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합조개가
살아남아 비싸진
한 해 끝 무렵 - P278

흰 물고기
검은 눈을 뜬
진리의 그물 - P279

문학적 재능은
내려놓으라
깊이 보는 꽃 - P280

물이 불어나
별도 객지 잠 자네
바위 위에서 - P281

젖버섯아재비
아직 날짜 지나지 않은
가을의 이슬 - P282

송이버섯
찢어진 곳만큼은
소나무 모양 - P283

보름 다음 날 밤
적지만
어둠의 시작 - P284

나팔꽃이여
너마저 나의 벗이
될 수 없구나 - P285

나팔꽃 피어
낮에는 자물쇠 채우는
문의 울타리 - P286

달 보니 생각나네
가면을 쓰지 않고
연기하던 얼굴 - P287

가을바람에
꺾여서 슬프다
뽕나무 지팡이 - P288

보았는가 그
이렛날 무덤 위의
초사흘 달 - P289

흰 이슬도
흘리지 않는 싸리의
너울거림 - P290

국화 한 송이
피어 있네 석재상
돌들 사이 - P291

국화꽃 지면
흰 무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 P292

이슬 한 방울도
엎지르지 않는
국화의 얼음 - P293

첫 겨울비
내가 처음 쓰는 글자는
첫 겨울비 - P294

잎 등지고 핀
동백나무의 꽃
냉정한 마음 - P295

갖고 싶어라
자루 안에 있는
달과 꽃 - P296

아이 싫다고
말하는 이에게는
꽃도 없어라 - P297

살아 있는데
한 덩어리로 얼어붙은
해삼들 - P298

일 년에 한 번
소중하게 뜯는
냉이풀 - P299

눈 그친 사이
연보랏빛으로 돋는
땅두릅나물 - P300

매화 향기에
불쑥 해 나타나는
산길 - P301

매화 향기에
가던 발길 돌리는
겨울 추위여 - P302

박쥐여 너도
나오라 이 세상의
새와 꽃으로 - P303

봄비 내려
벌집 타고 흐르네
지붕이 새어 - P304

봄날 밤은
벚꽃에 밝아 오며
끝이 나누나 - P305

나비와 새도
들떠서 나는구나
꽃구름 - P306

봄비 내리네
쑥 더 길게 자라는
풀길을 따라 - P307

춥지 않은
이슬이구나
모란꽃 속의 꿀 - P308

나무에 가려
찻잎 따는 이도 듣는가
두견새 울음 - P309

수국 피었네
덤불처럼 별채의
작은 앞뜰 - P310

보리 이삭을
의지해 부여잡는
작별이어라 - P311

여름 장맛비
누에는 뽕나무 밭에서
병이 들었다.
- P312

휘어져서
눈 기다리는 대나무의
모양새 - P313

여름 장맛비
하늘을 불어 떨어뜨려라
오이 강 - P314

일생을 여행으로 써레질하며
작은 논을
가고 오는 중 - P315

오징어 파는 이
목소리 헷갈린다
두견새 울음 - P316

흰눈썹뜸부기
운다고 말하길래
이곳에 묵네.
- P317

이 집 대문은
흰눈썹뜸부기도
모르겠구나 - P318

볼만하구나
폭풍우 지난 후의
국화꽃 - P319

맑고 시원한
계곡물에 말아 먹는
우무묵 - P320

사발 그릇도
희미하게 보이는
초저녁 상쾌함 - P321

번개가 친다
얼굴은 어디인가
참억새 이삭 - P322

좁은 오솔길
씨름풀 꽃에 얹힌
이슬방울들 - P323

수국 피었네
삼베옷 입을 무렵
옅은 연두색 - P324

선뜩선뜩한
벽에다 발을 얹고
낮잠을 자네 - P325

가을 다가와
마음 기대게 되네
다다미 넉장 반 - P326

일가족 모두
지팡이에 백발로
성묘를 간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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