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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리커버) - 이우 장편소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레지스탕스 / 이우 / 몽상가들
책장이 하나의 지도라면 읽은 책들은 내가 여행한 곳이고,
읽지 못한 책들은 내가 앞으로 여행할 곳이야.
책은 시간을 내서 읽는게 아니라 시간 날 때 읽는거야.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야 시도들이야. 보물은 거기에 있어.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열었던 전시회, 그러나 돌아온 건 혹평. 화가가 되고 싶은 곧 서른이 되는 남자, 기윤.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동창모임에서 잊고 있었던 이름을 듣게 된다. 시인을 꿈꿨던 민재. 현기증을 느낀다. 동창모임에서 나온 기윤은 민재를 떠올리며 졸업한 학교로 간다. 그리고 그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속으로 향한다.
교내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최상민의 신발은 에어맥스97. 기윤은 신발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에어맥스95를 어렵사리 구해 신는다. 그리고다가 온 최상민. 그와 패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서로 옷과 신발을 빌려 나눠 입다가 친해지자 기윤의 옆에는 일명 노는 친구들이 붙기 시작하며 교내에서 권력을 누리는 위치에 서게 된다. 축구를 하며 서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를 나눴던 상민, 그러나 어느 순간 기윤이 학원비와 문제집 값을 빼돌려 구한 옷과 신발들은 모두 상민을 위한 아이템이 되어버렸고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라고 생각했으나 변질된 관계에 대해 고민할 즈음 전학을 온 민재. 독서왕상을 노리고 읽지도 않는 책을 대출하던 기윤이 대출한 데미안에 대해 묻는 민재. 늘 도서관에서 만나고 책에 대해 얘기하다 친해진 민재는 종합병원의 이사장 아들로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 눈빛이 우리와는 다른 아이였다.
민재는 또래 친구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 그의 시선과 관련이 있었다.
어딘가 조숙하고 우울하기도 한 것 같은 눈빛으로 그는 분명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 같기도, 진실을 파헤치는 것 같기도 했다.
상민이가 이끄는 무리에서 주먹담당인 관석은 늘 기윤을 노리고 있었다. 이런 차에 민재에게 상황을 알리자 저항이라도 하는 것과 저항조차 하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민재는 저항하라고 조언한다. 그의 조언에도 두려움을 가시지 않았지만 저항을 시도하기로 결심하고 민재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기윤은 상민과 만나고 역시나 그의 옆에는 관석이 있었다. 상민과 관석, 2대 1로 주먹다짐을 하게 되는 기윤. 그러나 곧 관석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음을 깨닫는데, 그는 민재였다!
그들의 싸움은 경찰서에서 학교로 이관되 기윤과 민재는 교내봉사를 하게 되고 곧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 기윤에게 관심을 갖는 지민의 친구들과 진실게임을 하며 즐겁게 보내는 도중 민재가 전학 온 이유에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민재는 기윤에게 슬픈 첫사랑에 대해 털어놓는데....
청소년 시절엔 고민이 많다. 그러나 이 고민을 나눌 대상이 없다. 부모님께 얘기하자니 고리타분한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볼 것이고 친구들에게 얘기하자니 도찐개찐이고. 그래서 나보다 성숙한 친구들에게 끌리게 된다. 레지스탕스에서는 그런 친구가 바로 민재다. 하지만 민재 역시 자신의 꿈을 버리고 의사가 되어야 하는 아버지의 인형같은 아이다. 책을 좋아하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아버지와 세상은 그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민재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책도 많이 읽고 시도 열심히 쓴다. 민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불투명한 미래, 불안한 현실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아이들, 강요된 미래, 그리고 싹트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그 속에서 민재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가며 성장하는 기윤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들이었을 기윤. 그런 기윤이 민재와 나누는 우정의 이야기 그리고 성장하는 만큼 아픔이 따른다는 명제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성장소설, <레지스탕스>.
나는 故 박지리 작가를 좋아했었다. 소설을 배운적 없다는 이가 써내려가는 성장소설은 읽고나면 훈훈한 미소를 짓게 되는 감동이 있었다. 어렵지 않은 내용과 문체도 좋았지만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에게 한 편으로 안쓰러움을 한 편으로는 응원을 보내고 있는 나를 느꼈었다. 그런데 이제보니 좀 더 정확한 이유를 <레지스탕스>를 읽고 알게 되었다. 내가 박지리 작가의 글들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성장소설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 자아는 아직도 성숙되지 않았다. 그 성숙되지 못한 부분이 성장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성장통을 내 성장통으로 여기는 것이다. 불안하고 터질 것 같은 여린 감정 그리고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미성숙된 자아가 부족하지만 여러 시도를 하고 그 시도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은 마치 내가 성장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결국에는 성숙하게 되는 주인공이 마치 나인양 좋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아직도 성장해야하는 자아를 가진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준 <레지스탕스>. 강자와 맞서야 할 때, 그리고 세상과 부모님이 보내는 신호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들의 아슬아슬한 성장이야기. 좋은 문구가 너무 많은 <레지스탕스>, 이 책은 소장용이다.
"너무 암울해. 삶이 비극일 수밖에 없다면."
"역설적으로 삶은 그래서 아름다운거야. 인생은 비극이라는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또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또 발버둥 치잖아.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를 그 모든 불확실한 노력과 투쟁의 날갯짓 때문에 오히려 비극적 삶은 더 아름다워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