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풀이여
무사들이 가졌던
꿈의 자취 - P179

반딧불이 빛
낮에는 사라지는
기둥들 - P180

시원함을
나의 집으로 삼아
편안히 앉았네 - P181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 P182

여름 장맛비
다 모아서 빠르다
모가미 강 - P183

뜨거운 해를
바다에 넣었구나
모가미 강 - P184

결국 누구의
살을 어루만지리
붉은 잇꽃은 - P185

가지 모양이
날마다 달라지는
부용꽃 - P186

올해 첫 참외
네 조각으로 자를까
둥글게 자를까 - P187

한 지붕 아래
유녀와 함께 잤네
싸리꽃과 달 - P188

무덤도 움직여라
나의 울음소리는
가을바람 - P189

붉디붉은 해는
무정하지만
가을바람 - P190

젖어서 가는
사람도 운치 있는
빗속의 싸리 - P191

참혹하다
투구 밑에서 우는
귀뚜라미 - P192

바위산의
바위보다 하얗다
가을바람 - P193

흰 이슬의
외로운 맛을
잊지 말라 - P194

뜨거운 목욕물
추억하며 오늘 밤은
살이 춥겠네 - P195

오늘부터는
동행 글자 지우리
삿갓의 이슬 - P196

작별의 시 적은
부채 찢어 나누는
이 아쉬움 - P197

물보라 사이
분홍 조개에 섞인
싸리 꽃잎들 - P198

먹물 옷 입고
분홍 조개 줍는다
색깔 있는 달 - P199

대합조개
속살과 껍질이 갈라져
떠나는 가을 - P200

빨리 피어라
축제날 다가오니
국화꽃이여 - P201

벼루인가 하고
주워 보는 오목한
돌 속의 이슬 - P202

첫 겨울비
원숭이도 도롱이를
쓰고 싶은 듯 - P203

나비가 못 되었구나
가을이 가는데
이 애벌레는 - P204

비구니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눈 쌓인 마을 - P205

무엇보다도
나비의 현실
애처로워라 - P206

씨앗이라고
얕보지 마시오
매운 고추 - P208

나무 아래는
국이고 생선회고
온통 벚꽃잎 - P209

나비의 날개
몇 번이나 넘는가
담장의 지붕 - P210

마을 전체가
모두 꽃을 지키는
이들의 후손 - P211

사방으로부터
꽃 날려 들어가는
호수의 물결 - P212

비구니 혼자
사는 움막 차갑다
흰 철쭉 피고 - P213

여름풀을
호화롭게 장식하라
뱀의 허물 - P214

자신의 불을
나무마다 켠 반딧불이
꽃의 여인숙 - P215

교토에 있어도
교토가 그리워라
두견새 울음 - P216

나를 닮지 말라
둘로 쪼갠
참외일지라도 - P217

멧돼지까지
함께 날려 가는
가을 태풍 - P218

나의 집에서
대접할 만한 것은
모기가 작다는 것 - P219

조만간 죽을
기색 보이지 않는
매미 소리 - P220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시게
나 역시 외로우니
가을 저물녘 - P221

고추잠자리
내려앉지 못하는
풀잎의 끝 - P222

제 지내는 날
오늘도 화장터에
오르는 연기 - P223

달구경하는
자리에 아름다운
얼굴도 없네 - P224

기러기 울음
들으러 가을에는
서울로 가리 - P225

첫서리 내려
국화 얼기 시작하네
허리에 두른 솜 - P226

흰머리 빠진
베개 밑에서 우는
귀뚜라미 - P227

어부의 오두막
작은 새우들에 섞인
꼽등이 몇 마리몇 - P228

번개를 보며
깨닫지 않는 사람
놀라워라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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