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얼굴에
주눅이 들었구나
어렴풋한 달 - P22

꽃 아래서도
열 수 없어 슬프다
시의 주머니 - P23

파도의 꽃은
눈이 물로 돌아와
늦게 피는 꽃 - P24

안쪽 깊은 산
밖에서는 모르는
꽂들이 만발 - P25

여름 장맛비
깊이 재며 내리네
늘 건너는 강 - P26

꽃은 싫어라
사람의 입보다
바람의 잎이 - P27

말하는 사람마다
입속의 혀
붉은 단풍잎 - P28

바라보다가
나도 꺾어지겠네
여랑화꽃은 - P29

구름 사이에
벗이여 기러기 잠시
생이별하네 - P30

기다리지 않았는데
채소 팔러 오는가
두견새 - P32

가을 왔다고
내귀를 방문하는
베갯머리 바람 - P33

나무 자르니
밑동이 보이누나
오늘밤의 달 - P34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 허물은 - P35

나무 끝에서
덧없이 떨어지네
매미의 허물은 - P35

색 묻어난다
두부 위에 떨어진
옅은 단풍잎 - P36

서리를 입고
바람을 깔고 자는
버려진 아이 - P67

망우초 꺾어
나물밥 얹으리
한 해 끝 무렵 - P38

야, 아무렇지도 않네
어제는 지나갔네
복어 국 - P39

네덜란드 인도
꽃에 이끌려 오네
말 위에 안장 - P40

대합 조개가
입을 다물고 있는
무더위 - P41

바라볼수록
바라보면 볼수록
인생의 가을 - P42

서리 밟으며
절룩거릴 때까지
배웅했어라 - P43

눈 내린 아침
파만이 채소밭의
유일한 표시 - P44

거미여 무슨
음을 무어라 우나
가을바람 - P46

오두막에서 마시는 차
나뭇잎 긁어다 주는
초겨울 찬 바람 - P47

마른 가지에
까마귀 앉아 있다
가을 저물녘 - P48

여름 장맛비
학의 다리가
짧아지네 - P49

의지할 곳은 언제나
잎사귀 하나
벌레의 노숙 - P50

어리석게도
어둠 속 가시 잡은
반딧불이 - P51

한밤중 몰래
벌레는 달빛아래
밤을 뚫는다 - P52

외로움을
물으러 오지 않겠나
오동잎 한 잎 - P53

어디서 겨울비 내렸나
우산 손에 들고
돌아온 승려 - P54

눈 내린 아침
홀로 마른 연어를
씹어 먹는다 - P55

물풀에 모인
흰 물고기 잡으면
사라지겠지 - P56

나팔꽃 보며
나는야 밥 먹는
사나이 - P58

오두막에서
나는야 여뀌 먹는
반딧불이 - P58

일어나 일어나
내 친구가 되어줘
잠자는 나비 - P59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나의 나팔꽃
시들어 갈 때 - P60

달은 보름 전날
오늘 밤 서른아홉 살
어린아이 - P61

봄의 첫날
생각하면 쓸쓸한
가을의 끝 - P62

싸락눈 듣네
이 몸은 본디
늙은 떡갈나무 - P63

두견새 운다
지금은
시인이 없는 세상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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