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웠다네
정약용 / 청년사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217~218)

두 아들에게 주는 글

요즘 어떤 소년들은 원(元)·명(明) 시대의 경망한 문인들의시고 차며 뾰족하고 부스러진 문체를 본받아 절구나 단율을 지으면서 제딴에는 은근히 저 혼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인 것처럼 자부한다. 
그들은 거들먹거리면서 거만을 떨 뿐만 아니라 고대나 요즘의 것은 모조리 보잘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들이 가엾다.
작품을 쓰려면 반드시 먼저 경서를 읽어 학식의 기초를 쌓은 뒤에 과거의 역사문헌들을 섭렵하여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흥하고 망하는 근원을 알아내며 실용적인 이론을 연구하여 선배들의 경제에 관한 저서를 읽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마음속에 언제나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며 만물을 보호하고 발육하려는 사상을 가져야만 바야흐로 글읽은 학자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한 후라야 꽃 핀 아침이나 달밝은 저녁, 무르녹은 그늘이나 보슬비 내리는 때가 되면 서려 있던 감흥이 격동하며 문득시상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노래하고 음조와 선율이 유창하게 표현될 것이다. 이것이 시의 세계가 생동한 경지이다. 너희들은 나의 말을 올바르지 않다고 여기지 말라.
수십 년 동안 일종의 괴이한 이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그 이론을 말하는 자들은 우리 나라 문학을 덮어놓고 배척한다. 무릇 선배들의 문집은 처음부터 눈여겨 보려고 하지 않으니 이것이 큰 문제이다. 선비의 자제로서 자기 나라의 고전을 알지 못하고 선배들의 이론에 익숙하지 못하다면 제아무리 학문이 고금을 관통한다 하더라도 한갓 거친 무지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시집부터 먼저 급하게 보려고 서둘지 말고 상소문 · 차자(子)·묘비문 · 서한문들까지 널리 읽어 안목을 넓히도록 해야 할것이다. 
또 《아주잡록(州雜錄)》 《반지만록(盤地漫錄)》
《청야만집(靑野殼蟲)》들과 같은 문헌들도 널리 구하여 
두루 읽어야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09-08 2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산의 편지를 읽으면 눈물이 나요.
아들에게도, 아내에게도, 형 정약전에게도, 죽은 아이들을 그리면서 쓴 편지는 가슴이 아프죠.

대장정 2021-09-09 00:08   좋아요 3 | URL
네, 다산은 정조의 보호가 있어 그나마 보전했고 셋째 약종 집안은 거의 몰살됐죠 가슴아픈 역사입니다.

mini74 2021-09-09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집안은 천재집안인듯 해요. 정약전이야기도 참 좋더라고요. 슬프지만 ㅠㅠ

대장정 2021-09-09 00:4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정약용선생님께서 워낙 유명하셔서 그렇지 다른 형제들. 모두 여러방면에서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하셨죠. 오죽하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덕일 저) 이란 책까지 있겠습니까?정약용 아버님께서는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소문났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