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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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그래도 꽤 많이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이사카 코타로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책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뿐이다. 작가 이름을 검색해서 제목을 보고서야 '아~ 이 책도 읽었었지!' 하고 생각나는 것을 보니 다른 책들은 결말이 미약하거나 내용이 특별히 마음에 남지 않아 내 기억에서 잊힌 듯하다. <러시 라이프>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책이 바로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였다. 평상시 작가를 주의깊게 보며 읽는 편이기도 하지만 두 책이 구성면에서 무척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러시 라이프>는 읽기가 수월한 책은 아니다. 짧게 짧게 단락이 나뉘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계속 바뀌는데다 그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 하고 있으니 도대체 "센다이"라는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책의 1/3이 지나는 지점에 가게 되면 시간도 뒤죽박죽임을 깨닫게 되면서 또한번 혼란이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라이프>는 그야말로 이야기의 종말을 향해 마구 달려간다.

 

<러시 라이프> 표지에는 착시효과 일러스트로 유명하다는 에셔의 성 그림이 그려져 있다. 책 속 센다이 역 전망대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이 전시회와 포스터도 에셔의 성 그림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그 전망대와 에셔의 성 포스터를 보며 다양한 생각들을 한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시에 내려가는 병사들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자신의 탈출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떠올리는 이가 있는가  하며 혼자 떨어져 그들을 관망하는 병사를 보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이도 있다. 누구는 실직 상태에서 절망해 있거나 다른 누구는 내연남과 살인을 계획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을 해체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한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긍정적이거나 희망에 차있지 않다. 더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센다이 역을 중심으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들은 각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자신들 인생에 전환기를 맞는다. 이들은 끝까지 서로 모르는 채(영향을 받거나 끼쳤는지도 모르는 채) 지나치기도 하고 잠깐의 대화 후 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끝에는 절망에서 조금은 나아진 그들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인생은 릴레이일지도 모른다고. 저 그림도 비슷해. 병사가 걸어 가. 계단을 올라 골인지점에 도착하는데 거긴 다음 병사의 스타트 지점이야. 그런 거야. 모두가 줄줄이 이어져 있는 거지. 산다는 건 결국 그런 거야."...428p

 

센다이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나 그 주변을 떠돌던 개의 등장, 에셔의 그림 등 상징하는 복선들이 꽤 많이 깔려있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했다. 이들이 어떤 순서로 어떤 일들을 벌이는지 궁금해 단숨에 읽어버렸다. 소문과 실상 사이에 실소하기도 하면서. 그 좀비 이야기 같은 소문은 아직도 생생하다. 몇 권의 책이 실망을 주더라도 이렇게 반짝하는 책을 다시 만나게 되면 다시 그 작가의 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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