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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 상자
파울로 코엘료 외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자신들도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길 그 이유도 물론 있지만 내 생각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 때문이 아닐까했다. 가끔씩 마주치게 되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은 정말 험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몰라요하며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순간 확 치밀었던 화도 가라앉곤 하니까.
제목에서부터 귀여움이 물씬 느껴지는 "뽀뽀상자". 만약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정말 달콤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화가 담겨 있을 것같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제목이다. 책의 내용은 후자쪽에 가까웠다.
이 책은 에이즈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프랑스의 어린이 에이즈 보호 연대에서 기획한 책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해 무려 열 일곱명의 작가분들이 작품을 쓰신, 정말 마음과 마음이 모인 책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평소에 프랑스 문학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라서 열 일곱분의 작가분들 중에 아는 분은 거의 없었다. 너무나도 유명하신 파울로 코엘료와 크리스티앙 자크, 막스 갈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는 작가분들의 글이 가득하고, 익숙지 않은 프랑스 문학이라는 점에서 약간 긴장을 하고 보게 되었는데 시작부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전하신분은 파울로 코엘료이셨다. 그나마 가장 익숙한 분이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작부터 정말 짤막한 글로써 커다란 감동을 주셨다. 하느님께서 '어머니'란 존재를 만든 이야기를 아주 짤막하게 하고 있었는데 고작 몇 페이지의 내용에서 우리네 어머니란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매번 행하시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그리고 이어지는 짤막한 다른 이야기에서도 많은 교훈을 주었다. 사실 파울로 코엘료란분의 글을 몇 편 읽어보기는 했지만 편안하거나 쉽게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 글들을 통해서 이분의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시작이 정말 좋았기에 처음 가졌던 긴장감을 모두 놓아버리고 다음의 이야기들을 읽어갔다. 책의 취지가 어린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서 그런지 이야기들은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마치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선생님은 처음부터 그저 선생님인줄로만 알았던 꼬마가 어느 날 사실 선생님도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 기차가 너무나 좋아서 병을 앓아 죽어가면서도 기차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하던 소년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이야기, 가족의 불화 때문에 고민하다가 자신을 스스로 아프게 하여 가족을 지키려했던 아이의 이야기, 아직 한국어도 떼지 못한 아이에게 영어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부모들처럼 무조건 빨리를 내세우며 아이를 몰아부치던 부모의 이야기등..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책의 제목과 같은 '뽀뽀상자'가 있었다. 사랑스런 딸 줄리엣이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아이를 보며 '이 자그마한 살덩이가 내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필립. 그는 아이에겐 어찌했든 정말 성실한 아버지였다. 아이가 울면 아이에게 달려갔고, 때론 기저귀도 갈아주었다. 하지만 온전히 아이를 보지는 않았기에 줄리엣은 목이 쉴 때까지 울어야했고, 젖은 기저귀를 다시 차기도 했다. 필립은 아이를 공원이나 슈퍼마켓에 두고 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우유를 먹으면 다 토해버리는 줄리엣. 그로 인해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바싹 마르고 창백해져갔다. 의사가 말하길 아이를 살릴 방법은 '뽀뽀상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뽀뽀를 만들어서 해준다는 뽀뽀상자. 이로 인해 줄리엣은 점점 나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필립의 실수로 뽀뽀상자를 잃어버리게 되고 줄리엣은 상태가 급격도로 나빠지기 시작한다. 과연 필립은 줄리엣을 구할 수 있을까?
뭔가 엉뚱한 구석이 있던 필립의 모습은 마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진지한 코미디를 보는 듯했던 필립의 모습은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가 부모라는 점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엔 그가 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누구라도 아이를 가질 수는 있지만 '부모'가 되는 일은 정말 힘들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 적절한 유머가 곁들어져있어서 더욱 느껴지는 감동이 컸던 이야기였다.
하루하루가, 일주일이, 일년이 그렇게 빨리도 가는지라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무의식의 저 바닥 쪽에서나 남아있기에 평상시에는 거의 생각을 하지 못하는 유년시절의 추억들. 가끔씩 무언가를 계기로 해서 그때를 생각해보면 역시 아픔이나 슬픔보다는 미소짓게 되는 그리움을 곁들인 즐거운 기억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누군가에겐 아픔으로, 누군가에겐 그리움으로, 누군가에겐 즐거움으로 남아있을 유년시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