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누구나 음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드러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을 읽고 나선, 난 아직도 너무 교만했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스키..로 끝나는 이름이라 무척 러시아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독일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평생을 살았으니 그냥 미국인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높은 학력을 자랑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완전 깨주시는 분이다. 컬리지를 2년 만에 중퇴, 도서관에서 혼자 작가 훈련을 했다. 아마 부코스키의 필력은 이때 다져지지 않았나 싶다. 첫 단편 이후 창고와 공장을 전전하며 밑바닥 삶을 살았다. 이때의 경험, 이후 우체부로서 다소 긴 경력 시절의 경험 후에야 전업 작가가 된다. 오랫동안 시를 쓴 사람,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수의 소설을 써서 미국 주류 문단의 이단아로 떠오르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본인이 말한 대로 "미국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쓰레기 같은 신문"(...7p 서문 중)이라고 표현하는 <오픈 시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그런 잡지이기에 "살짝 무딘 칼날로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후벼 파지도", "평범하고 부주의한 잡지 기사처럼 쓴 것도"(8p 서문 중) 아니란다. 그야말로 맥주를 홀짝거리며 자신이 쓰고 싶은 모든 것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쓴 글이다. 창간자인 존 브라이언은 부코스키의 글을 재단하거나 평을 달지 않았고 그렇기에 부코스키는 그야말로 날개 단 듯, 그가 쓰고 싶었던 모든 글을 자유롭게 썼고 다음주 수요일날 전 로스앤젤레스에 깔렸다. 그래서 이 모든 글은 정말 날 것 그대로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제목부터 음탕한 이 책이 과연 얼마나 음탕하겠어...라는 생각은, 잘못이었다. 술, 담배, 도박, 사기, 섹스, 폭력, 살인...이 모든 것이 진짜라면 정말 무서울 따름이다. 처음엔 이 책의 내용이 에세이니 모두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다소 SF나 판타지스러운 내용이 나오면 역시 픽션이었다고 위로했다가 다시 이 책의 분류가 에세이임을 확인하고 진짜일 거라고,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겐 그야말로 너무나 먼 곳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런 표현들을 배제하고 부코스키가 그 안에 쌓으려고 한 것이 무엇일지 파악해보려 애쓰며 읽었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걸어 다닐 다락과 어두운 복도가 있는 것과 같다. 그건 좋지 못해 불편한 저녁으로 이어지고, 결국 술을 진탕 마시고 마음이 사정없이 찢어진다."...59p

"모든 것이 내 글에 도움이 돼."...121p


가장 밑바닥까지 가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그 밑바닥 어딘가에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한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시아에 사는 한국인이고 여성이기에, 역시나 이 책을 읽으며 아주 많이 불편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불평이나 편견 없이 읽으려고 무척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시대가 흘렀고 여기는 미국이 아니고 항상 밑바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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