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새움 세계문학
버지니아 울프 지음, 여지희 옮김 / 새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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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중 제일 먼저 흥미를 가졌던 건 <올랜도>였다. 영화 포스터의 아주 강렬한 느낌 때문이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조금 찾아보니 원작이 있었고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였던 것. 영화보단 책이 먼저라는 나름의 고집 때문에 <올랜도>를 읽었는데 영화 포스터를 보며 키운 상상했던 작품과는 많이 달라서 당황했던 기억과 그만큼의 놀라움을 느꼈던 책이었다. 당황은 SF나 신나는 판타지가 아니어서였지만 놀라움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작품이어서다. 


그러고나서야...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가 보였다. 그녀의 인생에 대한 일러스트 책을 보고선 그녀의 마지막 길이 깊은 인상을 남겼고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번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자신이 살았던 상황과 그 전 시대, 미래 시대까지 내다보며 여성들의 위치에 대해 맹렬하게 고민한 그녀의 인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작가를 이해하는 것보단 자신을 드러내는 에세이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수많은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 중 <자기만의 방>이라는 수필을 선택하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표지를 선택한 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솔직히 읽기가 아주 쉬웠다고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이해가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는 건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벗어나기 일쑤였다.(아마도 나의 배경지식 탓이 아닐까 싶다.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나 작가들에 대한 지식이 딸리다 보니 설명을 읽고 궁금해 하고 그러다 보면.. 중심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힘은 그녀의 생각에 완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 시대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내 어린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상황이다. 아직도 여성들은 자신의 온전한 독립을 위해 경제적으로, 공간적으로 독립이 필요하다. 그런 사실을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전 시대의 몇 되지 않는 여류 작가들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 독립을 하면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얼마나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내가 기를 쓰고 아이를 일찍 재운 후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만의 시간, 공간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자녀를 위해, 남편을 위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내겐 그 무엇보다 나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 시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분명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 같은 삶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이런 생각을 밝히면 엄청 공격적인 "페미니스트"로 낙인 찍히는 세상이 아닌가. 내 딸들의 시대에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에 충실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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