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코민테른은 서신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운동에대하여 지식인 중심, 파벌주의, 계급성의 결여, 사상의 혼잡성, 민중과 분리되어 있는 관념주의를 비판하며 조선공산당의 해산을 공식화했던 터였다. 따라서 신세대 활동가들에게는 과거의 선배들과다른, 활동 노선의 전환이 운동의 임무와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식인 사회주의자 몇몇이 모여 당 조직이라고 결성하여선포하는 게 아니라, 매개 활동가들이 노동자 농민의 삶의 현장에들어가 그들을 의식화하고 투쟁을 통하여 단련한 다음에 거기서부터 아래에서 위로 조직을 결성하여 당을 건설한다는 당연한 조직방침이었다. 193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형태의활동은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고 만주에서는 민족주의계의 무장투쟁이 차츰 사라지고 사회주의 계열이 중심이 된 무장투쟁이 - P239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일국일당주의 원칙에 따라서 중국에서 싸우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는 중국 당에, 일본에서는 일본 당에 흡수되어야 한다고 정해졌고, 식민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조선 땅에서 당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목전의 시급한 임무가 되었다. 국권을 빼앗겨 식민지가 된 나라에서 혁명을 할 토대마저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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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유는 일본에서 노동을 하면서 대학 전문부에 다녔고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서 활동하다가 검거되어 조선으로 압송되었다. - P240

그들은 문건을 만들어 북선 지방에는 우편을 통하여 보낸 다음그 지역 조직원이 다시 등사하여 평양 인근 공장들과 평북의 광산등지에 우편으로 송부했고, 전국 각지의 공장과 광산 신문지국 등에 발송하고 서울과 인천의 가두에서 수백매를 살포했다. 기관지의 이름은 콤뮤니스트‘였는데 내용은 반전투쟁의 전개, 소비에트동맹의 사수, 중국 홍군과 소비에트의 옹호, 제국주의전쟁을 일제 - P245

에 반대하는 민족해방전쟁으로 전환할 것, 조선의 절대 독립 등이었다. 삐라 격문은 ‘일본의 만주 점령에 반대하자!‘는 것과 ‘붉은5·1절‘이라는 두종류가 있었다. - P246

그는 제일차 조선공산당을 설립할 때에 화요파의 박헌영김단야 등과 함께 최연소 발기인에 들었다. - P246

신의주에서 비밀 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신의주의 청년 하나가 술이 만취하여 일본인과 싸우다가 자기가 공산당원이라고 호기 있게 소동을 벌였고, 일본 경찰은 그를 체포 문초하여 조선공산당의 전모가 드러나는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에 전국적으로 검거 선풍이 불어 김형선은 박헌영 김단야와 더불어 중국 상해로 탈출했다. 십이월테제가 나온 이래 중국 만주 일대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주체적으로 조선 국내에서 당을 재건하려는 입장을 국내 연장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두해에 걸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만주총국 일본총국이 해체되고 일국일당주의 원칙에 따라 각기 중국과 일본의 공산당에 흡수되었다. 이때에 김형선은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중국공산당 및 상해에 있는 모든 단체와의관계를 끊고 김단야와 제휴하여 조선에서 운동할 것을 명령받았다. - P247

활동가들에게는 이십사시간의 불문율이 있었다. 즉 체포된자는 고문을 받기 마련이며 그가 알고 있는 다른 동지들의 도피를위하여 최소한 하루를 버텨야 한다는 규칙이었다. 치안 당국도 그런 점을 알고 있어서 검거하자마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하여 쥐어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의고문을 가했다. 그 과정에서 무너진 자는 전향하여 적의 도구가 되거나 정신적인 불구가 되어 이탈자가 되었고, 끝까지 버텨내고 견딘 자는 몸이 망가져 옥사하지 않으면 살아남아 더욱 단련된 활동가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결국 조직이란 모든 약하고 외로운 개인들의 집합체였다. - P267

그녀가 평양을 거쳐 경성으로 와서 까페의 여급으로 일했던 것은 조직의 결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한여옥은 마치 태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던한 기생이나 다름없는 까페 여급 일을 능숙하게 치러냈다. 그녀는 술도 마셨고 손님들과 담화도 나누었지만 별다른 춘사는 벌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여옥은 그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었던 말라 죽은 나무 같은 여자였을까. 신금이의 회고에 의하면 ‘사랑을 받을 겨를이 없었던 가엾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신금이 할머니는 아들 이지산과 손자 이진오에게까지늘상 그렇게 말하곤 했다. - P283

"그 시절에 가엾은 여자가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지."
한여옥은 어둠 속에 눈을 감고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났고, 뒷마당으로 나가 함지에 물을 가득히 채워 목욕을 했다. 찬물이 머리에서 어깨로 그리고 아랫배와 허벅지로 흘러내렸다. 목욕을 하고는 방 안에 이부자리를 붙여서 깔고 누웠다. 베개도 나란히 붙여두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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