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
그리어 헨드릭스.세라 페카넨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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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 / 그리어 헨드릭스 * 세라 페카넨 /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

 

 

 

 

가장 무방비해진 순간, 그녀들이 내게로 왔다!

 

 

 

룸메이트인 션을 짝사랑하고 얼마 전 직장에서 해고되어 지금은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는 셰이. 션의 연인 조디는 아예 우리 집에 와서 살다시피한다. 친구로 시작해서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거라 예상했지만 조디와 결혼할 것 같은 션. 외롭고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머리를 묶느라고 놓친 출근길 지하철. 다음 열차는 2분 후면 도착한다. 그런데 나처럼 178센티미터 정도 돼보이고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여성이 지하철 플랫폼 가장자리로 다가간다.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경고한다. '너무 가까워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괴로워하는 셰이. 셰이는 그녀의 추모식에 참석하게 되고 추모식장에서 죽은 여자 어맨다의 친구들을 만난다. 커샌드라와 무어자매는 화려하고 세련된 성공한 여성들이었고 그녀들에겐 끈끈한 관계로 형성된 또 다른 친구들이 있었는데 셰이는 그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무리에 섞이고 싶은 감정을 느끼며 죽은 어맨다와 아는 사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들을 위해 자신도 모르게 범죄를 저지르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외로운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죠."

 

 

 

<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을 통해 그리어 헨드릭스와 세라 페카넨이란 작가를 처음 만났다. 여성 듀오 작가로 호흡을 맞추며 출간한 책이 세 번째라고 하는데 그래서인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체와 탄탄하게 이어지는 스토리가 뒤로 갈수록 만나지는 클라이막스를 더욱 기대되게 만들었다.

 

 

45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아다지오로 시작해서 안단테로, 읽기를 시작한 독자의 스텝이 꼬이지 않게 작가는 독자를 천천히 리드한다. 물론 사건해결에 불이 붙은 PART3에서는 알레그레토에서 프레스토로 몰아붙인다. 이때 나약하고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여주인공 셰이의 활약을 기대해 볼 만한 <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은 시장조사원이라는 직업의 여주인공을 통해 빅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셰이는 어릴 적부터 통계에 관심이 있고 집착하는 면도 보인다. 모든 일을 데이타에 의존하고 데이타에 의해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있는 인물이다. 물론 사건해결에 도움을 받기도 하는 이 데이터적 사고방식이 요즘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은 빅 데이터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주인공의 데이터적 사고방식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한 사건의 속도가 인물별로 진행되는 것도 매력이다. 여성 듀오작가라니 여성에 대한 심리묘사를 간과할 수 없다. 셰이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을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것과 외로움을 가진 이의 빈틈을 노리는 가해자의 심리도 사건을 훨씬 깊게 이해하게 되는 요소가 된다.

 

작가들의 전작이 궁금해지는 <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 여성들의 심리묘사와 데이터의 활용이 돋보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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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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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 움베르토 에코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그런 기사를 쓰자면 재주가 있어야 해요. <아마>와 <어쩌면> 같은 말들을 넣어 예상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실제로 벌어질 일을 이야기해야하는 거죠. 정치인들의 이름도 간간이 들어가야 해요. (78p)


여기 밀라노 옆에 있는 베르가모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보도하지만, 시칠리아의 메시아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겠죠?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85p)


뉴스 만들기, 이건 멋진 표현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뉴스를 만들어야 하고, 행간에서 뉴스가 튀어나오게 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쉰 살의 콜론나는 주필 '시메이'라는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에 대한 대필을 제의받고 창간되지 않을 신문의 편집부에서 일을 하게 된다. 창간되지 않을 신문 도마니(내일)는 주필을 중심으로 1년 동안 신문창간의 준비를 하게 되는데 나와 주필을 빼고 채용된 6명의 기자들은 도마니가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신문이 정말로 창간되지 않는다면 준비과정의 일들을 나, 콜론나가 시메이를 대신해 집필하고 폭로하려는 시메이의 속셈인 것이다.


데스크의 역할을 하는 나, 콜론나는 도마니의 창간 의도가 궁금하다. 그것은 금융계와 정계의 거물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내용으로 만들어 거물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거물들에게 신문 창간계획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그 댓가로 거물들의 성역에 한자리를 차지하려는 콤멘다토레의 욕심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간되지도 않을 신문을 무기로 세력가인 콤멘다토레의 욕심을 위해 우리모두가 존재하는 것이다.


창간 예비호를 만들기 위해 주필을 중심으로 나와 6명의 기자들은 편집회의를 한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혹할 만한 제목을 뽑고 기사를 쓰는지,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편집회의를 끝낸 어느 날 브라가도초는 나 콜론나에게 무솔리니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무솔리니의 죽음이 석연치 않고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로 취재를 하고 있다는 황당한 얘기였다. 그러나 취재를 통해 무솔리니의 죽음에 정치가, 테러리스트, 은행, 마피아, 교황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은 점점 설득력을 갖추고 뭔가 커다른 음모가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 드디어 브라가도초는 기사 내용을 위해 마지막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을 만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브라가도초는 등에 칼을 맞은 체로 발견되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미의 이름으로>가 굉장히 유명한데 주변의 읽은 이들이 너무 어려웠다고 해서 읽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내 손에 이 책이 들려있었다.


<제0호>를 읽다 보면 신문기사를 어디까지 믿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신문기사를 뽑기위해 자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역시 자극적인 제목을 뽑고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생한 사건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편집회의는 꽤 사실적이다. 그러다보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가려낼 안목이 없다면 우리는 황색언론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떠나질 않았다.



언론의 순기능인 '고발'보다는 권력을 잡으려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시도를 도와주는 언론인들의 모습과 기사를 조장까지는 아니지만 작위적으로 만드려는 언론인들의 행위를 <제0호>는 풍자하고 있다. 풍자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무솔리니의 죽음을 취재하는 브라가도초의 모습이 불안하면서도 점차 커다른 음모를 만날 것 같은 기대감에 흥미가 고조되었는데 일말의 암시만을 던진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크게 돌아온 아쉬움. 무솔리니의 죽음에 대한 추리소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0호> 속 배경은 1992년으로 이탈리아의 전무후무한 정치스캔들과 부패청산의 물결이 있던 시기라고 한다. 당시를 꼬집고 싶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생전 마지막 소설. 다른 건 몰라도 기자들의 편집회의만큼은 너무나 리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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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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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전원경 / 클래식 클라우드 / arte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그리트는 돈을 벌기위해 페르메이르의 집에 고용된다. 그리트는 페르메이르의 화실을 청소하는 일을 맡았는데 매일 조금씩 진척되는 그의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며 과묵한 화가에게 서서히 매료된다. 그녀의 눈썰미는 뜻밖에 페르메이르의 작업에 도움이 되고 페르메이르는 그리트에게 자신의 일을 돕게 하다 마침내 아내 카타리나의 진주 귀고리를 건 그리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카타리나는 분노를 참지 못해 그리트를 쫓아낸다. 페르메이르의 시선에 가슴을 졸이던 그리트는 미련없이 그의 집을 나온다. 그러나 그리트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된 것은 페르메이르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길이 다만 '아름다운 피사체'를 관찰하는 화가의 시선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의 {진주 귀고리 소녀}와 페르메이르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이다. 199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후 2003년에는 피터 웨버가 감독하고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가 주연으로 열연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개봉되기도 했다. 이만큼 대중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진실이 궁금한 그림임을 말해준다.




델프트의 스핑크스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은 모델이 누구인지를 비롯해 전혀 그림에 대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은 얀 페르메이르로 알려졌을 만큼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고 왜곡되기도 했다. 19세기 프랑스 미술사학자 토레뷔르거는 페르메이르는 너무나 수수께끼가 많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델프트의 스핑크스' 같은 존재다. 그에 대한 자료는 생몰년과 사후의 기록에 의지하는데 300년이나 흐른 뒤에 그는 우리에게 재조명된다.



저자는 페르메이르를 설명하기 위해 네덜란드라는 나라부터 설명한다. 작고 척박한 땅의 네덜란드의 자국민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들이 창조했다'고 말할 정도로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며 살아온 그들은 화가를 많이 배출한 나라인데 페르메이르보다 조금 앞서서 렘브란트가 있었고 220년 후에 고흐가 태어난다. 페르메이르가 살았던 델프트라는 곳은 작은 마을인데 페르메이르는 살아 생전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었고 겨우 21세에 화가들의 모임에 가입해 화가로 인정받지만 43세에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당시에도 네덜란드는 한 가정 당 3~4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페르메이르는 15명의 자녀를 낳고 11명이 생존했다. 그는 21세에 한 살 많은 카타리나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 기간의 상당기간을 카타리나는 임신 중이었을 것이다. 페르메이르는 장모의 여유있는 재산 탓에 처음부터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던 것같다. 그러나 페르메이르가 다른 화가들에 비해 비싼 재료로 그림을 그려 그림이 비쌌으며 다른 화가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 때문에 페르메이르는 평생 그리 많은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림을 많이 팔지 못했고 다자녀에 당시 1672년은 네덜란드 역사에 '재난의 해'로 기록될 만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해 경제상황이 위축되었던 바 '아이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는 상황에서 반미치광이처럼 되었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고 카타리나는 전한다. 책의 표지는 <회화의 기술>을 옮겨놓았는데 카타리나가 이 그림만큼은 지키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림 속 화가가 페르메이르일지 모른다는 지금의 추측이 맞는 걸까? 그림속의 화가가 자신의 남편이기 때문에 그림을 지키고 싶었을까?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1945년에 위작사건을 겪기도 한다. 43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페르메이르. 그의 그림들은 '빛'이 난다고 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는 것인데 후기로 갈수록 그림에서 빛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의도적으로 찍어놓은 흰색 '빛 방울'들을 볼 수 있다. 이 효과로 인해 그림을 보는 이는 실제로 반짝이는 듯한 인상을 받는데 {진주 귀고리 소녀}를 비롯해 정경은 극히 단순하지만 아름답고 참신해 보인다. 또한 그의 그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왼쪽에 창이 있는 방인데 거의 동일한 장소에서 그림을 그린 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고 다시 책을 읽고 하다보니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는 저자가 도슨트같기도, 역사를 설명할 때는 역사선생님 같기도 했다.



자료가 별로 없어 추측으로 읽어내야 하는 페르메이르의 그림들은 반면교사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에로틱의 감정을 느끼게도 한다. 또한 네덜란드의 수많은 화가들의 무한 경쟁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 당시 유럽의 화가들은 종교화를 그렸는데 페르메이르는 대신에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트로니 등 새로운 주제를 담은 그림들을 그렸다는 점, 빛을 내는 그림이라는 점 등에서 페르메이르는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화가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구나 수수께끼같은 화가는 우리에게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나에게 네덜란드는 풍차와 튤립의 나라, 그리고 일본과 가까운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이제 네덜란드하면 페르메이르를 떠올리게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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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5
버지니어 울프 지음,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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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부인 / 버지니아 울프 /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종달새처럼 솟구쳐 올랐다!

필머 부인의 마당을 두른 울타리가 있는 아래로 

자신을 거세고 난폭하게 던져버렸다.


쉰 둘의 댈러웨이부인은 오늘 밤의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나갔다가 휴를 만난다. 오랜 친구인 휴는 피터의 말에 의하면 정도 없고 두뇌도 모자라고 단지 영국 신사의 교양과 예절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러리서 댈러웨이와는 오랜 친구사이이다. 오늘 밤 그는 내 파티에 올것이다. 클러리서는 결혼할 수도 있었던 피터를 떠올리고 거리에서 굉장한 폭음을 듣게 된다. 그 폭음을 들은 또 한 사람 셉티머스. 그는전쟁에 참전했고 남자다움을 드러내 승진도 했다. 상관인 에반스의 사랑을 받고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휴전 직전에 에반스를 잃고 전쟁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정신병의 증상과 자살시도는 부인인 레지아를 힘들게 한다. 결국 정신병원으로 옮기려는데 셉티머스는 자살을 하고 만다.


집에 도착한 클러리서 댈러웨이 부인은 남편 리처드가 부루톤여사의 오찬에 초대된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클러리서와 연인이었던 피터 월시가 인도에서 돌아와 집으로 쳐들어온 것! 한 때 둘은 좋았지만 헤어지고 영국에서 피터는 쫓겨나 인도로 갔다. 이제 그는 자식도 없이 부인과 이혼할 예정으로 영국에 돌아왔다. 하필 오늘! 피터와 헤어지고 리처드와 결혼한 클러리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그녀는 세속적이었다. 리처드는 클러리서가 원하는 남자였다.


댈러웨이의 집에서 열린 파티, 댈러웨이부인의 친구들과 손님들 속에서 그녀는 셉티머스라는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서평쓰기 어려운 도서로 으뜸인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버지니아의 소설을 읽다보면 구성의 맺고 끊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넘어갈 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독자로서는 어디까지가 한 에피소드의 끝인지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또한 즐거리 이외에는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쓴 문장들이 마구 쏟아지니 그 문장들이 그녀의 메세지를 얼마만큼 도와주는지, 그 문장들이 왜 필요한지? 그 문장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독자로서는 사족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글은 생각의 일환이다. 생각을 잘 정리해서 쓴 것이 글이다. 쉽게 누구든 이해할 수 있게, 표현은 작가의 독특한 시선을 옮겨야 한다. 버지니아의 시선들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들이 내게는 미로같고 줄거리를 방해하는 요소로 비춰진다.


이번 <댈러웨이부인>은 양극으로 나눠진 캐릭터가 서로 반목하는 부분들이 흥미롭다. 그 캐릭터는 여성인데 한 여성은 클러리서 댈러웨이와 댈러웨이부인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선생 킬먼양이다. 자신의 세속적인 욕심을 스스로는 채울 수 없어 남편의 힘으로 채우는 여성, 클러리서를 바라보는 킬먼과 그런 킬먼을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현실에 처한 여성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내면으로는 서로를 부러워하고 인정한다. 이런 캐릭터는 사실 현재에서도 찾을 수 있는 캐릭터라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고 이런 여성들을 통해 당시의 여성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 또한 반목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셉티머스의 부인인 레지아의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당시 전쟁을 통해 남편을 잃거나 약혼자를 잃은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아마 레지아의 삶과 그리 다를지 않을 것 같아서 남편으로 인한 인생이 변화되는 포인트를 버지니아는 애기하고 싶었나보다. 남편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사는 클러리서와 자신이 이뤘지만 가난한 삶을 사는 킬먼양 그리고 남편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레지아, 마지막으로 댈러웨이 부인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여성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루톤 여사까지 다양한 여성상을 볼 수있었던 작품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중에서는 줄거리가 탄탄하고 메세지가 확실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클러리서는 파티를 위해 꽃을 사고 드레스를 수선하고, 많은 사람들이 클러리서의 집을 방문한다. 즐거운 파티가 한창인 상황에서 전쟁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청년의 소식은 엄숙함을 자아낸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현존하는 것이며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을까? 도움을 받고자 옮긴이의 해설을 참고해보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부인>을 통해 "양극적인 두 개의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다. 둘을 공존시키겠다는 그녀의 메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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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0 봄.여름 특별호 - 67호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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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인상을 수상하신 백색살의의 홍정기님, 정말 기대됩니다~ 읽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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