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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 ㅣ 라임 청소년 문학 25
슈테파니 회플러 지음, 전은경 옮김 / 라임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도 중2병이 부모들에겐 가장 두려운 단어인데, 내 인생에 가장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절을 꼽으라면, 단연 중2 때이다. 왜인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나의 중2 시절은 "스스로 외톨이"였다. 아마 시작은 골치 아팠던 친구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고 그러다 그렇게 인상 쓰고 입
다물고 고독을 씹는 것에 혼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아무도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치고 지냈다. 그렇게 지내는 게 더 편했다. 지금도 난
관계에 서툰 편인데 그때에는 아마도 극에 달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잘 풀어갈 힘이 없으니 도망쳤던 거다. 중2 말 새로운 친구가 내게
다가오면서 그 시절은 끝이 났다.
<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를 읽으며 내 중2 시절이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하다. 너무나 왕성한 호기심으로 언제나 엉뚱한
행동을 일삼고 아무도 가지지 않을 만한 Z를 쓰는 조냐라는 이름을 가져서 언제나 혼자인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점이라면
난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지만 어떻게 빠져나올지 몰라 항상 허둥댔다면 조냐는 그렇지 않았고 주위에 관심이 많은, 어쩌다 보니 외톨이가 된 아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조냐는 당당하게 행동한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은 자신의 호기심을 하나씩 채워가며 지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조냐가 원래 그런
아이, 혼자 지내도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란, 없다. 어쩌면 조냐 또한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에 바쁜 척
호기심을 노트에 적고 하나씩 해결하며 지워나가는 조금 별난 아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름 방학, 또다시 혼자서 여름을 보내던 조냐는 수영장 한 켠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멋진 다이빙을 할 것
같던 남자아이는 별안간 깊지 않은 수영장 속으로 떨어지더니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구조원도 보이지 않아 조냐는 그 남자아이를 구하고 그들은 곧
친구가 된다. 이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아이들의 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처음엔 무심한 듯 낱말 게임을 하며, 조금 후엔 서로에게
질문을 하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그럼에도 조냐는 쥐죽(집에서 항상 쥐죽은 듯 지냈다 하여) 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특히 가족에
대해.
처음엔 이 길지 않은 청소년 소설이 그냥 외톨이 소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외톨이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 놓으니 참, 너무 뻔한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서술 방법이 흥미로워서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 쥐죽에 대해 조금 더 밝혀지고 결국 쥐죽의 아버지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조금 다른 주제로 옮아간다.
<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는 아동 폭력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조냐의 외톨이 문제와 쥐죽의 가정 폭력, 그리고
소년 소녀의 우정까지 합쳐 딱 그 중간...정도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정도가 아니라 셋 모두 흥미롭고 가슴
아프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서사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무엇을 기준으로 평범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한 아이들이 봤을 때, 조냐와 쥐죽은 특이한 아이들이다. 자신들이 외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거나 하지 않고 바로 물어봤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리는 건 옳지 않다. 전학을 자주 다닌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둘이 만나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면서 자신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못해도 다시 앞으로 나갈 내면의
힘이 생겼다. 나의 전부를 믿어주고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