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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례 - 하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두툼하니 무게감이 꽤 있는 두 권을 받고 내심 놀랬었다.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무게감이 있을줄이야 싶었기 때문이다. 왠만한 사전 못지 않은 무게에 살짝 기가 죽은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가상의례. 어느 새 1권을 훌쩍 읽게 되고, 2권도 곧이어 마무리가 될 만큼 정말 빠르게, 매 페이지마다 긴장감을 느끼면서 본 책이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 둔 후 아내와 이혼까지 하고 혼자 남은 마사히코. 자신을 밑바닥으로 밀어버린 야구치를 우연히 만나 그에게 복수를 하고자 하지만 그 역시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된 상태였다.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둘은 새로운 사업으로써 "신흥종교"를 떠올린다. 아무런 밑바탕이 없어도 신자만 많이 모인다면 벤츠를 타고 다닐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된 신흥종교 사업. 어설프게 인터넷 홈피부터 시작했지만 생각외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서 사업은 점점 번창하게 된다.
그러나 어딘지 사이비 냄새가 나는 마사히코의 종교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의 일부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년, 잘 알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호텔에서 몇 년간 사육을 당했던 여자, 가정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여기는 여자, 아버지와 친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여자...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문제로 인해 점차 그들의 정신까지 병들어가고 있던 사람들..그들은 마사히코의 종교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했다. 일상 생활에서는 접하기 힘든 사례들을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무수히 겪게되는 마사히코. 자신이 공무원이었을 적에는 외면하기 바빴을 그들의 삶을 수입을 위해서 껴안기 시작하면서 마사히코는 일본이라는 사회가 정말 많이 병들어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모여서 키워나가던 신흥종교는 어느 기업인과의 만남으로 그 세가 점점 커지게 되고 집회를 위한 장소까지 여러 곳이 생기게 된다.
벤츠까지는 아니더라도 별다른 노력없이 신자들이 내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세가 커지면서 유명세까지 타게 된 마시히코. 나름 만족한 삶을 살게 되지만 애초에 정직하지 못했던 그의 사업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기업인이 무너지게 되면서 함께 추락의 길을 걷게 된다.
마사히코와 야구치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어설프게 종교 사업을 시작한 초반에는 과연 이 사업이 성공을 하겠는가 싶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점점 모이고, 종교가 점차 확장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놀라웠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종교에 의지할 수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옴진리교라는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 사건이 있었던 나라이거늘.
현실에서의 고통을 종교라는 수단으로 잊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정신력이란 그 어느 것 보다 강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약하기도 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마사히코가 일으킨 종교가 인간의 정신력이 나약함을 보여줬다면 후반부에 등장한 매스컴이란 존재는 종류만 다를 뿐 그 또한 어느 사이비 종교 못지 않게 사람들을 한 곳으로만 몰고 갈 수도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였줬다.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만을 잘라내어 그것이 전부인 것마냥 보도를 하는 모습은 정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로 인해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 또한.
두툼함 무게 만큼이나 소설 '가상의례'는 정말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책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의 관계 혹은 비정상적인 가정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종교에 빠져드는 지를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종교에 심취되었을 때, 개인이 아닌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무서움 또한 빼놓지 않았다. 게다가 비겁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미숙하다 여겨지는 매스컴의 거부하고픈 위력까지.
'종교'라는 존재를 다루면서 어쩜 이리 긴 글을 썼을까 싶은 생각을 읽는 도중엔 절대 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마사히코의 종교가 성장해가는 과정부터 몰락을 향해 치닫는 과정까지, 매순간 정말 생각지 못했던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던,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정말 재미있게(재미있게라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읽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