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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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생으로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함으로써 일본에 '히라노 열풍'을 일으킨 히라노 게이치로의 첫 소설이다. 무척이나 일본 느낌이 나는 표지와 제목과 달리 본 페이지를 넘기면 의아하게 중세 유럽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쯤 되면 '응?'하고 다시 앞 표지를 넘겨 진짜 일본 작가가 맞는지, 유럽에서 살다 온 것은 아닌지 작가 이력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도대체 어째서, 지금 이 현대를 살고 있는 작가가 전혀 다른 지역의 전혀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말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또다른 의문에 부딪힌다. 지금 우리에게 사용되는 한자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한자어가 끝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번역가가 귀찮아서 일본식 한자를 우리말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줄 알았다. 그래서 번역가를 확인해 보니, 헉! 양윤옥님이다. 그러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책을 모두 읽고 뒤편 "작가 인터뷰"와 "옮긴이의 말"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1482년, 젊은 수도사 니콜라는 자신이 갖게 된 책 한 권에서부터 시작해 철학적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선 일체의 의심도 없지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학문의 길에는 이단적 사상이 조금은 섞여 있다. 니콜라는 그에 대해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기에 그저 학문적 성취를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비엔이라는 동네에 도착한다. 이곳엔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는 연금술사가 존재하고 니콜라는 그 피에르 뒤페에게서 지적 호기심과 존경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하고 있는 연금술이라는 것 자체가,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으로 고뇌한다.


소설은 단지 이 고민에서 멈추지는 않는다. 이후 이게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를 읽으면 도대체 이 소설은 어디까지 이야기하려는 것일까...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쯤 되면 뒤편의 작가 인터뷰와 옮긴이의 말을 열심히 읽어볼 밖에...ㅋㅋㅋ


"작가가 글을 쓰는 데 있어, 독자의 수준을 낮게 설정하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골라가면서 쓰는 태도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오히려 표현을 쉽게 하겠다는 의도로 잡다한 설명을 늘어놓았다면, 그의 작품들을 지금이 무게를 유지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요."...247p


실제로 그렇다. 쉽게 풀어 쓸 수도 있겠지만 적재적소에 딱 맞는 한자어가 들어감으로써 그 문장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렇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한자어 중에는 나도 사용해보고 싶다고 느껴진 어휘도 있었기에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썼는지 충분히 느껴졌다. 어휘뿐만이 아니다. 심사위원들의 분분했던 의견인 의고체에 대해서도 작품의 배경이 15세기 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읽는 내내 정말로 중세 유럽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그 당시, 그 지역에 대한 고증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 수 있다. 정말 대단한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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