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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5
버지니어 울프 지음,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댈러웨이부인 / 버지니아 울프 /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종달새처럼 솟구쳐 올랐다!
필머 부인의 마당을 두른 울타리가 있는 아래로
자신을 거세고 난폭하게 던져버렸다.
쉰 둘의 댈러웨이부인은 오늘 밤의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나갔다가 휴를 만난다. 오랜 친구인 휴는 피터의 말에 의하면 정도 없고 두뇌도 모자라고 단지 영국 신사의 교양과 예절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러리서 댈러웨이와는 오랜 친구사이이다. 오늘 밤 그는 내 파티에 올것이다. 클러리서는 결혼할 수도 있었던 피터를 떠올리고 거리에서 굉장한 폭음을 듣게 된다. 그 폭음을 들은 또 한 사람 셉티머스. 그는전쟁에 참전했고 남자다움을 드러내 승진도 했다. 상관인 에반스의 사랑을 받고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휴전 직전에 에반스를 잃고 전쟁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정신병의 증상과 자살시도는 부인인 레지아를 힘들게 한다. 결국 정신병원으로 옮기려는데 셉티머스는 자살을 하고 만다.
집에 도착한 클러리서 댈러웨이 부인은 남편 리처드가 부루톤여사의 오찬에 초대된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클러리서와 연인이었던 피터 월시가 인도에서 돌아와 집으로 쳐들어온 것! 한 때 둘은 좋았지만 헤어지고 영국에서 피터는 쫓겨나 인도로 갔다. 이제 그는 자식도 없이 부인과 이혼할 예정으로 영국에 돌아왔다. 하필 오늘! 피터와 헤어지고 리처드와 결혼한 클러리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그녀는 세속적이었다. 리처드는 클러리서가 원하는 남자였다.
댈러웨이의 집에서 열린 파티, 댈러웨이부인의 친구들과 손님들 속에서 그녀는 셉티머스라는 사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서평쓰기 어려운 도서로 으뜸인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버지니아의 소설을 읽다보면 구성의 맺고 끊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넘어갈 때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독자로서는 어디까지가 한 에피소드의 끝인지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또한 즐거리 이외에는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쓴 문장들이 마구 쏟아지니 그 문장들이 그녀의 메세지를 얼마만큼 도와주는지, 그 문장들이 왜 필요한지? 그 문장들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독자로서는 사족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글은 생각의 일환이다. 생각을 잘 정리해서 쓴 것이 글이다. 쉽게 누구든 이해할 수 있게, 표현은 작가의 독특한 시선을 옮겨야 한다. 버지니아의 시선들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들이 내게는 미로같고 줄거리를 방해하는 요소로 비춰진다.
이번 <댈러웨이부인>은 양극으로 나눠진 캐릭터가 서로 반목하는 부분들이 흥미롭다. 그 캐릭터는 여성인데 한 여성은 클러리서 댈러웨이와 댈러웨이부인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선생 킬먼양이다. 자신의 세속적인 욕심을 스스로는 채울 수 없어 남편의 힘으로 채우는 여성, 클러리서를 바라보는 킬먼과 그런 킬먼을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현실에 처한 여성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둘은 내면으로는 서로를 부러워하고 인정한다. 이런 캐릭터는 사실 현재에서도 찾을 수 있는 캐릭터라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고 이런 여성들을 통해 당시의 여성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다. 또한 반목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셉티머스의 부인인 레지아의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당시 전쟁을 통해 남편을 잃거나 약혼자를 잃은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아마 레지아의 삶과 그리 다를지 않을 것 같아서 남편으로 인한 인생이 변화되는 포인트를 버지니아는 애기하고 싶었나보다. 남편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사는 클러리서와 자신이 이뤘지만 가난한 삶을 사는 킬먼양 그리고 남편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레지아, 마지막으로 댈러웨이 부인의 딸인 엘리자베스와 여성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루톤 여사까지 다양한 여성상을 볼 수있었던 작품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중에서는 줄거리가 탄탄하고 메세지가 확실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클러리서는 파티를 위해 꽃을 사고 드레스를 수선하고, 많은 사람들이 클러리서의 집을 방문한다. 즐거운 파티가 한창인 상황에서 전쟁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청년의 소식은 엄숙함을 자아낸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현존하는 것이며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을까? 도움을 받고자 옮긴이의 해설을 참고해보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부인>을 통해 "양극적인 두 개의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다. 둘을 공존시키겠다는 그녀의 메세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