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난
르네 바르자벨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르네 바르자벨은 그리 익숙하거나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 SF소설의 선구자이자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예지문학'을 이끌어 온 작가로서 프랑스에선 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필수 작가라고 한다. '예지문학'이라니. 르네 바르자벨이 작품 속에서 묘사된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 현실로 이루어졌다니 정말 놀랍다.

 

<대재난>은 194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1부 새로운 시대 앞부분에서 2050년 주인공의 시대를 설명하고 있는데 약 100년을 내다보고 미래를 묘사하고 있다.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에 앞서 그 시대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 2015년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대가 너무나 미래지향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매년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고 실용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35년 후의 시대가 <대재난>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대와 같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2052년, 프랑수아 데샹은 중요한 시험 결과를 앞두고 고향에서 파리로 돌아가고 있다. 가장 바라는 일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당연히 자신의 짝으로 생각하는 블랑슈를 만나는 일. 한 과학자의 엄청난 발견으로 인해 원자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 후 이제 세계는 하루 생활권이 되었고 좀 더 간편하게 좀 더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이상 힘을 들여 일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원자력을 이용한 전기를 활용하여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더이상 사람의 능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된 세상,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좀 더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죽음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 모든 조상을 실제처럼 완벽하게 처리하여 집 안에 모시게 되었고 여성들에겐 정숙함이 요구되며 마치 중세시대의 그것처럼 되돌아간 것이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시작되었다. 아니, 사실 예고는 있었다. 태양의 흑점 활동으로 인해 전기가 방해되어 가끔 정전이 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것이 멈춘 적은 없었다. 아직은 어리고 아름다운 블랑슈가 TV 스타로 거듭나려는 바로 그 순간, 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들의 나라 대통령이 그동안 참아왔던 백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그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모든 전기의 멈춤! 단순한 정전이 아니다. 어떤 힘에 의해 전기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멈춘 것이다. 이미 모든 연료가 전기로 움직이던 때였으므로 하늘을 날던 비행기나 새로운 동력기,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전력 기기와 심지어 자석처럼 붙이는 형식의 인간들의 옷까지.

 

"자연이 모든 걸 제자리로 되돌리는 중이야."...102p

 

경제적으로 자유롭지도 않고, 당연히 합격했을 것으로 생각했던 직장에서도 떨어졌으며 짝으로 생각했던 여인에게 실연의 편지를 받았음에도 이 문명의 이기주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오던 프랑수아 데샹은 침착하며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다. 우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다음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쓸모없어진 것은 바로 수고로움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간은 수천 가지의 기계를 만들었네. 그것들 각각이 인간의 행위와 노력 각각을 대체했네. 기계들이 인간을 대신해 일하고 걷고 보고 들었네. 인간은 더는 자신의 손을 쓸 줄 몰랐지. 더는 노력하는 법도, 보는 법도, 듣는 법도 모르게 되었더."...333p

 

왜 세상에 재난 따위가 닥쳤는지에 대한 것은 나오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믿음이다. 스스로 했어야 할 일을 모두 기계에게 맡겼기 때문에 자연이 다시 되돌리려 한다는 믿음. 그러니 그것에 맞춰 다시 삶을 일구어야 한다는 믿음.

 

2050년에 정말 이런 세상이 올까를 생각해 보면 아직은 좀 더 과학의 발전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역시나 작가의 통찰력과 예지력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분명 지금 2015년 또한 그런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파괴해 놓은 자연을 되돌리려는 노력보다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을 보면 르네 바르자벨이 예상하는 "대재난"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나. 모든 재난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주인공 프랑수아 데샹은 이 모든 재난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모든 기계가 사라져도 인간의 힘으로 다시 생활 터전을 일굴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 지구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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