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차 마시는
승려 고요하다
국화꽃 피고 - P230

병든 기러기
추운 밤 뒤처져서
길에서 자네 - P231

초겨울 찬 바람
볼이 부어 쑤시는
사람의 얼굴 - P232

겨울비 내리네
논의 새 그루터기
검게 젖도록 - P233

말린 연어도
고행 승려도 마른
한겨울 추위 - P234

돌산의 돌에
세차게 흩날리는
싸라기눈 - P235

평소 얄밉던
까마귀도 눈 내린
아침에는 - P236

숨어 버렸네
십이월 호수 위
논병아리들 - P237

보리밥 먹고
사랑하느라 수척해졌나
암고양이 - P238

해마다 매번
나무에 거름 되는
벚꽃잎들 - P239

밤새 마시고
꽃병으로 쓰리라
나무 술통 - P240

게으름이여
일으켜 세워지는
비 오는 봄날 - P241

쇠약해졌다
치아에 씹히는
김에 묻은 모래  - P242

얼마 동안은
꽃에 달이 걸린
밤이겠구나 - P243

울적한 나를
더욱 외롭게 하라
뻐꾸기 - P244

손뼉을 치면
메아리에 밝아 오는
여름 보름달 - P245

생선 가시
핥을 정도로 늙은
자신을 보네 - P246

여름 장맛비
시 적은 종이 떼어 낸
벽에 난 자국 - P247

어두운 밤
둥지를 잃고 우는
물떼새 - P248

초가을이다
모기장을 접어서
이불로 덮는 - P249

가을바람
불어와도 푸르다.
밤송이 - P250

외로움이여
못에 걸려 있는
귀뚜라미 - P251

쌀 주러 온 벗
오늘 밤
달의 손님 - P252

풀로 엮은 집
날 저물어 찾아온
국화주 한 통 - P253

아홉 번
달 때문에 일어났어도
아직 새벽녘 - P254

파 하얗게
씻어서 세워 놓은
추위여 - P255

새로 만든 정원에
생기를 주는
초겨울 비 - P256

초겨울 바람에
향기 묻어나네
늦게 핀 꽃 - P257

때때로
나 자신의 숨을 본다
한겨울 칩거 - P258

묵을 곳 구해
이름을 대게 하는
첫 겨울비 - P259

어찌 되었든
죽지 않았다 눈 속
마른 억새꽃 - P260

휘파람새가
떡에다 똥을 누는
툇마루 끝 - P262

사람들 보지 않아도
봄이다
손거울 뒤 매화 - P263

부러워라
속세의 북쪽에 핀
산벚나무 - P264

파초 잎 하나
기둥에 걸리라
오두막의 달 - P265

패랭이꽃의
무더위 잊어버린
들국화 - P266

이슬비 내리는 하늘
부용꽃에게는
좋은 날씨 - P267

밝고 둥근달
문 쪽으로 향해오는
밀물의 물결 마루 - P268

강 위쪽과
여기 강 아래쪽
달의 봄 - P269

떠나는 가을
더욱 믿음직하다
초록색 밀감 - P270

초록이지만
당연히 그렇게 될
풋고추 - P271

가는 것 또한
장래가 믿음직스럽다
초록색 밀감 - P270

소매의 빛깔
때가 타서 더 추운
쥐색의 상복 - P272

오늘만큼은
늙은 사람이 되자
초겨울 비 - P273

소금 절인 도미
잇몸도 시리다
생선가게 좌판 - P274

재 속의 불
벽에는 손님의
그림자 - P275

목소리가 쉰
원숭이 이가 희다
봉우리의 달 - P274

재 속의 불
벽에는 손님의
그림자 - P275

가까이 와서
감상하라 꽃병의
매화와 동백 - P276

고추에
날개를 붙이면
고추잠자리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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