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례 - 하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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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툼하니 무게감이 꽤 있는 두 권을 받고 내심 놀랬었다.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무게감이 있을줄이야 싶었기 때문이다. 왠만한 사전 못지 않은 무게에 살짝 기가 죽은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가상의례.  어느 새 1권을 훌쩍 읽게 되고, 2권도 곧이어 마무리가 될 만큼 정말 빠르게, 매 페이지마다 긴장감을 느끼면서 본 책이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 둔 후 아내와 이혼까지 하고 혼자 남은 마사히코. 자신을 밑바닥으로 밀어버린 야구치를 우연히 만나 그에게 복수를 하고자 하지만 그 역시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된 상태였다.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둘은 새로운 사업으로써 "신흥종교"를 떠올린다. 아무런 밑바탕이 없어도 신자만 많이 모인다면 벤츠를 타고 다닐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된 신흥종교 사업. 어설프게 인터넷 홈피부터 시작했지만 생각외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사업은 점점 번창하게 된다.  

  그러나 어딘지 사이비 냄새가 나는 마사히코의 종교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의 일부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년, 잘 알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호텔에서 몇 년간 사육을 당했던 여자, 가정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여기는 여자, 아버지와 친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여자...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문제로 인해 점차 그들의 정신까지 병들어가고 있던 사람들..그들은 마사히코의 종교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했다. 일상 생활에서는 접하기 힘든 사례들을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무수히 겪게되는 마사히코. 자신이 공무원이었을 적에는 외면하기 바빴을 그들의 삶을 수입을 위해서 껴안기 시작하면서 마사히코는 일본이라는 사회가 정말 많이 병들어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모여서 키워나가던 신흥종교는 어느 기업인과의 만남으로 그 세가 점점 커지게 되고 집회를 위한 장소까지 여러 곳이 생기게 된다.  

 벤츠까지는 아니더라도 별다른 노력없이 신자들이 내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세가 커지면서 유명세까지 타게 된 마시히코. 나름 만족한 삶을 살게 되지만 애초에 정직하지 못했던 그의 사업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기업인이 무너지게 되면서 함께 추락의 길을 걷게 된다.  

 마사히코와 야구치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어설프게 종교 사업을 시작한 초반에는 과연 이 사업이 성공을 하겠는가 싶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점점 모이고, 종교가 점차 확장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놀라웠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종교에 의지할 수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옴진리교라는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 사건이 있었던 나라이거늘.  

 현실에서의 고통을 종교라는 수단으로 잊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정신력이란 그 어느 것 보다 강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약하기도 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마사히코가 일으킨 종교가 인간의 정신력이 나약함을 보여줬다면 후반부에 등장한 매스컴이란 존재는 종류만 다를 뿐 그 또한 어느 사이비 종교 못지 않게 사람들을 한 곳으로만 몰고 갈 수도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였줬다.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만을 잘라내어 그것이 전부인 것마냥 보도를 하는 모습은 정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로 인해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또한.  

 두툼함 무게 만큼이나 소설 '가상의례'는 정말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책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의 관계 혹은 비정상적인 가정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종교에 빠져드는 지를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심취되었을 때, 개인이 아닌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무서움 또한 빼놓지 않았다. 게다가 비겁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미숙하다 여겨지는 매스컴의 거부하고픈 위력까지.  

 '종교'라는 존재를 다루면서 어쩜 이리 긴 글을 썼을까 싶은 생각을 읽는 도중엔 절대 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마사히코의 종교가 성장해가는 과정부터 몰락을 향해 치닫는 과정까지, 매순간 정말 생각지 못했던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던,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정말 재미있게(재미있게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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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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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라는 꽃을 잘 알지는 못해도 왠지 발음하면 할 수록 좋은 느낌이 들어 보게 된 책이었다. 제목만큼 예쁜 글이 담겨있지 않을까해서. 

 책 능소화는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확히는 그들이 남긴 글을  어느 교수가 해석을 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경북 안동에서 한 남자의 미라가 발견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주변의 다른 묘들과는 다르게 그 모습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의 곁에서 역시나 주변의 다른 글들과는 다르게 그 모습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는 연서. 연서는 먼저 남편을 보내야했던 아내가 남편에게 남기는 글이었다. 

 국문과 교수 "나"는 연서를 해독하는 일을 맡게 되는게 글에서 전해지는 여자의 아픈 마음이 전해져서 인지 아내였을 여자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대해서도. 그러던 중 한국에 교환 교수로 와 있는 기타노 노부시에게서 아내의 것으로 추정되는 글들을 받게 된다. "나"는 그 글들을 바탕으로 400년 전에 있었던 부부의 사랑이야기를 추정해 본다. 

 실제로 미라가 발견되었던 일을 근거로 해서 지어진 이야기였기에 글을 읽는 사실감은 다른 소설들에 비해서 큰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젊은이의 사랑이야기의 끝이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졌고. 

 원이 아버지로 불리는 남자.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머리와 체력을 겸비한 그야말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가혹한 것이었다. 어느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랄 수록 점점 훌륭해지는 아들을 바라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고, 아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원이 어머니로 불리는 여자. 그녀는 어렸을 적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겼던 아이였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긴 것이 잘못되어 여자는 이후에 집에서만 숨어지내게 되었다. 정말 운명처럼 둘은 만났고,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둘은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가혹한 운명이 서럽고 또 서럽다. 

 이야기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읽다보니 '운명'에 대해서 좀 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과연 인간이 주어져있다 여기는 운명을 새롭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하는. 개인적으론 가능하다고 여겨지는데 소설 속에서처럼 뭔가 신적인 요소가 결합된다면..확신할 수는 없지 않을까? 

 처음 기대했던 것처럼  제목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져있는 책이었다. 찬란한 슬픔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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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상자
파울로 코엘료 외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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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자신들도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길 그 이유도 물론 있지만 내 생각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 때문이 아닐까했다. 가끔씩 마주치게 되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은 정말 험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몰라요하며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순간 확 치밀었던 화도 가라앉곤 하니까. 

  제목에서부터 귀여움이 물씬 느껴지는 "뽀뽀상자".  만약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정말 달콤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화가 담겨 있을 것같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제목이다. 책의 내용은 후자쪽에 가까웠다.  

이 책은 에이즈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프랑스의 어린이 에이즈 보호 연대에서 기획한 책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해 무려 열 일곱명의 작가분들이 작품을 쓰신, 정말 마음과 마음이 모인 책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평소에 프랑스 문학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라서 열 일곱분의 작가분들 중에 아는 분은 거의 없었다. 너무나도 유명하신 파울로 코엘료와 크리스티앙 자크, 막스 갈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는 작가분들의 글이 가득하고, 익숙지 않은 프랑스 문학이라는 점에서 약간 긴장을 하고 보게 되었는데 시작부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전하신분은  파울로 코엘료이셨다. 그나마 가장 익숙한 분이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작부터 정말 짤막한 글로써 커다란 감동을  주셨다. 하느님께서 '어머니'란 존재를 만든 이야기를 아주 짤막하게 하고 있었는데 고작 몇 페이지의 내용에서 우리네 어머니란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매번 행하시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그리고 이어지는 짤막한 다른 이야기에서도 많은 교훈을 주었다. 사실 파울로 코엘료란분의 글을 몇 편 읽어보기는 했지만 편안하거나 쉽게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 글들을 통해서 이분의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시작이 정말 좋았기에 처음 가졌던 긴장감을 모두 놓아버리고 다음의 이야기들을 읽어갔다. 책의 취지가 어린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들은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마치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선생님은 처음부터 그저 선생님인줄로만 알았던 꼬마가 어느 날 사실 선생님도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 기차가 너무나 좋아서 병을 앓아 죽어가면서도 기차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하던 소년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이야기, 가족의 불화 때문에 고민하다가 자신을 스스로 아프게 하여 가족을 지키려했던 아이의 이야기, 아직 한국어도 떼지 못한 아이에게 영어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부모들처럼 무조건 빨리를 내세우며 아이를 몰아부치던 부모의 이야기등..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책의 제목과 같은 '뽀뽀상자'가 있었다.  사랑스런 딸 줄리엣이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아이를 보며 '이 자그마한 살덩이가 내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필립. 그는 아이에겐 어찌했든 정말 성실한 아버지였다. 아이가 울면 아이에게 달려갔고, 때론 기저귀도 갈아주었다. 하지만 온전히 아이를 보지는 않았기에 줄리엣은 목이 쉴 때까지 울어야했고, 젖은 기저귀를 다시 차기도 했다. 필립은 아이를 공원이나 슈퍼마켓에 두고 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우유를 먹으면 다 토해버리는 줄리엣. 그로 인해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바싹 마르고 창백해져갔다. 의사가 말하길 아이를 살릴 방법은 '뽀뽀상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뽀뽀를 만들어서 해준다는 뽀뽀상자. 이로 인해 줄리엣은 점점 나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필립의 실수로 뽀뽀상자를 잃어버리게 되고 줄리엣은 상태가 급격도로 나빠지기 시작한다. 과연 필립은 줄리엣을 구할 수 있을까? 

 뭔가 엉뚱한 구석이 있던 필립의 모습은 마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진지한 코미디를 보는 듯했던 필립의 모습은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가 부모라는 점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엔 그가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누구라도 아이를 가질 수는 있지만 '부모'가 되는 일은 정말 힘들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 적절한 유머가 곁들어져있어서 더욱 느껴지는 감동이 컸던 이야기였다.  

 하루하루가, 일주일이, 일년이 그렇게 빨리도 가는지라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무의식의 저 바닥 쪽에서나 남아있기에 평상시에는 거의 생각을 하지 못하는 유년시절의 추억들. 가끔씩 무언가를 계기로 해서 그때를 생각해보면 역시 아픔이나 슬픔보다는 미소짓게 되는 그리움을 곁들인 즐거운 기억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누군가에겐 아픔으로, 누군가에겐 그리움으로, 누군가에겐 즐거움으로 남아있을 유년시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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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2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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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눈빛의 남자, 역시 만만치 않은 눈빛을 지닌 백호랑이. 
이 둘의 모습이 담긴 표지를 보고 책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 김탁환. 
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간 여러 편의 역사소설을 통해서 믿음이 쌓인 작가분이셨기에 이번 엔 또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셨을까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참 놀라운 소설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광활한 백두산과 개마고원의 눈 밭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것만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어쩜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까 싶어서 마음이 찡했고, 우리의 신물 호랑이를 가지고 이런 글을 써주셔서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멸종되어서 그 존재조차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마냥 힘을 잃어가는 우리의 백두산 호랑이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밀림 무정은 백두산의 신물로서 백두산 호랑이들의 우두머리로 알려진 백호랑이 "흰머리"와 개마고원에서 나고 자란 포수 "산"이의 쫒고 쫒기는 싸움을 다룬 책이다.

 산이는 호랑이의 혼을 지녔다고  여겨질 만큼 강인한 혼을 지는 인물이다. 개마고원에서 나고 자란 덕에 사냥이 손에 익어있고, 개마고원은 물론 백두산의 환경까지 빠삭한 만능 사냥꾼. 그는 7년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하나 뿐인 동생 "수"의 한 팔을 물어간  흰머리를 잡기 위해 자신을 모든 걸 내건다. 한 편 때는 1940년대 초, 일본군의 행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일본군들 또한  "해수격멸대"를 조직해 호랑이 사냥에 나선다. 산의 동생 수는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어 호랑이 사냥을 돕고, 그 와중에 산과 만난다. 수의 제안아닌 제안으로 일본군 대장 히데오의 명령 아닌 명령으로 애매한 위치에서 산은 해수격멸대와 함께 호랑이들을 쫒게 된다. 추적  도중 만나게 된 흰머리는  해수격멸대를 마치 입안의 사탕을 굴리듯이 쉽사리 처리해 버린다. 그가 지닌 능력은 뛰어난 두뇌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를 보게 되면 두려움에 기가 눌려버린다는 것이다. 그 두려움이 해수격멸대의 대원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대원들을 모두 잃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한 끝에, 산과 흰머리의 대결 끝에 흰머리는 산의 일행에게 잡히게 된다. 경성으로  옮겨져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 흰머리. 호기심으로 그를 찾았던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넋을 잃게 되고,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그를 보고 통곡하게 된다. 산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그간 목숨을 걸고 하려던 "복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과연 산과 흰머리의 대결은 어떤 끝을 맺게 될 것인가. 

 이야기에서는 정말 짙은 사람 냄새, 남자 냄새에 가까운 느낌이 났다. 자신의 모든걸 내걸고 상대방과 당당하게 맞서려는 산. 그런 산을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맞이하는 흰머리. 둘의 대결은 그어떤 라이벌간의 경쟁보다 멋졌고, 아름다웠다. 어르신이 흰머리 앞에서 통곡할 때는  마음이 정말 뭉클해졌다. 우리 안에 산 채로 갇혀버려 전시물이 되어버린 흰머리의 모습에서 흰머리가 아닌 다른 걸 본 듯 해서. 

 추격전을 다룬 1,2권에서 남자의 냄새 만이 풍겼던 것은 아니다. 해수격멸대의 일원으로서 산과 만나게 된 주홍. 호랑이 전문가인 그녀는 야생의 호랑이를 좋아했고, 호랑이의 혼을 가진 산을 사랑했다. 산 또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주홍이 좋았고,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매 순간 상대방을 위해서 혹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목숨을 걸어야하는 상황임에도 서로를 향한 진실함을 잃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 또한 이 책의 재미를 더했다. 

 앞서 글을 읽으면서 눈 앞에 펼쳐진 흰 눈 밭을 보았다는 얘기를 했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산이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왠지 모르게 이 책이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당당하고 멋진 그야말로 백두산 호랑이의 위엄을 갖추고 있는 흰머리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나보고 싶고, 그를 쫒는 산이의 모습 또한 영상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개마고원과 백두산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영상으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사람과 동물이라는 존재를 넘어선 산과 흰머리의 멋진 대결을 그린, 가슴 찡하게 멋진 소설 밀림무정.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대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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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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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박민규씨의 핑퐁이란 책을 잠깐 봤었다. 
굉장히 독특했던 책이었는데, 그 독특성이 당시엔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지라 끝까지 읽지 못하고 도중에 접었던 것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당시 느꼈던 신선함이 5년만에 나온 신작이라는 말에 궁금증을 더해줬고, 책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원래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선호하긴 하는데, 왠지 박민규씨의 글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무려 18편이라니..굉장한 상상의 세계를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같은 제목의 1,2권으로 나누어져있는 두 권의 책 속에는 총 1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그중 가장많은 기대를 하고 보게 된 A권의 1편은 정말 예상외의 내용이라 솔직히 좀 놀라웠다. 왠지 바로 판타지가 나올거라고 단정짓고 페이지를 넘겼었는데..이건..판타지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예상지 못한 죽음 선고에 고향으로 내려가 남은 삶을 보내려는 남자의 이야기. 큰 병을 앓아보지도 않았고, 오랜만에 멀리 떨어져 살던 고향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풀어본적도 없는데..왠지 다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은 뭐랄까..공감을 넘어서서 조금 슬펐었다. 사람 인생이란 것이 이렇게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구나 싶어서. 그리고 그 느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해 냈을까 싶어서 갑자기 작가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가, 조금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단편의 대다수가 이렇게 서정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판타지에 더 가깝다고 해야하나. 각각의 이야기 속엔 참 많은 등장인물들과 배경들이 존재한다. 그  장소의 대부분은 지구이지만  판타지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지구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름조차 지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가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은 바이러스와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화성인에게 납치되어 화성인 A,B,C와 사랑을 나눈 사람의 이야기, 무림의 고수였느나 변해버린 세상 속에선 그저 경제력 없는 철부지 아버지가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아! 정말 기분나쁠 정도로 이해안되고, 무섭고, 잔인한 미친놈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기름과 물을 얻는 방법이 그야말로 원시적이고, 잔인했던 사람..

  읽는 동안에는 한 편 한 편 따로 읽다보니 각각의 이야기가 그저 하나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적어내려가다보니 참 많은 이야기를 다루었구나 싶었다. 어쩜 한 사람의 머리에서 이렇게 다양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까. 또한 그걸 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참..부럽고, 얄밉다. 

 사실 '핑퐁'이란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이유 몇 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눈에 약간 무리를 주는 듯한 생소한 띄어쓰기였다. 문체도 당시로선 참 특이하다 싶었는데 띄어쓰기까지 그러하니..솔직히 차분히 읽기가 좀 힘들었었다. 그 점이 이번에도 조금 걱정스러웠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괜한 걱정이었다. 문득 핑퐁을 다시 한 번 도전해볼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모든 인간들이 지니고 있을 어떤 모습들이었다. 가족들을 위해 자존심 다 구겨가며 일하는 아버지들, 지구의 끝과 같은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성공해내고자 하는 집작과 같은 도전정신,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이 지난 후에 깨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살아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들..

   이렇게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를 전혀 당연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로 꾸며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는 이 단편 소설집.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은 정말 최고였다. 그 여운이 상당히 오래 남았었다. 그로 인해서 개인적으로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시는 것도 좋지만 이 이야기와 같이 서정적인 내용의 글들도 좀 많이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다음번의 책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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