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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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 기쁨도, 슬픔도, 두려움도 막연한 활자에 불과할 뿐 이다...  선윤재.

감정에 예민한 아이.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다 못느꼈으면 좋겠다는 아이... 곤(윤이수)

기쁨, 슬픔, 분노, 사랑 모든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공감하고, 어디에서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  도라

감정이란 이떤 현상 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한다. 경험치 인 것이다. 경험에서 나오는 느낌 이기에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 감정은 윤재의 말처럼 상대를 화나게 하는 연극과도 같다.

- 그만둬. 네가 원하는 걸 해 줄 수가 없어.
- 네가 원하는 걸 하려면 나는 연기를 해야 해.
  그건 나한테 너무 어려운 거야. 불가능 해.

윤재는 편도체(아몬드 모양) 이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다. 엄마와 할멈이 깔깔 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자신 앞에서 엄마와 할멈이 처참하게 난도질 당하여도 공포, 분노, 슬픔 이란걸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애오욕' 을 문장으로  끝없이 암기해야 한다. 모든 본능적인 규범들을 하나하나 암기해야 하는 아이. 누군가 소리를 친다, 고함을 지른다, 눈썹이 위로 솟는다....이런 것들이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납득하기 어려워 한다. 하나의 현상에 그 이면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잘 알지 못한다. 윤재는 튀지 말아야 했다. 그 말은 남들과 다르다는 걸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들키면 튀는 거고 튀는 순간 표적이 되었다. 세상은 튀는 사람을  표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 아이를 이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한 아이... 괴물, 병신 이라 부른다. 자신들의 감정에 공감 하지 못하는것에 분노하고 비정상이라 치부한다. 그런 윤재는 곤이에 대해 알고 싶어 졌다. 곤이를 알게 되면 할멈과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의 비밀을 한 가지쯤 알고 싶었다.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인생에 대한 결론을 내린 곤. 아무도 곤의 아픔을 들여다 보려하지 않았다. 13년 만에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곤(이수)의 아버지도 기대에 못미치는 자식에 대한 안타깝고 슬픔에 빠진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했다.
불량한 아이 구제불능의 아이로 치부 한다. 곤이는 그냥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버린다. 그게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것이기에. 상처받는 걸 멈출 수 없다면 차라리 상처를 주는 쪽을 택한다.

사람들은 쉽게 누군가를 자기 기준에  재단 한다. 감정에도 다름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다름을 인정 하지 않는다. 감정 공유를 강요하는 사회. 다름을 틀림 이라고 말한다.

그 누구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다 알 수는 없다. 내가 상대의 감정을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 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심리적 신체적 상태도 다르며, 사회적, 문화적 원인도 다르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과도 같다.

작가는  아몬드에서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결말이 좀 아쉽다. 감정이란 걸 느껴버린 윤재.  감정 이란걸 느끼고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되었다. 라고 말하는 윤재. 굳이 다수가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야만 했을까? 그래야만 인간인 걸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곤이 착한 아이 라는걸, 여린 마음을 가졌다는 걸 유일하게 알아본 사람 이었다.

왜 작가는 윤재를 그냥 그대로 두지 않은 걸까? 그걸 작가는 성장 이라고 말하지만 조금은 억지 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몬드는 윤재와 곤의 성장 소설이다. 영 어덜트! 십대를 대상으로 하는 소설. 괴물이라고 지칭되는 요즘의 십대. 공감 해주고, 손을 잡아주는 어른이 없어서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 어른들이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는 다면 아이들은 '예쁜 괴물'이 될 수 있다. 할멈이 윤재에게 '예쁜 괴물' 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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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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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강해* (김세윤)

예수님 당시에 기도란 여러 유대 공동체들의 정체성의 요약이었으며,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의 사상과 신학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주기도문'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 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장 잘 압축하고 표현 하고 있다. 주기도문의 정확한 뜻을 알아야 신앙과 삶을 반성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되지 않고, 미신적 기도가 아닌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A.하나님 이름부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의 초월성으로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인간을 구원하려면 초월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전적인 의존을 고백하는 것이다.

B.신앙 고백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천명과 기도를 여는 찬양 이다. 우리또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기도는 하나님 경외의 삶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한 채 그에게 친근감을 그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오늘날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함이 없어 인권과 생명을 경시하게 된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C.당신 청원
1.{나라이 임하옵시며, }

주기도문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옴' 이다.

2.{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만 땅 위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지금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사님의 통치가 하늘에서 땅 위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D.(우리 청원 부뷰)
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양식 청원으로 '그날에 필요한' '당일을 위한' 으로, 우리의 생명을 가능하게 해달라는 기도 이다. 많이 거두려고 욕심 가지지 말고 하루하루,그날그날 하나님께 의지해서 사는 삶의 자세를 갖추라는 뜻이다. 맘모니즘의 신앙은 이웃의 것을 착취할 수밖에 없다. 양식 청원은 근심하지 않는 태도이며,하나님 신뢰의 신앙 고백인 것이다.

E.{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

이웃 사랑을 실천할 살 수 있는 힘을 하나님
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나의 노력으로 되어지는게 아니다. 나에게 빚지 자를 용서해 줄 수 있는 힘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의 요구로 온다. 죄 용서 청원인 동시에 용서의 서약이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해야 함을 청명하는 것이다.

F.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죄 용서를 빌고자 한다면 자기의 죄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웃에 대한 죄 용서 없이 하나님에 대한 죄 용서 받음은 가능하지 않다.

G.{우리를 시험temptation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 test하시기는 하지만 유혹temptation하시지는 않는다. 유혹은 사탄이 하는것 이다. 이는 악으로 부터 우리를 구출하여 달라는 뜻이다. 자기 힘으로 선을 행하고 자기 힘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 수는 없다.

H.송영- 하나님 이름에 영광 돌림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장9~13)

결론.
1.주기도문은 청원한 바를 내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이 함께 포함되는 기도 이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나, 자기 욕심만을 만족시키는 세상 사람들의 기도가 아니다.

2.하나님의 통치 아래 온전한 삶을 위한 기도 이다. 탐심에서 나오는 기도, 이웃에 대한 증와 원수 갚음 등과 같은 기도는 합당한 기도가 아니다. 또한 구체성을 띠고 기도해야 한다.

3.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늘에 계시는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을 갖으며,나는 하나님의 상속자 이다.

4.기도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우리' 이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양식을 나눌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로 받는 죄 용서를 나눠주고 전달해 주어야 한다.

5.이 기도는 청원속에 서원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 우리가 비는 것이 실현되는 데 있어서 우리 쪽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서원을 하고 그것을 열심히 하게 하는 기도 이다.

생활속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가까이 있는 이웃(가족을)부터 사랑함이 먼저 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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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 열린책들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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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 사람. 그러나 죽음로 담담히 걸어 들어간 사람,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

사람들이 좀머 씨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사실은 근방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좀머 씨를 알고 있었다. 텅빈 배낭을 짊어지고, 길다랗고 구부러진 지팡이를 늘 손에 쥐고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잰 걸음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묵묵히 걸어다니기만 하는 좀머 씨. "이상한 일은 그에게 아무런 볼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것인지?
방랑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잰 걸음으로 하루에 열 여섯 시간까지 근방을 헤매고 다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진짜 이름도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어린 소년 '나'의 눈을 통하여 바라본 좀머 씨의 기록. 존재 했으나 존재하지 않은 듯 산 은둔자 좀머 씨는 작가 본인 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를 제발 그냥 놔두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어른을 위한 동화.
장 자크 상베의 삽화 덕분에 어릴적 추억을 상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책이다.

쥐스킨트가 '향수' 이후 낸 책으로 쥐스킨트가 이렇게 여리고 부드러운 동화와 같은 이야기를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잔잔하고 따스한 한 소년의 성장, 관찰 이야기 이다.

이 야기와 장 자크 상페의 삽화가 너무도 잘 어울려 꼭 상페가 쓴 책 같다. 주인공 '나'는 상페의 그림에 나오는 꼬마 니콜라를 연상케 한다. 어쩌면 한없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로 느켜질 것을 장 자크 상페 삽화 덕에 따뜻한 동화가 된것 같다. 쥐스킨트가 상페의 덕을 톡톡히 본듯 하다.

세상에 자신의 발자국만 여기저기 남겨놓간 좀머 씨. 쥐스킨트의 발자국과도 같은 '비둘기', '콘트라베이스', '깊이에의 강요' 을 남겨두고 그가 지금은 무얼하고 있는지 궁금 하다. 그의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어디선가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책 읽기가 어려운 어른,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 어릴적 추억이 그리 청년, 모두 읽기에 부담없어 강력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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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 소명/시험/자기를 비움
헨리 나우웬 지음 / IVP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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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명 :하향성으로 부르심
제자란 낮아지는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좇아 그분과 함께 새로운 삶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십자가의 길, 즉 하나님의 하향성은,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고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살아 있는 그리스도들로 변화되기 때문에 우리의 길이 된다.

2.시험 :상향성을 향한 충동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우리는 벌거벗고 상처 받기 쉽고 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는다. 그리하여 고통과 고뇌 가운데 있는 동료 인간들에게 손을 뻗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그들을 능하게 할 수 있다.

3.자기를 비우는 마음:영적 성숙을 위한 훈련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 있는 그리스도들로 형성된다. 이러한 형성은 지식, 교훈, 감화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이 형성의 요건은 말씀을 먹고 씹고 소화시켜서 참된 양식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말씀은 우리 머리로 부터 가슴으로 내려와서 거할 곳을 찾게 된다.

세상의 길은 상향성의 길인 성공과 출세만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상향성이 아닌 하향성의 길을 택하셨다. 좁고 낮은 길.
그길이 진정한 제자의 길 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그 길을 따르라고 하셨다.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때 되어지는 것이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게
세상의 것을 사용하되 남용하지는 않게
무엇을 사더라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을 것처럼
아무것도 가지 못할지라도, 모든것을 가진듯이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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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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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하루키 데뷔작으로 자전적 소설 이다. 스물아홉에 갑자기 무언가 불현듯 쓰고 싶어져 아무생각 없이 쓴 소설 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첫 소설이라 그런지 엉성하고, 문단이 단락 단락 끊어져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다. 마음 내키는대로 붓 가는대로 막 쓴 느낌이 든다. 작가의 말에서 처럼 새로운 것을 평가하는 '군조'가 아니었다면 신인상 당선은 어림도 없었을것 같다.

첫 문장에 쓰인 말 처럼 "완변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함이 없다. 작가를 모르고 읽었다면 하루키가 썼다고 생각지도 못했을 거다.

그러나 읽다보니 하루키 만의 것이 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이렇다 저렇다 설명이 없으며, 하루키의 이야기에 꼭 등장하는 사람을 찾고, 죽음과 여자(섹스)가 있다. 모순적이게도 이야기속 '나'의 친구 '쥐'의 소설에는 섹스 이야기가 없다는 것과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점을 '나' 는 뛰어난 점이라고 높게 평한다.

이야기는 1970년 8월8일에 시작해 8월 26일에 끝난다. 스물한 살의 '나'라는 인물이 방학을 맞아 고향 바닷가 마을에 가서 '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그녀'와 18일 동안 지낸 이야기 이다. '나'와 '쥐'는 허무와 공허함을 달래려 매일 같이 제인에서 맥주를 마시고, 팝을 듣고, 책을 읽고, 여자를 만난다. '나'와 '쥐' '그녀' 이 셋은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지 않는다. 각자의 결핍과 공허함 속에 갇혀있다.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이해하고 받아 들이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버석한 메마름이 있다. (여기서 '나'는 외향적 하루키이고, '쥐'는 내면의 하루키 같다. )

여행을 간다고 거짓말한 '그녀'가 진실을 알고 싶냐고 말했을 때 '나'는 소를 해부했을때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왜 소는 이렇게 맛없어 보이고 비참한 풀을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듯이 몇번씩이나 되새김질해서 먹는 걸까" 그의 말에 '그녀'는 쌀짝 웃더니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을 바라보다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70~90년대의 청춘들에게는 고뇌와 공허, 무료함과 허무가 있었다. 지금의 청춘들과는 조금은 다른.... 나의 젊었을 때를 생각나게하는 소설 이다.
그땐 그랬지~~~하고 말이다.

하루키의 젊었을때의 문학에 대한 생각과 허무함과 상실감이 고스란히 뭍어 있고, 풋풋한 신인때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상큼함이 느껴진다.

하루키의 젊은 감각은 세대를 뛰어넘기에 요즘의 청춘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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