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 엉뚱 발랄 쓰레기 이야기 - 재활용, 2021년 행복한 아침독서 추천도서 선정, 2020년 으뜸책 선정, 2021년 하반기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도서 수피아 그림책 2
니콜라스 데이 지음, 톰 디스버리 그림, 명혜권 옮김 / 수피아어린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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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쓰레기가 많다. 코로나 시대 이후 배달 음식이나 식자재를 시켜먹다 보니 더욱 많아졌다. 분리수거 날 보면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집 재활용 쓰레기도 많아져 양이 어마어마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분리수거가 올바르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종이 박스에 테잎이나 스티커가 그대로 붙어있거나 플라스틱 병에 라벨지가 그대로 붙어있고 음식물이 묻어있는 것들이 다반수다. 그러면 재활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시 쓰레기로 분류되어 땅에 묻히거나 태워진다는 것을 TV로 본 것 같다. 그러니 안타깝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집 두 딸은 귀찮거나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아예 재활용 분리수거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기도 한다. 그럼 그 이후는 엄마 몫이다. 


<쓰레기>는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의 새로운 탄생을 담은 "엉뚱 발랄 쓰레기 이야기"이다. 

"실비아는 보물찾기 선수예요."라는 첫 페이지를 시작으로 매일 매일 실비아가 어떤 쓰레기를 모아 보관하는지를 보여준다. 




월요일엔 구멍 난 낡은 타이어와 밧줄, 나무판자라는 어마어마 부피가 큰 쓰레기를 가져온다. 부모님은 당연히 당황하지만 실비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는 지금 아주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화요일엔 껌 한 통, 수요일엔 녹슨 배관과 고장 난 발전기, 빈 페인트 통 더미...목요일과 금요일에도 실비아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간다. 




 사실우리나라에선 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부피 큰 것들을 어디다 둘 것이며 어떤 벌레나 더러운 것이 묻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책 전체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이다. 




토요일에 일어난 어마어마한 일. 마을의 저장 탱크에서 물이 새고 그 물이 놀이터를 휩쓸고 전기선까지 끊어버리고 동물원 우리 문이 열려 동물들이 탈출하는 등 거의 재난 수준의 일이 일어나는데 우리의 실비아는 그동안 자신이 의미 없이 모았던 것 같은 쓰레기들로 이 모든 일을 해결한다. 


한 아이가 이런 쓰레기로 마을을 다시 멀쩡하게 만들고 고쳤다는 것 자체가 엉뚱 발랄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한 아이가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버려진 것들로 얼마나 훌륭하게 만들어졌느냐이다. 특히 마지막의 물에 휩쓸려간 놀이터의 재탄생은 아주 훌륭하다. 물론 그 물건들에서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다시 쓴다는 것은 창의력을 요하는 일이다. 원래의 쓸모가 다해 버려진 것이니 다시 쓰기 위해선 다른 쓸모가 주어져야 한다. 요즘 유치원에선 다 쓴 병이나 과자 상자, 플라스틱 병이나 뚜껑 등을 가져오게 해서 만들기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아이들은 그저 뚜껑을 뚜껑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물건의 다른 것으로 사용하도록 상상할 수 있고 다 만드고 나선 그렇게 뿌듯해 할 수가 없다. 


<쓰레기>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건 자체가 꼭 그 물건의 쓸모일 필요는 없다는 것. 버리기 전에 다시 한 번 다른 쓸모는 없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진솔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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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서가명강 시리즈 12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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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시리즈는 처음 만난다.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인 서가명강 시리즈는 그야말로 서울대 교수진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주제의 인문학 콘텐츠이다. 중간 중간 아주 예쁜 표지에 궁금증을 일으키는 책들 출간 소식에 잠깐 호기심을 보였지만 나에겐 좀 어려울 것 같아서 패스하다가 이번 "삼국시대" 주제를 보고 드디어 읽을 용기가 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이신 권오영 교수가 발굴 작업을 통해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로 고대사와 삼국시대 역사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담고 있다. 더불어 역사학자, 고고학자로서의 책임감과 반성이 녹아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우리의 고대사를 적은 역사책이 없다. 역사책이 모든 역사를 설명해 주는 건 아니지만 유물과 유적과 더불어 함께 해석되어야 더욱 가까운 진실을 찾을 수 있을텐데 삼국이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고려 때 많은 외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어는지 지금껏 우리가 의존하는 역사서는 고려 때 지어진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몇 세기가 흐른 이 고려시대 역사서보다는 동시대의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서를 참고한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때문에 책은 유물과 유적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지, 그 외 부족한 부분을 무엇으로(무덤과 인골) 채워 해석하는지를 설명한다. 우린 보통 국립 중앙 박물관을 관람하며 유물만 익숙하게 공부하지만 집 자리(취락 자리)와 도성 등을 통해 삼국 시대의 모습을 설명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발굴 작업을 통해 우리나라가 그 이전부터 얼마나 다양한 교류를 해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실 목차에 적힌 순서와 구분으로 읽기 보다는 그냥 수필을 읽듯 그렇게 읽었다. 때문에 어떤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어 어떤 사실이 입증되었다라는 사실보다는 고고학자와 역자학자로서의 권오영 교수의 고뇌와 걱정 등이 더 많이 읽혔다. 겨우겨우 찾아낸 거대 무덤의 뚜껑 돌을 열었더니 삼부자 도굴꾼이 이미 모두 도굴하여 가야의 아주 중요한 역사 한 페이지를 밝힐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라든가 자기들 만의 틀 안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고고학자 스스로를 꾸짖기도 하고 아주 중요한 유적과 그 사실이 교과서에서 다뤄지지 않음을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발굴 작업을 시민과 함께 하는 분위기로 만들어 교육과 관광 효과까지 누리는 발굴로 전환시키고 다른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각도로 접해보고 풀어보려는 의지와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읽는 이로서 밝은 희망을 본 것 같아 즐거웠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조선 이전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까지는 시작점이라 잘 따라오다가 이후 흐지부지 조선에 오면 멘붕에 빠지게 되고 결국 역사를 포기하게 된다. 책도 항상 1권부터 읽기 때문에 딱 석기 시대만 반복해 읽는다. 그 이후 초기 철기 시대 국가와 삼국시대, 고려까지는 학교에서도 진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조선시대부터는 알아야 하고 외워야 하는 것이 많아 또 힘들어진다. 언제부터 이렇게 역사가 어려운 것이 되었을까. 


현장과 대학에서 고민과 반성, 미래를 위해 걱정하는 것만큼 초,중,고 학생들을 위해서도 좀더 재미있고 쉬운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최대한 진솔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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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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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마가 돌아가시고 약 두 달 동안 주말마다 엄마네 집에 가서 유품을 정리했다. 쓰러지신 후 계속 병원에만 계시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엄마의 물건들은 마치 주인을 기다리듯, 정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너무나 그대로였다. 바로 엄마가 돌아와서 생활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처럼. 우리에게 그 시간은 엄마를 추억하고 보내드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함께 엄마 물건을 꺼내며 "우리 엄마 이멜다 여사야? 도대체 신발이 몇 켤레야?"라거나 "우와~ 새 팬티가 끝도 없이 나와~" 등등 하하 깔깔 웃으며 정리했다. 정말 가져오고 싶었던 외투들은 두 사이즈나 큰 딸에겐 맞지 않아 아름다운 가게로 향했지만 어쩌다 맞는 옷이나 서랍 속 가득했던 새 속옷들, 신발, 가방, 심지어 빗까지 왠만한 건 그대로 우리집으로 갖고 왔다. 엄마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엄마가 달아놓은 악세서리들을 쓰다듬고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해 몇 개씩이나 되던 손거울로 저녁마다 눈썹을 다듬거나 눈곱이나 뾰로지를 확인한다. 엄마 물건을 볼 때마다 너무 슬플 것 같았는데 우리에겐 엄마의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엄마의 유품들은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여 힘을 준다. 


만약 혼자 사시다가 갑자기 변을 당했다거나 연락이 끊겨 잊고 살았는데 부고 소식을 듣는다면 너무 슬프거나 너무 관심이 없고 그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유품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유품정리인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 방>은 27살의 유품정리인 고지마 미유가 자신이 일해 오면서 보았던 많은 죽음의 방을 미니어처로 만들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우선, 이제 겨우 27살인 아가씨가 무려 5년이나 유품정리인 일을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책을 읽다 보니 더욱 그렇다. "들어가며"에서도 저자가 밝히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방을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죽음이 전혀 생각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이기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누군가가 죽고 난 후의 방이 아닌, 그 죽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방이어서 벌레나 냄새, "친구"라고 우기는 도둑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 도대체 왜 미니어처로 제작했을까. 예쁘지도 않고 오히려 체액이나 피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표현하여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저자는 심심찮게 발생하는 고독사에 대해 말하고 싶었단다. 


"처음 고독사 현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느꼈던 이상한 감정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갑작스레 주인을 잃은 방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줄곧 이어지던 생활이, 인생이, 그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정지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독사가.....지금 늘어나고 있다."...5p


고독사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미니어처로 보여주면 누군가 혼자 살고 있을 이에게 주변인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까...하고 시작한 일이란다. 미니어처 만드는 방법도 모른 채 시작한 일이지만 실패와 경험을 통해 책에 소개된 미니어처들은 사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자주 연락하던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아 딸이 찾아가 일주일 만에 발견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 냄새와 벌레 때문에 이웃 신고로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심하면 6개월이 지난 후이기도 하단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동안 고독사가 심심찮게 보도되곤 했다. 검침원이나 우편배달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 않느냐며 여러 법안이 나왔던 것 같지만 제대로 통과되거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고독사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 특별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다."...1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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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수필
정상원 지음 / 아침의정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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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게 좋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 "고기" 요리가 있으면 언제나 어른들이 나를 불렀고 그에 부응할 줄 알았다. 복스럽게 먹는다는 소리도 들어봤고 특별히 좋아하는 몇몇 메뉴와 취향도 확실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가진 살들은 그냥 세월이 만들어 낸 건 아니다. 적어도 "먹는 것", "맛있는 것"에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탐식수필>을 읽다 보니 나는 절! 대! 로! 미식가는 될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삼청동에 위치한다는 "르꼬숑"이라는 프랑스 식당(책에는 프렌치 파인다이닝이라고 표현되어있지만)을 아시는지. <탐식수필>의 저자 정상원님이 바로 이 식당의 문화 총괄 셰프로 일하고 있단다. 그냥 쉐프도 아니고 문화 총괄 셰프라니, 그건 또 뭘까...의아함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고 뭔지 알게 된다. 이 분 고려대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함께 전공했다더니 그야말로 모든 문화의 융합을 시도하고 계신 분이다. 분명 쉐프라는데 각 유럽 문화와 역사, 문학에 능통하고 지리와 어원 등까지도 빠삭하다. 심지어 글 쓰는 능력도 탁월하신 듯 보이니 도대체 이 사람 뭘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십수 년 전 읽었던 <스페인은 맛있다>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좋아서 맛의 근원을 찾는 이야기라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 선택한 책이었는데 요리와 재료 등의 이야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와 너무 다른 재료들에 낯선 언어까지 더해지니 내가 이런 음식을 먹을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이런 걸 알아야 할까...싶을 때 쯤엔 여행에 대해서, 그 지역의 이야기를 품은 문학의 이야기로, 작가의 이야기로 넘어가니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입안에 머금은 루아르 화이트 와인 푸이 -퓌메가 굴과 시트러스의 잔향을 담아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벼락치는 듯한 전율은 바다에 대한 수많은 경험들의 종착점이라 할 만하다. 높은 옥타브의 검은 건반을 경쾌하게 두드리는 비바체의 선율을 담은 석화의 신선한 연주는 익힌 굴 요리에 와서는 풍미와 식감을 더해 감미롭고 부드러운 아다지오를 향해 흐른다"..79p


뭐, 이런 요리를 먹어나 봤어야 공감이 되고 저절로 침이 고일텐데. 이 부분을 읽으며 지금은 없어진 굴 전문점을 떠올리고 굴국밥을 언제 또 먹어보나...하고 있으니 좀 많이 아쉬웠다. 이십 년 전 같은 지방을 여행했지만 돈 없는 대학생은 매일 m사 햄버거만 먹은지라 그 지방의 특색 재료를 녹여낸 요리라든가, 그 지방 만의 요리 같은 건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재료의 어원에서부터 각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내용"을 녹여내는 요리로 이어지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책장을 덮고 나서 저절로 식당 <르꼬숑>을 검색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는 많이 비싸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나에겐 편하게 가서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은 아니어서 먼 후일을 기대해 본다. 그보단 쉐프가 만들어 낸 하나하나의 코스를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지가 더 걱정된다. 


요리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생겨난 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새로운 메뉴를 창조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의미가 부여되는 줄은 몰랐다. 쉐프는 그저 맛난 맛을 만들어내는 이들인 줄 알았는데 엄청난 공부와 재창조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문화, 과학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레시피가 하나 탄생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맛은 있지만 깊이 들어가면 난 그 맛을 잘 구별해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산미가 있는 커피보다는 풍미가 있는 커피가 좋다. 맥주도 탄산이 강하면서 효모 맛이 강해야 더 맛있다. 생각해 보니 딱 그정도까지다. 그것들을 구별하라 하면... 못한다. 그냥 그런 맛이 좋아서 선택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죽었다 깨도 미식가는 안되겠다. 배가 고파도 제대로 차려먹기보다는 혼자일 때면 얼른 뚝딱 비벼서 먹어버리고 배만 채울 때도 있으니. 그럼에도 맛있는 음식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한다.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니까. 그러니 언젠가 프랑스 정찬을 꼭 먹어보겠노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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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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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대학생이 되어 <개미>를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알게 된 후 한동안 이 작가의 책을 쫓아 읽었다. 그땐 아직 여려서 책에 담긴 깊은 의미라든가 철학적 질문 같은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저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놀라며 즐겁게 읽었던 것 같다. 사람에겐 한 번 새겨진 이미지가 잘 변하지 않아 지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이 나올 때마다, 가능하면 읽을 수 있을 때마다 찾아 읽게 된다. 


그럼에도 워낙 다작 작가인지라 잠깐 한눈 팔면 몇 년 후 못 읽은 책이 한가득...되는 작가이다. 나름 소장도 하고 빌려도 읽고 했지만 중간중간 구멍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심판>을 들고 읽으려다 작가 소개를 통해 <심판>이 작가의 두 번째 희곡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표지를 보니 읽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일반적인 희곡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니 더욱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 내 기억에 베르나르의 희곡을 읽을 기억이 없으니.


어쨌든 <심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 작품이자 온전히 희곡의 형식을 따른 작품이다. 그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흡인력이 뛰어난 데다 희곡 형식이라 중간중간 빈 줄이 슝슝, 책 판형도 작고 220페이지밖에 되지 않아 금방 읽힌다. 등장인물 소개와 무대 지문 후에야 프롤로그가 나온다. 


병원에서 일어남 직한,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라면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일의 결과로 주인공 아나톨은 천국으로 오게 되고 이 아나톨의 삶의 무게를 다는 "심판"이 이루어지려고 한다. 검사측과 변호사(수호 천사)의 변론으로 아나톨이 받게 될 판결은 다시 삶을 살러 내려갈 것인가, 이 천국에서 천사로 살게 될 것인가,이다. 


그동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의 삶 이후의 세계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비슷한 소재로 계속해서 다른 주제를 엮어내는 게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이번 <심판>은 간단한 소설이지만 역시나 아나톨의 죽음에 대해 의료계 현실을, 베르트랑의 전직 교사의 말을 빌려 교육계 현실을, 베르트랑과 카롤린 사이의 부부 관계를 통해 남녀 역할과 고정 관념 등을, 심지어 가브리엘을 통해 종교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한테는 육화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 고동치는 심장, 송송히 맺히는 땀, 입 안에 고이는 침, 자라나는 머리카락....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을 나눌 때의 기쁨, 뛸 때 두 다리에 팽팽히 힘이 들어가는 느낌, 선들선들하는 바람,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 태야, 젊음, 심지어 노화마저도. 느껴 보고 싶은 것도 많아요. 자동차 핸들의 감촉, 주식 거래의 긴장감, 말 등에 올라 달리는 기분....."...210p


이 가브리엘의 대사가 어찌나 마음에 와 닿던지.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해도 아이들과 투닥거리고 짜증만 나고 살만 찌는 요즘이어도, 그래도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비로소 더위가 물러나고 부는 시원한 바람과 매일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 커피샵에 함부로 가지 못하게 되기 전에 마련된 커피 머신 2대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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