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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3
서머싯 몸 지음, 송무 옮김, 나현정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있었다. 증권거래소 중개인인 그 남자는 가정에 성실한 아내와 쾌활한 아들, 예쁜 딸과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가장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더이상 함께 살 수 없으니 앞으로 잘 지내라’는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다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배신이다, 그런 행동은. 적어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있었다면 자신이 하려는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거나 변명 정도는 해야만 했다. 가족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떠나도 늦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냐하면...나는 예술가가 아니니까.^^
이렇게 절대 이해되지도 않고 오히려 미워지는 캐릭터가 바로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이다. 후기 인상파 화가로 고흐와 함께 자주 회자되는 "폴 고갱"의 삶에서 차용했다는 이 이야기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저 평범하고 약간은 속물적인 나로서는 주인공이 이렇게 제멋대로에다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그의 악행은 천사같은 마음씨를 가진 스트로브의 가정을 박살내면서 극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런 모든 행동은 그가 정말로 악당같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림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이기심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이젠 그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난처해진다.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소설 속 이야기에는 그 어디에도 직접적으로 "달과 6펜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달과 6펜스의 공통점은 둘글고 은색이라는 점뿐. 하지만 달은 우리 손에 쥘 수 없이 먼 곳에 있고, 6펜스는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면 "달"은 우리의 꿈이자 이상이다. 누구나 꿈은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전히 자신을 던지기에는 두렵고 쉽지 않으므로 우리는 어느정도 현실과 타협하며 살고 있다. 손에 쥐기 쉬운 6펜스처럼 말이다.
소설에는 스트릭랜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6펜스를 쫒는 이들 뿐이다. 평범한 가정을 계속해서 유지하기를 바라는 스트릭랜드 부인과 아들, 딸 그리고 예술적인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스트로브는 막상 그림에 대한 고뇌 없이 돈이 되는 그림만 그리며 편안한 생활을 영위한다. 그런 주위 사람들과는 완전하게 대비되는 사람이 바로 스트릭랜드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남의 이목이나 자신의 궁핍한 생활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 보세요. 모두가 선생님처럼 행동한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소리! 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별다른 불만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오.".....52p
자신 안에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던 스트릭랜드. 그는 아름다운 섬 타이티에서 그의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끼며 정착할 수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낙원같은 곳에서 세상도, 사람도 모두 잊고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예술가의 영혼이 온갖 괴로움을 다 겪으면서 만들어 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이 알아보는 것은 아니지. 그것을 알아보려면 예술가가 겪은 것을 똑같이 겪어야 해. 예술가가 전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지식과 감수성, 상상력이 필요해요." ....68p
이쯤되면 그의 그림이, 그의 인생이 그의 선택이 부러워지려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쫒아 앞으로만 갈 수 있는 그 행동성이, 열정이 부럽다. 오히려 현실과 타협하며 살고 있는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이 게으르고 속물같아 보인다. 아마도 서머싯몸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진심으로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봉 일만 파운드에 아름다운 아내를 얻어 저명한 외과 의사로 사는 건 진정 성공한 인생일까? 그것은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184p
결국은...어디에 인생의 의미를 두는가...하는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