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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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도시 이야기 I 찰스디킨즈 I 권민정 옮김 I 시공사




"저는 당신과 당신에게 소중한 이들을 위해 어떤 희생이든

감수하겠습니다. 언젠가 조용한 시기에,

이 한가지에서만은 뜨겁고 진실했던 모습으로 당신의 마음속에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프랑스 시민혁명이라는 큰 줄기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희생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접목시킨 찰스 디킨즈의 대하 드라마 <두 도시 이야기>는 내게 재독의 기회를 준 책이다. 이번에는 시공사의 책으로 만나봤는데 표지가 너무나 예쁘고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재독이어서일까? 느낌 상 번역도 나쁘지 않았다. 찰스 디킨즈 사후 150년 기념 선집 세트로 만나보는 <두 도시 이야기>는 작가 스스로가 "내가 썼던 작품 중 최고의 이야기"라고 말했으니 스스로도 만족도가 높고 검증된 이야기라는 뜻일 것이다. 사랑, 믿음, 신념, 양심, 희생, 증오, 정의 등등 많은 감정들이 이야기 속에서 공존하며 어울어지는 스토리는 바로 <두도시 이야기>가 대작이라는 뜻일거다. <두 도시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은 먹먹해지는 느낌 때문에 사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다. 숭고한 희생을 말이란 한정된 개념으로 표현할 수는 없기에. 이러한 희생적인 사랑을 어떤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라는 큰 줄기에서 리얼하게 펼쳐지는 생생한 삶의 대서사시, <두 도시 이야기>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마네트 박사는 딸아이의 탄생도 모른 채 부인과 헤어져 18년 동안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 그에게 찾아온 해방, 그리고 딸과의 재회에 마네트 박사는 자신의 고국 프랑스를 버리고 영국으로 떠난다. 딸은 영국으로 가는 배에서 만난 프랑스 청년, 찰스 다네이와 결혼을 하고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프랑스로부터 받은 편지 한장으로 찰스는 가족들 모르게 프랑스로 입국한다. 그리고는 교도소에 갇히고 찰스를 살리기 위해 온가족이 프랑스로 날아와 애를 써보지만 쉽지 않다. 프랑스는 이미 시민혁명으로 나라가 피바다가 되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시민들은 오랜 동안 나라와 귀족으로부터 받은 핍박과 억압을 분노와 증오라는 이름으로 귀족들에게 퍼붓기 시작했고 그것은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았다.

<두 도시 이야기>는 루이 16세의 치정기간에 일어난 시민혁명을 다루었고 찰스 디킨즈는 영국인이지만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주목했다. 아마 그가 영국의 소외계층만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깊은 공감을 한 듯하다. 읽다보면 슬픔이 많이 내제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네트 박사나, 그의 딸, 자신의 가문이 싫어 나라까지 버리는 찰스, 드파르주의 부인 등 어떤 식으로든 슬픔을 가진 인물들이 많았고 슬펐는가 하면 기쁘고 기쁜가 하면 다시 슬퍼지는 극적 긴장감은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두 번 보는 일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것과는 다르다. 텍스트 보다는 영상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두 번, 세 번 보는 것은 영상이 주는 현실감 때문에 다시 만나는 장면들이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책의 경우는 쉽지 않다. <두 도시 이야기>는 우선 두께가 주는 부담도 있지만 처음의 감동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스러운 의문이 시작부터 생겼고 그러한 의문과 긴 스토리에 집중하지 못할까 걱정했다. 기우였다는 사실을 느낀 건 어느 새 이야기를 타고 만나지는 인물들에 애정이 생기고 디테일과 장면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클라이막스에 치달을 때의 긴장감과 슬픔은 처음과 같았다.

찰스 디킨즈는 역사책을 쓰기도 했다. 찰스 디킨즈가 살던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당시이다. 그런데도 그 이면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특히 어린아이들의 삶이 비참했기에 작가는 어린아이들이 행복하게,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의 필요성을 생각하며 집필했다. 사회의 소외계층들을 늘 보살피며 그들의 시선을 담고, 사회비판적 소설을 쓴 찰스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 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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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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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I 레프 톨스토이 I 홍대화 옮김 I 현대지성







"저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염려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 하나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고,

그 안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51세 무렵,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발표하고 문학적 명성과 창조적인 영감이 최고 수준이었던 때 오히려 그는 자살을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진실을 어린이들과 민중도 이해할 수 있게 동화형태로 집필한다. 그렇게 탄생된 단편 모음집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동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에 읽기도 수월하고 이해가 쉽게 집필되어 누구라도 읽을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또한 어릴 적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내용같기도 한 익숙함과 무거운 주제임에도 쉽게 쓰여져 많은 이들에게 교훈적 메세지를 주고자한 톨스토이의 노력이 엿보인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무겁게 얘기할 필요는 없는 법, 톨스토이는 보다 단순하게 인간의 삶과 인간의 사랑,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톨스토이의 질문에 대한 고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살면서 한 번쯤은 하게 된다. 참 단순한 질문인 듯하면서도 깊이있게 들어가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이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데 무거워질까 저어된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은 것만으로도 메세지를 얻을 듯하다, 마음 편하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10편의 동화 단편이 들어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있다>, <노동과 죽음과 질병> 등인데 제목만 들어도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이 가는 이야기들이고 익숙한 이반의 이야기도 있다. 바보 이반은 고지식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것을 언제든 내어주는 이반에게 이간질을 꾀하고 골탕을 먹이려는 악마가 안쓰럽기가까지 하다. 바보이지만 현명해보이고 지혜로워 보이는 것은 이반이 사랑을 베풀며 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주는 교훈도 마찬가지이다. 가진 것이 없지만 나눌 줄 알고 어려운 이를 받아주는 세묜이 천사를 통해 전해 듣는 지혜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세상은 급변했고 복잡했졌고 개인주의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인본주의가 무시되고 자본주의, 물본주의가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정보와 지식은 넘쳐난다. 하지만 지혜는 어떨까? 사랑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은 꽤 어려운 질문이다. 답도 쉽게 할 수 없는데 톨스토이는 당황스럽게도 동화적으로 답을 내려준다.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의 비슷한 맥락으로 '어려울수록 쉽게 생각하라'는 메세지를 주는 듯하다. 문제를 보다 심플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톨스토이는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지혜롭게 살라고 한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분들에게는 하느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거부될 수 있다. 그럼 신앙을 빼고 사랑만은 어떨까? 요즘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금지 등을 시행하고 있는데 단어 자체에서 배려, 인정, 사랑이 부재된 느낌이다. 이런 때에 조금만 더 배려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 그것이야말로 팬데믹 사회를 견뎌내고 우리가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삶의 이정표가 되어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도 좋을 듯하다. 가볍게 접근했다가 큰 지혜를 만날 수 있는 네잎클로버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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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인류의 재앙과 코로나를 경고한 소설, 요즘책방 책읽어드립니다
알베르 카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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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I 알베르 까뮈 I 서상원 옮김 I 스타북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 즉 허구이다. 하지만 소설이 허무맹랑하지 않은 것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 때문이며 사실을 기반으로 썼다면 리얼리티가 높아지므로 진정성을 갖추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는 유럽에서 실제 있었던 재앙이었고 20세기 중반에 다시 페스트가 온다는 설정 아래 쓴 소설이라서 매우 리얼하다. 더구나 현재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사회의 변화들은 <페스트> 속 이야기와 많이 다르지 않아 큰 공감과 연대감이 높아지는 느낌이다. 지구가 변하고 각종 바이러스가 출몰하는 세상이다.   서로를 경계해야 하고 외출을 자제하고 장거리 이동을 피해야하는 등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지금, <페스트> 같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어떤 소설이 필요할까 싶다.


페스트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바이러스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 참 나약하게 비춰졌다는 것이다. 사망자가 늘어가고 필수품들을 사기 어려워지며 불을 지르고 시시각각 보도되는 뉴스들 때문에 고조되는 불안감 등은 마치 디스토피아 세상을 연상케했고 그런 세상이 오면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겠다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으면서 참 무섭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디스토피아 소설의 작가들 때문에 우리들은 한 번 더 인류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를 위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줬던 것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예전과 다른 감정선을 지니고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페스트>를.




<페스트> 속 인물들을 통해 재앙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만날 수 있다. 사랑하는 부인의 요양을 위해 멀리 보내고 페스트와 맞서 싸우는 의사 리외,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의 죽음을 통해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신부,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를 위해 폐쇄된 오랑 시를 탈출하고자 애쓰는 기자 랑베르 등 다양한 입장과 변화되는 사회의 모습은 무서운 연대감을 불러온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저 그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소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모습을 페스트 속에서 발견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팬데믹 사회에서의 인간의 모습은 정형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페스트가 모두에게서 사랑의 힘과 우정의 힘까지도 앗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은 약간의 미래를 요구하는데 우리에게는 순간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이 점차 변하고 페스트로 사망자가 나와도 그저 지나갈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 시가 폐쇄가 되자 어떻게든 시를 벗어나고자 애쓰는 모습들은 비난을 면치 못한다. 또한 팬데믹 세상에서 종교는 큰 몫을 한다. 마음의 평화와 안식처가 될 수도 있고 굳건한 믿음으로 버티게도 해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는 찬밥신세로 전락한다. 홀로코스트 속 희생자들의 한탄 속에서도 하느님은 개입하지 않으신다라고 했다. 종교조차 인간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이런 모습들이 코로나를 겪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아 놀랍기도, 공감이 되기도 하는데 시대를 불구하고 인간에게 내려진 재앙 앞에 한치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끄러워지는 대목이었다.


<페스트>는 큰 공감과 연대감을 주지만 사실 두려움도 함께 던져준다. 이러한 두려움은 작가의 상상력과 작가가 바라보는 미래가 일치하는데서 오지 않나 싶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며 고전 작가들은 우리에게 그저 소설가가 아닌 예언가처럼 다가오는 것은 그들의 상상력이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으며 우리에게 반드시 메세지를 준다는 점이 고전을 읽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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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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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I 유진 오닐 I 민승남 옮김 I 민음사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상당히 궁금했던 이야기였는데 읽으면서 안타까움이 컸던 작품이다. 바로 유진 오닐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스토리라고 할 게 없지만 가족사이므로 민감한 부분이란 점에서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글쓰기 작업이었을 듯하다. 유진 오닐이 죽기 직전에 쓰면서 당시 울기도 하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힘든 과거를 떠올리며 슬픔을 마주하는 일, 특히나 가족사라고 한다면 자신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그래서 그는 부인에게 이런 헌정사를 남겼다.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이렇게 힘든 가족사를 왜 그는 작품으로 쓸 생각을 했을까?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가족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든 가족사는 드러내기 힘든 이야기이고 아픔이라는 점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는 공감의 폭이 큰 작품이라 하겠다.



부부간의 대화 부족, 부자간에 보이는 불화, 형제간의 질투 등 가족 간에 있을 수 있는 불화는 다 짊어지고 있는 티론 가족은 잘못이 상대에게 있다고 여기며 불만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불화는 해소되지 못하고 지속된다. 소통의 부재가 그 원인일까? 그 불화의 중심에 아버지와 큰 아들이 서 있다. 가장인 티론은 돈이 아까워 부인의 치료를 제때에 제대로 하지 못해 오랜 시간 요양원에서 보내게 했고 이제는 둘째인 에드먼드의 폐병 치료도 돈이 덜 들어가는 요양소로 보내기로 한 것에 장남인 제임스는 불만을 터트리며 아버지와 맞서게 된다.   아버지는 돈이 생기는 대로 알코올을 찾는 아들을 나무라고 아들은 자린고비 같은 아버지를 탓하며 서로를 질타하고 상처의 말을 쏟아놓는다.



가족이라고 해서 소통이 잘 되고 성격적으로 잘 맞는 것은 아니다. 친구나 동료, 조직은 나와 맞지 않거나 관계가 힘들면 끊을 수도 있지만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고 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괴롭고 힘든 존재들이다. 그래서 가족이 준 상처는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그 상처는 가족을 제외한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유진 오닐은 오래 묵은 자신의 슬픔과 가족과의 화해를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이뤘을지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 6시 30분 경까지의 한 가족의 대화로 이루어진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가족이 무엇인지, 역으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생각하게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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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 - 헤이안 시대에서 아베 정권까지, 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
R. 태가트 머피 지음, 윤영수 외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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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원한 적수, 일본의 이야기. 이제 피하기보다 꿰뚫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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