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해골 되리라
마음 먹으니
몸에 스미는 바람 - P66

길가에 핀
무궁화는 말에게
뜯어 먹히고 - P67

난초향 난다
나비의 날개에다
향을 스민듯 - P68

손에 잡으면 사라질
눈물 뜨거운
가을의 서리 - P69

이슬 방울방울
시험 삼아 속세의 먼지
씻고 싶어라 - P70

죽지도 않은
객지 잠의 끝
가을 저물녘 - P71

날 밝을 녁
흰 물고기의 흰 빛
한 치의 빛남 - P72

달과 꽃을
아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주인들 - P73

겨울 찬 바람
이 몸은 돌팔이 의사
닮아 가누나 - P74

바다 저물어
야생 오리 울음
어렴풋이 희다 - P75

봄이 왔다
이름도 없는 산에
옅은 봄 안개 - P76

저 떡갈나무
꽃에는 관심 없는
의연한 모습 - P77

산길 오는데
왠지 마음 끌리는
제비꽃 - P78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 P79

나비 날 뿐
들판을 가득 채운
눈부신 햇살 - P80

흰 양귀비에
날개를 떼어 주는
나비의 유품 - P81

모란 꽃술 속에서
뒷걸음질 쳐 나오는
꿀벌의 아쉬움 - P82

여름에 잎은 옷
아직까지 이를 다
잡지 못하고 - P83

구름이 이따금
달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쉴 틈을 주네 - P84

곧 운 좋은 사람의
숫자에 들겠구나
노년의 세밑 - P85

자세히 보니
냉이꽃 피어 있다
울타리 옆 - P86

오래된 둥지
그저 적막할밖에
이웃이 없어 - P87

땅에 떨서져
뿌리에 다가가니
꽃의 작별 - P88

동쪽과 서쫀
느낌은 하나
가을바람 - P89

둥근 보름달
연못 둘레 도느라
밤이 새도록 - P90

맹인이라고
사람들이 여기는
달 바라보기 - P91

가진 것 하나
나의 생은 가벼운
조롱박 - P92

물은 차갑고
갈매기도 쉬이
잠들지 못하네 - P93

첫눈 내리네
다행히 오두막에
있는 동안에 - P94

첫눈 내리네
수선화 잎사귀가
휘어질 만큼 - P95

불을 피우게
좋은 걸 보여 줄 테니
눈 뭉치 - P96

물 항아리 터져
한밤중 빙결에
잠을 깸이여 - P97

술을 마시면
더욱더 잠 못 드는
눈 내리는 밤 - P98

달과 눈을
뽐내면서 살아온
한 해의 끝 - P99

주인 없는 집
매화조차 남의 집
담장 너머에 - P100

잊지 말게나
덤불 손 피어 있는
매화꽃을 - P101

유별나구나
향기도 없는 풀에
머무는 나비 - P102

작은 새끼 게
발등 기어오르는
맑은 물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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