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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평점 :

제0호 / 움베르토 에코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그런 기사를 쓰자면 재주가 있어야 해요. <아마>와 <어쩌면> 같은 말들을 넣어 예상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실제로 벌어질 일을 이야기해야하는 거죠. 정치인들의 이름도 간간이 들어가야 해요. (78p)
여기 밀라노 옆에 있는 베르가모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보도하지만, 시칠리아의 메시아에서 벌어진 사고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겠죠?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85p)
뉴스 만들기, 이건 멋진 표현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뉴스를 만들어야 하고, 행간에서 뉴스가 튀어나오게 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쉰 살의 콜론나는 주필 '시메이'라는 한 저널리스트의 회상록에 대한 대필을 제의받고 창간되지 않을 신문의 편집부에서 일을 하게 된다. 창간되지 않을 신문 도마니(내일)는 주필을 중심으로 1년 동안 신문창간의 준비를 하게 되는데 나와 주필을 빼고 채용된 6명의 기자들은 도마니가 창간되지 않을 신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신문이 정말로 창간되지 않는다면 준비과정의 일들을 나, 콜론나가 시메이를 대신해 집필하고 폭로하려는 시메이의 속셈인 것이다.
데스크의 역할을 하는 나, 콜론나는 도마니의 창간 의도가 궁금하다. 그것은 금융계와 정계의 거물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내용으로 만들어 거물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거물들에게 신문 창간계획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그 댓가로 거물들의 성역에 한자리를 차지하려는 콤멘다토레의 욕심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간되지도 않을 신문을 무기로 세력가인 콤멘다토레의 욕심을 위해 우리모두가 존재하는 것이다.
창간 예비호를 만들기 위해 주필을 중심으로 나와 6명의 기자들은 편집회의를 한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혹할 만한 제목을 뽑고 기사를 쓰는지, 진실보다는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편집회의를 끝낸 어느 날 브라가도초는 나 콜론나에게 무솔리니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무솔리니의 죽음이 석연치 않고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로 취재를 하고 있다는 황당한 얘기였다. 그러나 취재를 통해 무솔리니의 죽음에 정치가, 테러리스트, 은행, 마피아, 교황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은 점점 설득력을 갖추고 뭔가 커다른 음모가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 드디어 브라가도초는 기사 내용을 위해 마지막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을 만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브라가도초는 등에 칼을 맞은 체로 발견되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미의 이름으로>가 굉장히 유명한데 주변의 읽은 이들이 너무 어려웠다고 해서 읽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내 손에 이 책이 들려있었다.
<제0호>를 읽다 보면 신문기사를 어디까지 믿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신문기사를 뽑기위해 자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역시 자극적인 제목을 뽑고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생한 사건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는 편집회의는 꽤 사실적이다. 그러다보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가려낼 안목이 없다면 우리는 황색언론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떠나질 않았다.
언론의 순기능인 '고발'보다는 권력을 잡으려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시도를 도와주는 언론인들의 모습과 기사를 조장까지는 아니지만 작위적으로 만드려는 언론인들의 행위를 <제0호>는 풍자하고 있다. 풍자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무솔리니의 죽음을 취재하는 브라가도초의 모습이 불안하면서도 점차 커다른 음모를 만날 것 같은 기대감에 흥미가 고조되었는데 일말의 암시만을 던진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크게 돌아온 아쉬움. 무솔리니의 죽음에 대한 추리소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0호> 속 배경은 1992년으로 이탈리아의 전무후무한 정치스캔들과 부패청산의 물결이 있던 시기라고 한다. 당시를 꼬집고 싶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생전 마지막 소설. 다른 건 몰라도 기자들의 편집회의만큼은 너무나 리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