 본질적인 차이가 하나도 없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어머니, 딱 한 가지 있어요. 모르실 테죠? 다른 생물들에게는 절대로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것. 그건 바로 비밀이라는 거죠. 어때요?" - P52

생각하면 그 무렵이 우리 행복의 마지막 남은 불빛이 반짝이던 때였고, 그 후 나오지가 남방에서 돌아오면서 우리의 진짜 지옥이 시작되었다. - P53

아무래도 이젠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초조감. 이런게 바로 불안이라는 감정일까? 가슴에 고통스러운 파도가 몰아쳐 마치 소나기가 그친 하늘에 허둥지둥 흰 구름이 잇달아질주해 나가듯 내 심장을 옥죄었다 풀었다 하고, 맥박과 호흡이 흔들리면서 눈앞이 가물가물 어두워졌다. 온몸의 힘이 손가락 끝에서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에, 더 이상 뜨개질을 하고있을 수 없었다. - P54

나는 미처 몰랐다. 옷은 하늘빛과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는중요한 사실을 몰랐던 거다. 조화란 얼마나 아름답고 멋스러운가! 새삼 놀랐고 멍해진 느낌이었다. - P55

읽는 수백 년이라 하고, 그 꽃술 또한 전자가 최장 아홉 자(尺), 후자가 다섯 자 남짓이라는데, 오직 그 꽃술에 가슴 설렌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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