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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에 박민규씨의 핑퐁이란 책을 잠깐 봤었다.
굉장히 독특했던 책이었는데, 그 독특성이 당시엔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지라 끝까지 읽지 못하고 도중에 접었던 것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당시 느꼈던 신선함이 5년만에 나온 신작이라는 말에 궁금증을 더해줬고, 책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원래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선호하긴 하는데, 왠지 박민규씨의 글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무려 18편이라니..굉장한 상상의 세계를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같은 제목의 1,2권으로 나누어져있는 두 권의 책 속에는 총 18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그중 가장많은 기대를 하고 보게 된 A권의 1편은 정말 예상외의 내용이라 솔직히 좀 놀라웠다. 왠지 바로 판타지가 나올거라고 단정짓고 페이지를 넘겼었는데..이건..판타지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예상지 못한 죽음 선고에 고향으로 내려가 남은 삶을 보내려는 남자의 이야기. 큰 병을 앓아보지도 않았고, 오랜만에 멀리 떨어져 살던 고향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풀어본적도 없는데..왠지 다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은 뭐랄까..공감을 넘어서서 조금 슬펐었다. 사람 인생이란 것이 이렇게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구나 싶어서. 그리고 그 느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해 냈을까 싶어서 갑자기 작가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가, 조금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단편의 대다수가 이렇게 서정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판타지에 더 가깝다고 해야하나. 각각의 이야기 속엔 참 많은 등장인물들과 배경들이 존재한다. 그 장소의 대부분은 지구이지만 판타지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지구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름조차 지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가 인류를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은 바이러스와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화성인에게 납치되어 화성인 A,B,C와 사랑을 나눈 사람의 이야기, 무림의 고수였느나 변해버린 세상 속에선 그저 경제력 없는 철부지 아버지가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아! 정말 기분나쁠 정도로 이해안되고, 무섭고, 잔인한 미친놈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기름과 물을 얻는 방법이 그야말로 원시적이고, 잔인했던 사람..
읽는 동안에는 한 편 한 편 따로 읽다보니 각각의 이야기가 그저 하나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적어내려가다보니 참 많은 이야기를 다루었구나 싶었다. 어쩜 한 사람의 머리에서 이렇게 다양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까. 또한 그걸 글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참..부럽고, 얄밉다.
사실 '핑퐁'이란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이유 몇 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눈에 약간 무리를 주는 듯한 생소한 띄어쓰기였다. 문체도 당시로선 참 특이하다 싶었는데 띄어쓰기까지 그러하니..솔직히 차분히 읽기가 좀 힘들었었다. 그 점이 이번에도 조금 걱정스러웠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괜한 걱정이었다. 문득 핑퐁을 다시 한 번 도전해볼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모든 인간들이 지니고 있을 어떤 모습들이었다. 가족들을 위해 자존심 다 구겨가며 일하는 아버지들, 지구의 끝과 같은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성공해내고자 하는 집작과 같은 도전정신, 몇 십년 혹은 몇 백년이 지난 후에 깨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살아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들..
이렇게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를 전혀 당연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로 꾸며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는 이 단편 소설집.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은 정말 최고였다. 그 여운이 상당히 오래 남았었다. 그로 인해서 개인적으로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시는 것도 좋지만 이 이야기와 같이 서정적인 내용의 글들도 좀 많이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다음번의 책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