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가로지르는 오아시스로

제1장 중국

중국은 기원전 한나라 때 장건의 서의착공을 통해 
오아시스로의동단(東裝)을 개척한 이래, 
이 길을 동쪽으로는 한년도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로
이어주는 중계자 역할을 하였다. 
이 오아시스로를 통해 동서간의 숱한 문명교류가 이루어졌다. - P181

베이징은 일찍부터 실크로드 오아시스로를 한반도에 
이어주는 중간고리 지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기원전 전국시대 베이징 근방의 계(前, 지금의 베이징 서남쪽 대흥현大縣)에 도읍을 정한 연(燕)나라는 
그 길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명도전로(明刀錢)‘를 통해 
한반도와 교역을 했다. 연나라 화폐 명도전이 계로부터 랴오둥 반도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었는데, 명도전로는 그 출토지들을 연결한 
최초의 한·중 교역의 육로가 된다. 유주(당나라 때의 베이징 이름)는 이 육로의 필수 경유지였다. - P183

남북으로 흐르는 뤄하(河)를 사이에두고 그 양안의 
룽먼산과 상산(香山)의 바위에 동굴 1,352개를 판 뒤 
불감(佛) 750기, 불상 9만 7,300구, 각종 비석과 
제자(題字) 3,600개, 불탑 40여 좌를 조성하였다. - P186

백마사와 백마상
뤄양 동쪽 10km 지점에 있는 중국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후한시대인 서기 68년에 세워진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한나라 명제(明帝)가황금으로 된 
부처를 꿈꾸고 나서 사신 채음(蔡音)을 인도에 
보냈는데, 이때 가섭마등 (迦葉摩騰)·축법란(法蘭) 
두 승려와 함께 백마에불경을 싣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이절을 짓고 백마사‘라 하였다. 
이 절에는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백마사의 상징인 불경을 싣고온 백마상이 있다. - P189

삼장법사 현장과 대안탑
원래 이름은 자은사탑(慈恩寺塔)이다. 
당나라의 고승인 삼장법사 현장(玄葉)이 전축(天人) 
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6.52년에 4각형의 가식 합을 증축하였다.
그러나 벽돌과 흙으로 쌓은 이 탑이 견고하지 못해 무너지자,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명을받고 701년에서 
704년 사이에 재건하였다.
7층탑으로, 높이는 64m이다. - P190

비단의 서전 루트, 오아시스로와 초원로

비단은 중국에서 오래 전부터 생산되고 수출된 대표적인 교류물품 중의 하나다. 
한금(漢錦, 한나라 비단)이나 당금(唐, 당나라 비단)
유물은 당시 장안(현재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동은 
한반도의 낙랑으로부터, 서는 시리아의 팔미라까지, 
북은 잘라이 노르로부터, 남은 장사(長沙)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의 광활한 지역에서 두루 
출토됨으로써 고대 중국 비단의 종횡무진한 전파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발굴 유적들을 연결하면 바로 비단의 전파 루트가 설정되는데, 이 길은 세칭 실크로드(비단길)의 오아시스로나 초원로와 대체로 일치한다.
예컨대 실크로드의 북로인 초원길(스텝로)을 따르는 한금의 서전(西傳) 루트는 장안~양고(陽高) ~ 노인울라 · 
오글라크티~파지리크~케르츠로 이어지는 길이다. 
실크로드의 중추(中樞)인 오아시스로를 따르는 
서전 루트는 장안~둔황에서 남·북 루트로 갈라진다. 
북방 루트는 고창(高昌, 투루판)~쿠처(고차庫)~배성~
켄콜~사마르칸트~메르브~두라 에우로포스까지, 
남방 루트는 누란~니야~박트라~메르~두라 에우로포스까지의 길이다. 
다시두라 에우로포스에서 북행으로 하트라와 로마로, 남행으로 팔미라로 이어진다. - P195

막고굴
막고굴의 상징인 높이 35m의 북대불전 (9층누각)이다. 오아시스로의 병목에 있는둔황에서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366년부터 개굴하기 시작해 천 년넘게 지속적으로 조성한 불교유적이다. - P196

장경동
막고굴 제17굴에서는 많은 불경과회화ㆍ 불상들이 나왔는데, 그래서 이굴을 ‘장경동‘ 이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혜초가 723~727년 인도와 주변의여러 나라를 순례하고 돌아와 쓴 여행기"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어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P196

옥의 산지에서 뻗어나간 옥의 길

고대나 중세에 있어서의 혹은 주로 연옥을 지칭한다. 허텐(옛날의 호탄Khotan, 우기)의 옥은 바로 연옥으로 
광물성 자연옥이다. 그래서 옥의 원산지라고 할 때에는 자연히 허텐 지방을 가리킨다. 기타 지역에서는 연옥 유물이 아직 발견된 바 없어 허텐이 유일한 발원지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옥의 교류는 의당 원산지인 허텐에서 시작되었다고 이해하면된다. 그리고 그 파급의 수혜자는 우선 중국이었다. 중국에 언제부터 허텐 지방의 옥이 유입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은 · 주시대의 묘에서 여러가지 용도의 옥기 유물이 출토된 사실을 감안하면, 그 시대 이전부터 이미 옥의 교역이 진행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 이 교역의담당자는 월지인(月氏人)들이었다. 원래 월지는 간쑤(甘肅)에서 
허텐 지방에 이르는 광활한지대에 자리를 잡고 있던 큰 세력이었다.
월지가 허텐과 중국 간의 옥 교류 역을 전담하다시피 하여 동방에서는 월지를 ‘옥의 민족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에 의해 옥이 오간 길을 옥의 길(玉道)‘ 이라고 하였다.
이 ‘옥의 길은 중국 시안에서 시작되는 실크로드 오아시스로의 남도(南道, 한대 이후)에 해당하며, 
이 길이야말로 실크로드의 선구였다고 할 수 있다. 
월지는 옥을 교역하는 반대급부로 중국으로부터 비단을들여와서, 그 이서에 있는 서역의 각 제국에 전파하였다.
그리하여 서방에서는 그들을 비단의 민족‘이라고도 불렀다. - P213

제2장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오아시스로의 중심부에 위치해 동서문서교차로, 집산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일찍부터 동서양의 수많은 시람들이오갔으며, 상술에 능한 ‘호상(商)들의 교역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 P219

문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종이의 길
종이는 문명의 전승 수단이며 문화 발달의 척도다. 따라서 종이의 제작과 교류야말로 문명의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종이는 식물성 셀룰로스를 주원료로 하는, 채후지(蔡侯紙)를 말한다. 중국 후한(後漢)의 채륜(蔡倫)이 만들었다고 해서 그런 명칭이 붙은 것인데, 그 제조법이 동 · 서방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종이가 만들어졌다.
사료에 의하면, 제지술은 우선 중국에서 동방으로 전파되었는데, 4세기에 한반도에 알려지고, 한반도를 거쳐 7세기 초 일본에 전파되었다. 제지술의 서방 전파는 동방보다 약간 듯은 8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 751년 고선지의 제5차 서역원정 (탈라스 전쟁) 때 포로가 된 2만명 당군 가운데는 제지 기술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의해 서역에 제지기술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국(康國)의 수도 사마르칸트에 서역에서는 최초의 제지소가 생겨났으며, 그곳에서 사마르칸드지‘란 이름의 종이가 만들어졌다. 그 이후 제지술은 사마르칸트~바그다드~다마스쿠스~카이로~페스 등 이슬람 문명권을 거쳐 12세기 중엽에는 유럽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유럽의 경우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독일 ~오스트리아~스위스~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 ~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제지술이 전파되었다. 바로 그 무렵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면서 초지기(紙機)가 개발되어, 기계에 의한 종이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 P231

제3장 서아시아
서아시아는 동서문명의 접합지로서 일찍이 그곳에서 개최된오아시스로 왕의 길)는 서쪽으로 보 포루스 해협을 거쳐 이 길의 서단(五)로마로 이어졌다. 그리고 등즉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사막길과연결됨으로써 비로소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오아시스로가 완성되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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