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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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차, 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차학경이라는 이름도 처음이다.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술은 어렵다고, 관심은 있지만 깊이는 잘 모르는 평범한 나로서는 미국에서 신진 예술가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젊은 여류 예술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몰랐다는 데에는 조금의 죄책감이 든다.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던, 그녀였다. 한국 땅이 아닌 미국에서 강간 살인 당한 그녀의 짦은 생을 몰랐다는 사실이, 같은 한국인으로서 죄책감이 들게 한 것이다.

 

<안녕, 테레사>는 테레사 차의 친오빠인 존 차가 20년에 걸쳐 집필한, 법정 장편 실화 소설이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아픔일 테다. 그 죽음이 자연사나 병으로 인해 혹은 사고로 인한 것일 경우에도 견디기 힘들 것인데 테레사 차의 경우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의 아픔을 주는 죽음이었다. 이후 그녀를 강간 살인한 범인이 지목되고 그에 대한 재판이 계속되면서 그 아픔은 또다시 파헤쳐지고 파헤쳐져 끊임없는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오빠 존 차는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재판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자 했다. 물론 직접 증인으로서 서야 했기에 법정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숱한 담배와 서성거림으로 버터야 하는 시간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른 이들의 말을 통해, 법정 기록을 통해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은 사랑하는 동생을 잘 보내주기 위한 그의 버팀목이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동생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 책으로까지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은 오빠 존 차의 의식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따라서 존 차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독자는 함께 느낄 수 있다. 함께 궁금하고 의아하고 분노하고 한탄한다. 뻔뻔한 변호사들의 말도 안되는 변명이나 주장도 함께 들어야 하고 모든 진실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없는 답답함도 함께 느껴야 한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도대체 이 재판이 어떻게 끝나갈지 함께 흥분하고 함께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한 네 장갑이 모든 걸 바꾸었다. 난 인생이 변한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몰랐다. 난 장갑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93p

 

사건이 발생한 빌딩은 테네사 차가 강간 살해당한 곳이다. 하지만 깊고 깊은 지하실 속에서 그 발생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고, 신기하게도 피해자 가족(남편, 오빠, 동생 등)이 이 장소를 발견하고 그녀의 유품 몇을 찾게 된다. 자신들이 찾아냈다는 자랑스러움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이가 존재했던 그 마지막 장소와 남겨진 물건들의 기억이 이들에겐 평생을 쫓아다닐 것이다. 더군다나 예술가 테레사가 남긴 장갑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이해하는 오빠에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책을 읽으며 내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럼에도 한 줄기 빛인 듯 미소짓게 만든 것은 이 피해자 가족에게 우호적이었던 경찰, 검찰측이다. 직접 사건 발생 장소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 진행을 수시로 연락하며 알려주는 등 피해자 가족들을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언제나 "만약..."이라는 가정은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이 젊은 한국 예술가가 이렇게 안타까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이라도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기회가 되면 그녀의 "손 전시"를 꼭 관람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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