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
켈리 함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스몰빅아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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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 ㅣ 켈리 함스 ㅣ 허선영 옮김

스몰빅아트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이제야 지금 가진 것을 사랑하면서 내 아이들과 삶과 친구들을 사랑하면서

여전히 더 많이 원해도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밖에 나가서 더 많은 것을 얻어도 괜찮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랑과 우정성취감을 얻으면서도

여전히 멋진 엄마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100% 엄마이면서도 

여전히 100%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내 아이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보는 것도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p. 394 그가 자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깜짝 놀란다. 3년 전에,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인생에서 아장 힘든 순간마다 글자 그대로 잠에 빠져 그 어려움을 나 혼자 헤쳐나가도록 내버려둔 배우자와의 종신형에서 나는 벗어난 셈이다. 내게 일어난 가장 최악의 일이 또한 내 삶에서 가장 행운의 순간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다면? 이혼도 아니고 사별도 아니고 덜렁 아이들과 남겨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는 남편이 갑자기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난 후 혼자서 육아와 경제를 모두 담당하며 살아야 했던 한 여성이 다시 남편과 만나면서 달라지는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인생이란 한 번 던져진 주사위 같은 것, 다시 던질 수도 없고 무를 수도 없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주인공은 자신의 힘든 상황을 한탄하기보다는 열심히 살아왔고 항상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고민했다. 그 고민이 같은 여자로서, 주부로서, 엄마로서 높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이 많았다.



주부로만 살다가 3년 전 남편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일을 해야 했고 양육수당 없이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에이미는 강하게 버텨왔다. 그리고 지금의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남편 존은 이제 와서 아이들과 방학동안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요구해온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에이미는 용서해 줄 마음이 없다. 고민 끝에 에이미는 일 때문에 뉴욕으로 떠나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지내게 된다. 에이미는 뉴욕에서 대니얼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만큼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가 주어진다. 한편 남편 존의 카드를 옛 애인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 에이미는 남편이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가 존을 받아주지 않기로 결심하고 아이들이 자신을 더 이상 찾지 않음에 불안함을 느껴 대니얼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실로 오랜만의 경험이고 대니얼은 정말 멋진 남자였지만 에이미는 아이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존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상의하는데 그때 갑작스럽게 전화가 걸려온다.



책을 읽으며 내게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해 봤는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주제인데다가 무거운 주제였기 때문인데 생각보다 책은 무겁지 않았다. 물론 주인공의 고민이 묻어나고 애써왔던 지난 과거를 떠올리면 주인공에게 연민도 느껴지고 안타까웠지만 그것보다는 새로 펼쳐지는 주인공의 인생에 응원을 보내고 있었고 유머를 장착해 유쾌하게 읽었다. 주인공은 엄마로서의 삶과 여자로서의 삶 사이에서 고민한다. 자신의 삶보다는 아이들을 위해서, 아니 아이들이 크면 곧 독립할 테고 그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런데 이 선택이 아이들을 위해서 희생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아이들을 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또한 남편이 떠났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신파로 흐르지 않아서 이야기가 좀 더 세련되게 다가왔다. 자칫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일 수 있는 주제인데 주인공 에이미는 엄마로서의 삶과 온전한 자신으로서의 삶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좋아 보였다.   



<#남편이떠나면남편에게고맙다고말하세요>에는 에이미가 가족들과의 추억, 임신의 추억 등등 여러 가지 디테일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주부는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여자일 수가 없음을 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모성애 때문일까? 엄마가 되는 순간 여자는 마치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듯 사랑과 남편은 약간 뒷전이 되는데 이런 디테일들이 책에 살아있다. 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가정을 통해 여자가 느끼는 부분, 남편과의 갈등 등 결혼생활에 대한 애환을 주인공 에이미와 함께 나눌 수 있다. '주인공이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시간'을 '가족과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아갈 것을 예고하며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남편이 떠나면 슬픔에 잠겨있지말고 오히려 새 인생을 살 수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도전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준다. 언제든 삶에 대한 강한 애착만이 내일을 희망할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과 함께 책을 덮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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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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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ㅣ 치누아 아체베 ㅣ 조규형 옮김 ㅣ 민음사






그의 삶은 하나의 큰 열정, 즉 부족의 촌장이 되는 것에 사로잡혀 왔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용수철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거의 다가와 있었다.

그때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민족들의 슬픔을 담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현재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좀 낯설고 생소하며 조금은 발달되지 않은 미개의 문화처럼 느껴지지기도 하고 그들의 삶은 산업과 문명이 발달 되기 전의 우리들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외부의 문명, 외부의 힘에 의해 무너지고 서구화되어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는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삶들이 점차 외부인들에 의해 무너져가는 전초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다. 아프리카 문학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그들의 문화가 이질적으로 다가왔지만 안쓰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끝을 알고 있기에 그랬을까? 그들의 순수한 문화가 언젠가는 무너짐을 알고 있었기에 이야기는 슬펐고 제목마저 슬픔을 가중시켰다.




음악을 좋아하고 흥청망청 놀았던 아버지에 비해 강하고 훨씬 현실적인 남자였던 오콩코는 마을에서 인정받는 남자였고 인근 마을에까지 소문난 씨름선수였다.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와 달리 오콩코는 재산을 불리고 가정을 지켰으며 더 나아가 부족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남자다움', '강함' 등에 강박관념을 보이는 남자였다. 자수성가했고 좀 더 자신의 강함을 부족에게 보이려 애썼다. 오콩코라는 남자를 통해 이보민족의 삶과 문화를 이야기하고 그들이 모시는 신에 대한 높은 충성심 또한 이야기 곳곳에서 뚜렷하게 보여진다. 그들의 신은 그들에게 절대적이다. 이런 그들에게 외부의 신이 마을에 들어오고 마을은 술렁인다. 부족이 믿던 신은 신이 아니고 오로지 유일한 신만이 존재한다며 교회를 짓는 외부인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생겨나는데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부인하고 신을 아버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오콩코의 큰아들 은워예도 그중 하나다.




내가 믿던 신들이 신이 아니라고? 옳다고 믿고 지키며 살아왔던 민족에게 새로운 신의 존재는 당황스럽다. 그런데 이 신의 존재가 그들의 마음에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고 점점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한다.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외부의 힘, 그것에 의해 무너져가는 민족의 모습은 안타깝고 슬프다. 결국 부족은 그들이 만든 법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한 남자의 운명을 통해 아프리가 민족이 무너짐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강한 남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오콩코가 한순간의 실수로 유배되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현실을 느끼는 것을 아프리카 민족의 운명과 동일시 한 것이다.



치누아 아체베라는 나이지리아 작가는 그동안 아프리카 민족들의 삶을 다큐멘타리로 만 접해왔던 내게 보다 디테일한 삶과 그들의 문화를 알려주었다. 이야기 속 그들의 풍습이라는 것은 미신적인 것에 가깝고 여성에 대해 억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 작가는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은 듯하다. 작가는 서구, 외부의 세력이 그들의 문화를 잠식함에 있어서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점이 작가가 치우치지 않고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제목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재림>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이츠는 이 시에서 기존 체제의 붕괴가 또 다른 체제를 잉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노래했다고 한다. 이 점을 치누아 아체베는 공감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또 다른 체제를 잉태하는 것이 꼭 희망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예이츠의 시를 따서 제목을 정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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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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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 ㅣ 로미 하우스만 ㅣ 송경은 옮김 ㅣ 밝은세상





"아빠가 나를 찾아주어야 해요."

"그래, 아빠가 널 찾아낼 거야. 이번에는 널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서둘러야 해요."




재미있는 스릴러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번 <사랑하는 아이> 또한 결말에 이르러 밝혀질 진실 때문에 궁금증이 증폭해 몇 장을 건너 뛰어 결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건이 발생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 피해자가 눈앞에 나타나 이제 진실이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인 상황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는 몰입감도 좋았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뭔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느낌이어서 전혀 사건의 맥을 짚기가 어려웠다. 스릴러를 보다 보면 대충 어떻게 흘러가겠다는 계산이 나오는 작품들이 있다. 결말을 마주했을 때 '내 생각이 맞았네'라는 생각이 들면 뻔한 작품이 되고 아쉬운 작품으로 남는다. 그러나 읽으면서 결말에 가까워 오는데도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면 결말을 마주할 때의 놀라움은 커져있고 만족감도 높아진다. <사랑하는 아이>는 만족감도 높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에필로그에서 마치 작가가 요건 몰랐지~ 하면서 준 듯한 반전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랄까?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건의 진실을 뒤엎는 느낌은 작가가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독일 <슈피겔>지 집계 베스트셀러 1위였다니 그럴만 하구나 싶었다. 재미있었다.




14년 전 레나 벡은 실종되었고 교통사고 환자가 실종된 레나와 비슷하다는 연락을 받고 레나의 부모는 병원으로 뛰어간다. 확인 결과 그녀는 레나가 아니였고 부부는 실망하지만 곧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환자의 딸인 한나가 자신들이 잃어버린 딸 레나의 어릴 적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그들은 체코 국경 부근의 오두막에서 살아왔고 한나는 레나의 딸이 맞았다. 레나에게는 한나 외에도 요안나라는 아들도 있었다. 오두막에는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납치범이 있었지만 그의 DNA는 한나와 요안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처음에는 자신을 레나라고 밝혔던 환자도 자신의 이름이 야스민이라고 말하며 4개월간 오두막에 갇혀 생활해 왔다고 말했다.


야스민은 납치범의 머리를 스노볼로 내려치고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퇴원 후 이상한 편지를 두 차례 받는다. '레나를 위해', '진실을 말해'. 야스민은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그것을 알고 야스민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일까? 야스민은 이야기 내내 레나에게 말을 건다. 자신과 레나는 같은 배를 탔으며 자신을 마음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레나밖에 없다고. 왜 야스민은 레나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 레나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레나, 당신이 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편안히 잠이나 잘 수 있겠어. 한시바삐 납치범의 신원을 밝혀내야겠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레나, 당신과 나는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야. 사실 나보다 더 핵심 인물은 당신이기에 나는 단지 수사에 도움을 주는 부수적인 역할을 맡고 싶었어."

"당신이 나를 믿는다는 걸 알아.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찍은 당신의 사진을 보았어. 수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밝고 행복한 얼굴이었지.

레나, 당신도 발길질과 주먹질이 날아들 걸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은 적이 있을거야. 그는 내 예상이 빗나가게 하는 걸 즐겼어."




<#사랑하는아이>는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한나와 야스민의 생각은 독자로 하여금 사건을 풀어나가기 어렵게 한다. 분명 야스민은 오두막에서 4개월을 지냈기에 야스민이 한나의 엄마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나의 엄마와의 기억은 야스민인지 레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야스민의 이름이 레나이며 친엄마처럼 대하는 행동 때문이다. 이런 분간의 어려움은 야스민에게서도 느껴진다. 야스민의 기억이 실제인지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레나의 아버지인 마티아스가 말하는 레나의 모습과 언론에서 말하는 레나의 모습은 정반대를 말해 레나의 이중적 모습에 독자는 더욱 혼란스럽다. 이런 상황에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독자를 끌어당기고 이야기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그리고 마주한 범인의 정체는 당혹스럽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쓸 때는 어떤 장르든 스포를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스포 하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아이>를 읽을 예정인 독자라면 힌트를 던져주고 싶다. 그저 읽기에 빠져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가 아니라 범인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독자라면 어떤 인물이라도 믿지 말고 용의자로 생각하며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훨씬 높은 몰입감과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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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 - 섬세하고 세심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 안내서
다케다 유키 지음, 전경아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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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경 썼더니 지친다 ㅣ 다케다 유키 ㅣ 전경아 옮김 ㅣ 미래지향




'섬세함'은 성격상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키가 큰 사람이 신장을 줄일 수 없는 것처럼

섬세한 사람이 '둔감해지고' '눈치를 못 채기'란 불가능합니다.

섬세한 사람이 편안한 마음으로 기운차게 살아가려면

오히려 섬세한 감성을 소중히 해야합니다.





<너무 신경 썼더니 지친다>의 작가 다케다 유키는 자신도 섬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자신이 어떤 일로 인해 생각을 바꾸고 나니 인간관계도 편안해지고 업무를 볼 때도 힘을 빼고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하게 된 후부터는 오히려 섬세한 사람을 위한 카운슬러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는 섬세한 감성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편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책으로 썼다. 그러니까 <#너무신경썼더니지친다>는 바로 섬세한 감정을 가져 너무 지친 이들이 둔감해지는 방법을 택하기 보다 오히려 자신의 섬세한 감정을 소중히 하면서도 편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쓴 책이다. 섬세한 감성을 지녔고 한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털털해 보여도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는 섬세한 사람들을 위한 책, 과연 어떤 것이 나를 스트레스로부터 멀리해주며 나의 섬세한 감성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편하고도 씩씩하게 살 수 있게 할까?



섬세한 사람이란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박사가 제창한 HSP(Highly Sensitive Person)에 의한 개념으로 그들은 '농담 섞인 사소한 한 마디를 흘려 넘기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둡니다', '직장에서 심기가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요', '조용한 직장에서 일하고 싶어요', '내가 생각하는 건 어딘가 이상한가 봐', '주변 사람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등의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양심적이면서도 남을 배려하기도 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심약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었다. 이들에 대해 작가는 여러가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재미있게 느껴진 건 오감별, 그러니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오감별로 나누어서 더 예민한 감각을 찾아내고 이것의 예방과 케어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나의 오감 중에서도 좀 더 예민한 것을 예방하고 케어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디테일한 솔루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쳤다는 건 애썼다는증거





책을 읽으며 내가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지쳤다는 건 애썼다는 증거'라는 대목이었다. 내가 예민한 타입이어서일까? 작가는 '섬세함'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라고 한 부분도 위로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지쳤다는 건 애썼다는 증거'라는 대목에서는 위로를 넘어 '괜찮아, 잘했어'라고 인정까지 받은 기분이었다. 예민하고 섬세하신 분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다. 그런데 예민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과하고 좀 한 편으로 치우친,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넌 너무 예민해'라며 콕 집어 상대가 말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타고난 기질이며 애썼다는 얘기는 지금껏 들은 예민하다는 얘기가 다 소멸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신경 썼더니 지친다>를 읽으며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도 많네'와 '이건 딱 내 얘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자꾸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건 공감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섬세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내용이 참 궁금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을 어떻게 자신의 그 기질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씩씩하고 편안하게 살게 한다는 거지? 하는 약간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타고난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좋은 달란트를 타고난 사람들을 얘기할 때도 쓰지만 좋지 않은 점을 타고났을 때도 얘기한다. 좋지 않은 '타고남'의 원천성을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기에 방법적으로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은 예민한 사람뿐 아니라 예민하지 않지만 뭔가 일이 꼬이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아무리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환경이 바뀌거나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는 위축되기 마련이고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을 일들이 자꾸 거슬리는 법이지 않은가. 섬세하거나 예민하지 않아도 너무 신경 써서 지쳤을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힘이 되어줄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은 '예민'과 '섬세함'을 장착한 사람들이 우선 타깃이다. '내가 한 예민한다', '좀 섬세하다', '그래서 상처도 받고 늘 자신감이 없다' 하시는 분에게 '박카*' 같은 힘을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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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수도원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최인자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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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수도원 ㅣ 제인 오스틴 ㅣ 최인자 옮김 ㅣ 시공사




p 99 춤과 결혼 모두, 남자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반면, 여자는 오직 거절할 권리만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상호간의 이익을 위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둘 다 상호간의 이익을 위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약속입니다. 또한 일단 그 관계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계약이 해제될 때까지 오직 서로에게만 속해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의무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녀의 작품을 더 읽어봐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게 된 <노생거 수도원>. 한 권 안에 1, 2권으로 나눠지는데 1권까지는 잘 읽히지 않았다. 사교계에 처음 발을 내딛는 아가씨의 친구 사귀기와 부인들의 드레스에 대한 대화 내용들이 당시의 사교문화를 보여주지만 내게는 좀 지루하며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오만과 편견>이 어른스러운 로맨스 소설이라면 <노생거 수도원>은 중학생을 위한 로맨스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오만과 편견>과는 깊이 면에서 아쉬운 느낌이었다.



너무나 평범한 캐서린은 열다섯 살이 되자 점차 예뻐지기 시작했고 열일곱 살이 되도록 연애적 경험을 하지 못했다. 캐서린이 사는 곳의 가장 재산이 많은 앨런 부부는 캐서린을 좋아했고 마침 앨런부부가 치료를 받기 위해 바스에 가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은 참에 캐서린과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곳에서 캐서린은 사교계에 입문해 이사벨라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캐서린의 오빠 제임스와 이사벨라는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고 약혼 허락까지 받는다. 캐서린은 사교계에서 헨리 틸니라는 젊은이를 알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의 초대로 노생거 수도원에 가게 된다. 영국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노생거 수도원에 가게 된 캐서린은 돌아가신 헨리 어머님의 죽음을 틸리 장군이 슬퍼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혹시 부인의 죽음에 뭔가 은밀한 비밀이 숨어있는지 궁금해한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소개받지 못한 틸니 부인의 방을 둘러보고 나왔는데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발소리가...



캐서린은 이사벨라의 오빠인 소프 씨로부터 삐뚤어진 애정을 받지만 정작 캐서린은 그것이 애정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 소프 씨는 캐서린의 약속이나 감정은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만 둘의 관계를 끌어가려 한다. 덕분에 캐서린은 틸니 씨 남매에게 큰 실례를 저지르게 되고 캐서린은 소프 씨와 이사벨라의 행동으로 자신이 사람보는 눈이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이런 점에서 독자는 캐서린의 연애 성장기를 보게 된다.



작가는 <노생거 수도원>에서 당시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인지를 돌려 설명한다. '여주인공다운 자질을 타고나지 못한 캐서린이~', '캐서린은 그림에 취미가 없었는데 연인의 옆모습을 스케치할 실력조차 안 될 정도였다. 이 점에서는 진정한 여주인공의 자격에 한참 못 미쳤다.' 등의 문장에서 기존의 여주인공들과는 다른 캐릭터라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실상은 당시의 여주인공들이 어쩌면 판에 박힌 이상향을 가지고 있음을 돌려 말하고 있음이다. 작가는 시대적 배경을 꼬집는다. 능동적인 남자에 비해 여자는 수동적이며 소설은 여자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를 말한다. 실제로 제인 오스틴은 결혼이 성사될 뻔한 일을 두 번 정도 겪었지만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 아마 결혼이라는 제도 아래 여성이 겪어야 할 일들이 부당하다고 느꼈을 듯하다.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결혼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정해지는 시대여서 제인 오스틴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었음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노생거 수도원에 입성해서 틸니 장군의 부인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풀려는 캐서린의 행동은 당시의 연애소설에서는 보지 못하는 스릴러를 장착하기도 했고 아직은 풋풋하고 어설프며 엉뚱하기도 한 캐서린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결말이 로맨스 소설의 정해진 수순 같아서 아쉬움은 남는다. 성숙한 로맨스보다는 성숙해져가는 과정을 즐기는 독자라면 즐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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