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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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 앤서니 버지스 / 박시영 옮김 / 민음사




선의 원인은 밝히지도 않으면서 왜 그 반대쪽이냐고.

만일 인간이 착하다면 그건 지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난 그런 기쁨을 방해할 생각이 없어. 그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야.




15살의 알렉스는 폭력과 절도, 강간, 약물을 일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시한폭탄 같은 아이다. 밤마다 같은 부류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세상이 너무 쉬우며 범죄가 놀이인 알렉스. 도서관에서 나오는 중년의 신사를 폭행하고 대출한 책을 찢어발기며 속옷바람으로 만들어 도망가는 이를 보고 낄낄거리고 우연히 작가의 집에 한 밤중에 쳐들어가 작가의 부인을 유린하는 알렉스와 친구들. 우연히 작가의 책상에 놓인 종이 뭉치를 발견하는데 제목이 시계태엽 오렌지였다.



라이벌과는 팽팽한 세력으로 대치하며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의 기어오름을 적당히 견제도 해야 하는 알렉스. 그의 비행은 계속해서 사고를 부른다. 조지의 제안으로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을 털기로 한 알렉스. 집에 침입해 할머니와 몸싸움을 벌이다 은 조각상으로 할머니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고 곧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소리에 집을 뛰쳐나온다. 그러나 친구들은 알렉스를 배신하고 알렉스는 경찰에 연행,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미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알렉스는 2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지만 또 다시 폭행을 저지르고 결국 루도비코요법이라는 조건반사 연구에 투입된다. 폭행과 강간의 영상들을 강제로 시청하고 약물요법을 병행하는 이 연구를 통해 알렉스는 괴로움을 느낀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눈물까지 흘린다.



성공적인 갱생 요법 결과에 짧은 수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반기지 않는 부모를 보고 집을 나온다. 자신과 비행을 저질렀던 친구가 경찰이 되었고 그 경찰에 의해 폭행을 당한 알렉스는 우연히 어느 집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바로 시계태엽 오렌지를 쓴 작가의 집이었다. 인생은 부메랑일까?





알렉스는 그들의 계획과 처치에 놀라운 효과를 본 최초의 마루타였다. 손과 발이 묶이고 머리가 고정되고 눈을 감을 수 없게 하여 제공되는 영상을 강제로 보고 괴로워하는 알렉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움질일 수 없는 시계처럼 강제적으로 악을 근절하게 만드는 시도. 의지력을 갉아먹는 조건반사 기법을 채택한 이들의 시계가 된 알렉스. 현재의 시점으로 통찰하자면 이것은 범죄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아닐까? 작가는 시계태엽 오렌지를 통해 국가가 개인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것을 알렉스라는 비행청소년을 예시로 고발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 개인은 어떻게 악을 멀리하고 선을 선택하는가?



나이가 들어 사리판단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철이 들어가며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렉스를 통해 작가는 제시한다. 갱생요법과는 관계없이 철이 들어가는 18살의 알렉스. 청춘이 자신의 범죄의 근원이었음을 결론지으며 스스로 깨달아가는 주인공. 그리고 모든 것을 독자에게 털어놓은 우리의 화자, 그는 이제 어떻게 될까?



시계태엽오렌지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비행청소년이 자신의 범죄를 낱낱이 고하고 피해자들의 슬픔을 하나하나 헤아려가며 갱생되는 교과서적 소설이 아니었다.선과 악의 선택, 그것은 국가의 몫일까, 개인의 몫일까?




"난 몸속에 텅 빈 자리를 느꼈고 스스로도 놀랐어.

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 거야, 형제 여러분.

철이 든다는 것이겠지.

청춘은 가버려야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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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리커버) - 이우 장편소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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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 이우 / 몽상가들




책장이 하나의 지도라면 읽은 책들은 내가 여행한 곳이고, 

읽지 못한 책들은 내가 앞으로 여행할 곳이야.

책은 시간을 내서 읽는게 아니라 시간 날 때 읽는거야.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야 시도들이야. 보물은 거기에 있어.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열었던 전시회, 그러나 돌아온 건 혹평. 화가가 되고 싶은 곧 서른이 되는 남자, 기윤.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동창모임에서 잊고 있었던 이름을 듣게 된다. 시인을 꿈꿨던 민재. 현기증을 느낀다. 동창모임에서 나온 기윤은 민재를 떠올리며 졸업한 학교로 간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속으로 향한다.


교내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최상민의 신발은 에어맥스97. 기윤은 신발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에어맥스95를 어렵사리 구해 신는다. 그리고다가 온 최상민. 그와 패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서로 옷과 신발을 빌려 나눠 입다가 친해지자 기윤의 옆에는 일명 노는 친구들이 붙기 시작하며 교내에서 권력을 누리는 위치에 서게 된다. 축구를 하며 서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를 나눴던 상민, 그러나 어느 순간 기윤이 학원비와 문제집 값을 빼돌려 구한 옷과 신발들은 모두 상민을 위한 아이템이 되어버렸고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라고 생각했으나 변질된 관계에 대해 고민할 즈음 전학을 온 민재. 독서왕상을 노리고 읽지도 않는 책을 대출하던 기윤이 대출한 데미안에 대해 묻는 민재. 늘 도서관에서 만나고 책에 대해 얘기하다 친해진 민재는 종합병원의 이사장 아들로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 눈빛이 우리와는 다른 아이였다.



민재는 또래 친구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 그의 시선과 관련이 있었다.

어딘가 조숙하고 우울하기도 한 것 같은 눈빛으로 그는 분명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 같기도, 진실을 파헤치는 것 같기도 했다.



상민이가 이끄는 무리에서 주먹담당인 관석은 늘 기윤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차에 민재에게 상황을 알리자 저항이라도 하는 것과 저항조차 하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민재는 저항하라고 조언한다. 그의 조언에도 두려움을 가시지 않았지만 저항을 시도하기로 결심하고 민재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기윤은 상민과 만나고 역시나 그의 옆에는 관석이 있었다. 상민과 관석, 2대 1로 주먹다짐을 하게 되는 기윤. 그러나 곧 관석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음을 깨닫는데, 그는 민재였다!


그들의 싸움은 경찰서에서 학교로 이관되 기윤과 민재는 교내봉사를 하게 되고 곧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 기윤에게 관심을 갖는 지민의 친구들과 진실게임을 하며 즐겁게 보내는 도중 민재가 전학 온 이유에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민재는 기윤에게 슬픈 첫사랑에 대해 털어놓는데....





청소년 시절엔 고민이 많다. 그러나 이 고민을 나눌 대상이 없다. 부모님께 얘기하자니 고리타분한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볼 것이고 친구들에게 얘기하자니 도찐개찐이고. 그래서 나보다 성숙한 친구들에게 끌리게 된다. 레지스탕스에서는 그런 친구가 바로 민재다. 하지만 민재 역시 자신의 꿈을 버리고 의사가 되어야 하는 아버지의 인형같은 아이다. 책을 좋아하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아버지와 세상은 그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민재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책도 많이 읽고 시도 열심히 쓴다. 민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불투명한 미래, 불안한 현실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아이들, 강요된 미래, 그리고 싹트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그 속에서 민재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가며 성장하는 기윤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들이었을 기윤. 그런 기윤이 민재와 나누는 우정의 이야기 그리고 성장하는 만큼 아픔이 따른다는 명제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성장소설, <레지스탕스>.




나는 故 박지리 작가를 좋아했었다. 소설을 배운적 없다는 이가 써내려가는 성장소설은 읽고나면 훈훈한 미소를 짓게 되는 감동이 있었다. 어렵지 않은 내용과 문체도 좋았지만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에게 한 편으로 안쓰러움을 한 편으로는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나를 느꼈었다. 그런데 이제보니 좀 더 정확한 이유를 <레지스탕스>를 읽고 알게 되었다. 내가 박지리 작가의 글들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성장소설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 자아는 아직도 성숙되지 않았다. 그 성숙되지 못한 부분이 성장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성장통을 내 성장통으로 여기는 것이다. 불안하고 터질 것 같은 여린 감정 그리고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미성숙된 자아가 부족하지만 여러 시도를 하고 그 시도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은 마치 내가 성장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결국에는 성숙하게 되는 주인공이 마치 나인양 좋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아직도 성장해야하는 자아를 가진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준 <레지스탕스>. 강자와 맞서야 할 때, 그리고 세상과 부모님이 보내는 신호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들의 아슬아슬한 성장이야기. 좋은 문구가 너무 많은 <레지스탕스>, 이 책은 소장용이다.




"너무 암울해. 삶이 비극일 수밖에 없다면."

"역설적으로 삶은 그래서 아름다운거야. 인생은 비극이라는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또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또 발버둥 치잖아.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를 그 모든 불확실한 노력과 투쟁의 날갯짓 때문에 오히려 비극적 삶은 더 아름다워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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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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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 B.A.패리스 / 이수영옮김 / arte



"그날 밤 차 안의 그 여자, 그때는 살아 있었을지도 몰라."



교사들과의 모임을 끝낸 캐시는 폭우가 쏟아지니 안전한 길로 오라는 남편의 우려에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픈 마음에 지름길로 들어섰다. 중간쯤 갔을 때 여성이 탄 차가 갓길에 주차해 있었다. 이런 날에 이런 곳에 주차를 하고 있어 혹시 도움을 원하나 싶어 앞에 차를 대었지만 운전자가 나올 생각이 없다고 깨닫고 캐시는 차를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여성의 피살 사건 뉴스가 캐시를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자신이 봤을 때는 살아있었던 여자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은 캐시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 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게 되는 사건이야기에 어쩔줄을 몰라한다. 그때부터 집으로 걸려오는 말없는 전화, 그리고 잦은 실수, 기억의 혼동은 캐시를 그야말로 극한으로 몰고 간다. 지갑을 집에 두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든지 세제를 두는 곳에 우유를 놓거나 냉장고에서 세제를 발견하고 늘 사용하던 전자제품의 사용법을 기억하지 못한다. 미용실 예약을 잊어버리고 지인들과의 약속을 잊는 일들이 생긴다.



엄마가 죽기 전 3년동안 치매를 앓으면서 수발을 해야했던 캐시는 자신도 치매에 걸릴까봐 두려워한다. 남편 매튜는 아기를 갖지 못한다는 고백을 하고 둘은 결혼을 했으나 캐시는 자신이 엄마처럼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괴로워한다. 자신의 잦은 실수에 남편은 드디어 병원상담을 조언하고 병원에서 조발성 치매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절망에 빠지는 캐시. 죽은 여자가 얼마 전 친구가 된 제인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괴로워하는데 캐시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불안한 캐시는 경비업체를 부르고 남편과 상의하겠다고 했으나 곧 자신이 계약까지 끝냈다는 것을 사인한 계약서를 받고서 혼동하게 되고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주방용품들이 집으로 배달된다. 급기야 쇼핑센터에서는 주차한 차를 찾지 못하는 둥 처방받은 약을 복용함에도 효과없던 캐시, 어느 날 과다복용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는데....



"그동안 그리웠어."



캐시의 기억력의 혼동과 점점 무너지는 자아로 인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지겨워지려는 찰나 드디어 그녀는 무언가를 인지하기 시작하며 하나씩 하나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의문점 뒤에 전혀 절대 의심하지 않았던 인물에게서 단서를 찾고 수수께기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우연한 계기로 모든 일의 배경이 되는 열쇠를 손에 쥐게 되고 드디어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독자와 캐시는 통쾌한 복수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브레이크 다운은 가스라이팅 심리스릴러물이다. 범인은 캐시를 살인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어머니가 앓았던 치매를 도구로 점점 조여간다. 가스라이팅은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서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범인은 상황을 조작해 캐시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에 대해 혼동을 느끼도록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이란 그물에 캐시는 걸려들고 만다. 무기력해지고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그물속에서 여주인공이 서서히 자신을 찾게 되는 Break Down.



오랜만에 보는 심리스릴러물이었다. 무겁거나 생각해봐야할 주제가 되는 책들을 읽다가 이런 스릴러 또는 추미스를 읽다보면 굉장한 속도감과 몰입, 쫄깃해지는 심장에 쾌감을 느끼고 재미를 느낀다. 무거운 책들 사이에 중간중간 읽어주는 요런 아이들은 자극적이다. 살짝 독서가 힘들어질 때 독서 권태기때 아주 좋은 처방이 된다.



B.A패리스는 Behind Door와 Break Down 그리고 Bring Me Back을 썼는데 2017년부터 해마다 책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제보니 전부 제목이 "B"로 시작된다. 뭔가 계획하는 것이 있나? Bring Me Back을 먼저 읽었는데 그러다보니 Break Down도 기대하게 되었고 그만큼 재미있었다.


Break Down, 한 마디로 약 세달 간 한 여성이 궁지에 몰렸다가 기사회생되는 이야기, 통쾌한 복수는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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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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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버지니아 울프 / 박희진 옮김 / 솔 출판사



나는 달려가서 어린 시절의 찬란한 물을 몸에 뿌린다

저녁 때 영혼의 지붕 위에 형성되는 물방울은 둥글고 

여러가지 색깔이다




<파도>에는 이렇다할 사건이 없다. 그저 어린시절 친구인 버나드와 네빌, 루이스, 수잔, 로우다, 지니, 퍼서벌 7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의 대사 속에서 성장과정과 내면을 통한 영혼의 이야기이다. 루이스의 뒷목에 키스하는 지니, 그런 모습을 보고 속상해하는 수잔, 네빌과 보트를 만들다 그런 수잔을 보고 따라가는 버나드, 혼자 남겨져 투덜대는 네빌의 이야기가 취학 전 다뤄지고 그들은 학교에 입학한다. 성장해서 인도로 갔던 퍼서벌이 낙마사하고 그들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리고 성장하고 노년이 되어서도 퍼서벌을 잊지 않는다. 퍼서벌은 죽었고 로우다는 자살했다. 지니는 직업여성이 되었으며 수잔은 평범한 주부가 되고 버나드는 소설지망생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 번째 도전작 <파도>는 <등대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참 난해하고 어렵게 다가온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어렵게 쓴다는 느낌이다. 쉬운 말도 돌려서 하고 늘려서 쓰고. 사실 <등대로>는 별 줄거리가 없다. 그저 의식의 흐름 속에서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흐르고 그 속에서 인물들의 대화나 상황을 통해 감(?)을 잡아야 했기에 어려웠던 작품이었는데 <등대로>는 <파도>에 비하면 쉬운 작품이었다. <파도>야말로 의식의 흐름이 무엇인지 알겠는(?) 작품이다. 그녀의 7번째 작품으로 그녀의 스타일상 기교의 극치에 다다랐다고 인정되는 작품이라고 하니 고난이도의 의식의 흐름을 타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모든 것이 대사로 이뤄어져 희곡작품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시적인 표현들이 넘쳐나고 무언가 함축적 의미를 숨겨놓았나 싶어 힘을 주어 읽었다. 그러다보니 읽기가 너무 고되어 힘을 빼고 편안히 읽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대사라는 것이 누군가와의 대화라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 것들이었고 주인공격인 버나드의 대사를 통해 그들이 성장했고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 있어 성장소설의 느낌도 강했다. 등장인물의 생애를 단계별로 나눠 들려주는 버나드의 대사는 마치 서사시 한 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등장인물 중 퍼서벌은 20대에 낙마사고로 제일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취학전부터 친구였기에 퍼서벌의 죽음은 그들에게 굉장한 슬픔이고 충격이었다. 그러기에 친구들은 퍼서벌을 노년이 될 때까지 잊지 않고 그리워하고 그들의 대사에 퍼서벌이 자주 등장한다. 먼저 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그들에게 퍼서벌은 어떤 의미일까? 퍼서벌은 청춘의 상실이다. 더이상 그들은 청춘이 아니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인생의 무게감만이 남은 군상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페미니즘의 대표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속 여성인물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수잔은 평범한 주부로서 살아가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보이고 직업여성이 된 지니의 삶은 완곡한 표현으로 그녀의 일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육체가 늙어가는 비참함이 엿보여 슬픔을 자아낸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지니처럼 직업여성이 되지 못한 로우다는 고독을 즐기는 사람으로 표현될 만큼 내성적인 여성으로 자살을 한다. 여성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생각했을 그녀가 세 명의 여성을 통해 보여주는 모습은 극단적이다. 결혼을 했지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수잔은 진정 자신의 욕망은 채우지 못한 여성으로 표현하고 직업여성이 된 지니는 어떻게 보면 조금 아름답게도 묘사되는 것은 누군가의 억압으로 결정된 것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창녀란 직업을 선택한 신여성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싶고 당시의 시대에 결혼하지 못하고 직업여성도 되지 못한 로우다는 결국 자살을 택해 다양하지 않은 여성의 삶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파도는 끊임이 없다. 그리고 어떤 일정한 패턴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파도>는 등장인물들의 삶이 파도의 의미처럼 잔잔하지 않고 감지해 낼 수없는 패턴으로 언제 휘청일지 모를 우리네 인생을 <파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닌지 버지니아 울프의 의도를 짐작해본다. 이 소설을 쓰며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여느 소설과는 다른 구조와 아름다운 문장들 때문에. 대작임에도 <파도>를 십분 읽어내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문해력 때문에 부끄럽다.




이 물에서 나가자. 

그러나 파도가 내게 몰려와 그들의 거대한 어깨 사이로 

나를 휩쓸어간다.


나는 돌려세워지고, 첨벙 빠지고, 이 긴 빛들, 이 긴 파도들, 

이 끝없는 길 사이에서 잡아늘여진다,

뒤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격해오는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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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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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장영은 / 민음사




글 쓰는 여자는 빛난다

글 쓰는 여자는 크게 도약한다

글 쓰는 여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25명의 여성에 대한 전기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25명의 여성들의 삶을 통해 그녀들이 왜 써야했고 왜 싸워야 했으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들의 유년시절은 대부분이 불우했거나 교육이나 사회참여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겪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는 상상도 할 수 없었거나 공부를 할 수 있었어도 교육의 기회를 남성들과는 조금 다르게 경험하고 사회적 참여에서 배제되는 경험은 그녀들을 투쟁하도록 이끌었다. 굳이 페미니즘을 거론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의 선배인 그녀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많은 것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기에 투쟁이라는 단어가 넘치지 않는다.




쓰고

투쟁의 산물인 책들은 대부분이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연인>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아들에게 넘치도록 의지하고 딸이 빨리 독립해 가장의 역할을 맡아주기를 은근히 바래왔던 어머니 밑에서의 불우했던 청소년시기를 그대로 자신의 책에 투영하고 있다. 또는 성인이 된 후 결혼에 실패하며 이혼가정에서 육아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도리스 레싱은 혼자서 무거운 짊을 지고 있었음에도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고 글을 썼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듣고도 심드렁했다는 이야기는 그녀가 얼마나 '오로지' 글쓰기에 매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들은 꼭 쓰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자 눈썹으로 유명한 프리다 칼로. 그녀의 인생이야말로 짧지만 삶에 대한 열정이 녹아 있는 삶을 살다간 여성이 아닐까 감히 말하고 싶다. 어릴 적 앓던 소아마비로 오른 쪽 다리가 성하지 않았고 교통사고로 여러차례의 수술을 해야했다. 척추와 자궁을 다친 그녀가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신체적 고통과 그 고통이 주는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그림을 그렸고 남편의 바람과 이혼, 다시 결합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발가락을 절단하는 수술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열정을 그림에 녹아냈다.



싸우고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투영한 소설을 쓴 여성은 흑인이었던 토니 모리슨도 있다. 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토니 모리슨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았고 직접 자신이 겪었던 인종차별을 흑인들의 삶과 역사를 통해 직접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백인 뿐 아니라 흑인에게서조차 환영받지 못하고 독자들의 저항과 항의를 받아야했다. 싸우지 않고는 쓸 수 없었던 공통된 그녀들의 질곡사였다.



살아남다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토지>의 박경리. 한국전쟁을 통해 남편을 잃었고 어린 아들을 잃는 참척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라도 써야했다. <암흑시대>, <불신시대>는 모두 그 때 쓴 소설들이다. 고통을 겪었지만 딸과 함께 살아가야했다. "결코 남성 앞에 무릂을 꿇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으로 글쓰기를 실천했고 "실전을 경험하고 전쟁 이야기만 늘 쓰는 남성 작가에게는 왜 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가."라는 말씀에서 글쓰기조차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상황이 짐작이 된다. 글쓰기를 통해 박경리는 살아남았다.



두껍지도 크지도 않은 책에 25명이나 되는 여성의 전기를 담았다고 했을 때 놀랐다. 알고 보니 이 책은 작가가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이었다. 그 칼럼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인데 많은 여성들을 다루다보니 전문적이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명작가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거나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라 굳이 책을 통해 보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뒤집어 보면 우리가 굳이 검색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잘 모르는 작가도 있었고 알았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작가도 있어서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들의 삶에서 엑기스만 뽑아 낸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부당함을 얘기하고 앞서 나아갔던 여성들의 투쟁으로, 그 투쟁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그녀들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는 것, 목소리에 담긴 메세지를 파악하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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