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지음, 김남희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의 20세기가 격동의 세월이었던 것처럼 중국 또한 어마어마한 변화 속에 있었다. 신해혁명에 이어 전쟁 속에 머물렀고 장제스의 국민정부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까지. 급변하는 역사 속의 한 페이지를 살아간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내가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역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일이 똑같이 여겨지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순간 속에 있다면 말이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다. 훌륭한 류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번듯한 교육에 더불어 뛰어난 지성까지 갖춘 류옌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모든 중국 가정의 장자와 장손이 그렇듯, 모든 중국 인텔리 집안의 남자 아이가 그렇듯"...72p 다소 유약한 심성은 그의 책임과 의무를 몇 배로 가중시켰고 그가 그토록 원하는 자유를 자연스럽게 앗아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은 계모가 흘리는 눈물 앞에서, 사랑하지도 않는 의무 결혼이지만 갸냘픈 등을 가진 그의 아내 뒤에서. 때문에 그는 조금이라도 시간과 거리가 생기면 자유를 향해 날았다. 남들은 방탕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에겐 자유였다. 그리고 그 모든 자유가 차단되었을 때라도 그는 그가 사랑하는 언어만큼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역사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자신의 학문에서 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했던 루옌스는 역사와, 혼돈과, 적들과 타협하지 않아 점점 도태되어 간다. 루옌스는 일상 생활에선 우유부단하지만 자유를 지키고 싶어했던 자신의 전공분야에서는 절대로 나약하지 않았다. 적당히 넘어갈 줄 아는 융통성을 보이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밝혔다. 때문에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디지 않는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가게 되고  그 여파로 그는 희생양이 되고 만다.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는 루옌스의 손녀 쉐펑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쉐펑은 할아버지가 오랜 기간에 걸쳐 머리 속으로 쓴 수필을 원고지에 옮기는 작업을 함께 했고 그 이후 원고가 쉐펑의 손으로 들어간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시간적 순서에 따른 이야기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아 어느날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없이 끌려가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그 평원에서의 이야기가 오버랩 된다.

 

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희생당했다. 하지만 그는 그 역경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내고 인내심을 배우며 더욱 자신을 갈고 닦는다. 그래도 말이다. 사회주의 속에 세뇌된 자녀들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던 그가, 무척이나 애처롭다. 적어도 가족만은 그를 지지해 주었어야 하지 않나.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들만 있어야 할까.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아니다. 난 그런 사람들의 뻔뻔함과 치사함, 약삭빠름이 싫다. 때론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때론 "쓸모 없는" 사람들도 있어야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쓸모 없다고 이용당하고 희생을 강요당한다면, 그런 세상은 무척 살기 힘들 것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