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2
오채 지음 / 비룡소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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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단, 첫 문장에 따라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미리 가늠되는 책이 있다. <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도 그랬다. 화학 시간, 선생님의 설명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이 재미있을리가 없다. 그런데도 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단어들이 왠지 가슴에 들어오며 무척 중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뒤를 잇는 "딸간 딱지"라는 말이 더욱 부추겼다. "빨간 딱지"... 아이들은 이 말을 아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드라마에 이 빨간 딱지를 잔뜩 붙이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빨간 딱지는 집안이 망했다는 걸 뜻하고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후론 추락만이 있을 뿐이다. 

 

시작부터 무척이나 강렬하다. 망한 집안의 부모는 죄인이다. 한창 마음껏 꿈을 펼치며 꿀리는 것 없이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엄청난 짐을 지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속 부모는 그렇지 않았다. 아빠만 없고 엄마만 있는데 그 엄마란 사람은 빨간 딱지를 집안 가득 채울 정도로 죄를 지어놓고도 너무 당당하다. 심지어 이 빨간 딱지는 어쩔 수 없이 생긴 것도 아니고 사기 행각에 대한 결과이다. 그러니 잠시 집을 떠나 숨어있어야 한단다. 

 

열여섯, 초아는 아빠가 다른 일곱 살 동생 청록이만 없었다면 엄마를 버리고 자유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청록이 아빠도 떠나버리고 엄마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까지 동생을 버릴 수는 없었다. 너무나 약하고 현실 감각이 없는 동생, 초아는 동생만큼이라도 자신과 다른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책을 읽어나가며 생각 난 두 드라마가 있었다. 4부작이었던 "백희가 돌아왔다."와 "모던 파머". 섬으로 다시 돌아가는 엄마의 이야기가 백희의 이야기와 겹쳤고 밭에서 보물 찾겠다고 밭을 모두 캤던 내용이 모던 파머와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엔 중심에 할머니가 계시다. 

 

"할머니 마음이 고장 날 것 같다는 말이 내 속으로 깊게 밀려들어 왔다. 마음이 고장 난다는 말....... 어쩌면 엄마와 내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165p

 

한 사람의 성격이 원래부터 타고난 것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자라온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이들을 키우면서 절절히 실감한다. 초아의 엄마도, 초아도, 청록이도 그들 모두의 행동 뒤에는 그들의 환경이 있었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을 지탱하게 해 주고 어떤 심각하고 절망의 순간이 오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진정한 보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초아와 엄마, 청록이의 섬 여행은 바로 이런 보물 찾기 여행이었다. 가장 소중한 존재, 가족, 한 뿌리를 찾아나가는 여행.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섬으로의 도피는 장마 속 잠깐의 햇살이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들은 내면의 보물을 갖게 되었으므로 지금 어디에 있든 상관없을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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