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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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물은 읽는 쪽이든 보는 쪽이든 싫어한다. 귀가 예민하기도 하고 큰 소리에도 잘 놀라기 때문에 영화에서 들리는 기분나쁜 소리들은 정말 쥐약이다. 블록버스터에서도 큰소리 나오면 깜짝 놀라는데 호러물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공포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이게 뭔지 되게 궁금하다' 호기심이 충만한 스타일이긴 한데 또 궁금하다고 막 덤벼드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대개는 호기심에 반짝 눈을 빛내며 달려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접는 쪽을 택한다. (접으면 또 금방 잘 잊어버리는 마음 편한 스타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서움을 잘 느끼는 건 엄마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은 것 같은데, 엄마와 영화관에 가서 무서운 영화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심지어 집에서도 없다. 엄마도 무서운 걸 보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면서 '절대' 보지 않는 편.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무서운 것은 글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이러 생각한다. 눈앞에 실체화되지 않는 상상이라는 것은 그 누가 뭐라고 하던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형태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머릿속 상상물을 글로 풀어놓은 그것들을 자신만의 상상으로 재조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호러물은 읽지 않는 편인데.. 왜인지 <무녀굴> 이 책은 읽어보고 싶었다. 여름이랑 잘 어울리겠다, 읽고 나면 시원해지겠다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무녀'가 호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 하나 때문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하길 대체로는 접는 쪽을 택한다 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 부딪혀 보기로 했다. 읽다가 정 무서우면 무서운 부분은 건너뛰면 될 것이라 생각해서다. 그렇게 해서 읽어보게 된 <무녀굴>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아니 무섭긴 했는데 내가 무서운 부분은 세세히 읽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저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것은 뼈대이다. 그건 어느 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무녀굴>은 그 뼈대가 착실히 잘 세워져 있었다. 반전을 위한 복선을 앞쪽에 계속 깔아 놓으면서도 그것이 복선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호기심을 차근차근 모아둔다. 책을 읽는 동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긴박감에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손에 책을 잡으면 쉬이 놓을 수도 없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책을 읽게 되는 책. 도대체 이 다음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 건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그래서 결말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무려 440페이지나 되는 책을, 빽빽히 글로만 들어차 있는 책을 밥 먹는 시간과 약간의 쉬는 시간들을 포함해 4시간 정도만에 독파했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고.


굉장한 두께답게 등장인물이 엄청나다. 그리고 그 많은 등장인물들 중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여러 명이다. 일단 주인공은 의대에 다니다 현재는 퇴마사 일을 하고 있는 '신진명'이라는 남자다. 의대에 다닐때 자신을 챙겨줬던 선배 김주열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찾아갔다 귀신과 관련된 무언가를 느끼게 돼 사건에 깊숙히 개입하게 된다. 그 김주열의 아내이자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금주', 그리고 그의 딸 '세연'. 그리고 신진명을 취재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하는 '박혜인'이라는 방송국 여자PD. 이 정도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박혜인 피디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캐릭터로 주인공으로 치부하기는 어렵지만, 그녀가 가끔씩 저지르는 상황들로 인해 이야기가 급 전개 되므로 중요한 사람들 속에 집어 넣었다.


<무녀굴>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금주'의 주변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진명'이다." 쯤이려나.

사실 이야기의 시작은 '금주'가 아니다. 제주도 사굴 탐험을 하러 떠난 자전거 동호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금주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자전거 동호회의 이야기는 그렇게 오프닝으로만 쓰이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초반에 다시 살아나 굉장히 많은 떡밥을 던져 준 채 퇴장한다. 그리고 온전히 금주에게로 사건이 옮겨간다. 그 전까지는 2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거기에 신진명의 시점까지 3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차다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죽을 때 듣는 방울소리, 하얀 소복을 입고 곱게 쪽을 진 머리를 가진 귀신을 본다는 것으로(물론 독자들만 아는 사실이다만) 그 귀신이 무당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살짝의 힌트만을 던져준 채 사건들만을 좇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 동호회 사건이 마무리될 쯤 그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여 끝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하면서부터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만큼 박진감이 넘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라고 할 수 있는 그 부분들의 좀 루즈한 느낌을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속도가 붙어 굉장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초반에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그 부분들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 또한 놓칠 수 없는 것이 뒷쪽에서 앞의 이야기들을 가끔씩 소환하기 때문인데, 그러니 잘 봐두는 걸로.


중요하겠지, 생각하고 적어뒀던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었다. 그런데 끝으로 치달을 수록 예상을 뛰어넘기도 하고 예상대로 진행되기도 하면서 전혀 새로운 국면을 자꾸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이 이 책의 굉장한 묘미다.


여긴 그저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 그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했다. 어떻게 보면 상상이란 마치 병원균처럼 전염성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최초의 누군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입으로 전달되고, 다시 그것이 상상이라는 과정을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상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다 보면 그것은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거치게 되고, 다시 몇 세대를 거쳐 후대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다.


초반에 이렇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혼동하지 말자!를 외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페이크다. 오히려 이런 것들로 인해 작가는 '실제와 만들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구별할래?'라고 독자에게 묻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해결이 된 듯 해결이 되지 않은 듯한 묘한 뒷끝을 남기는 것 또한, 당신이 금주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는 듯 느껴졌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고 싶어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그녀만큼 불쌍한 영혼은 이 책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한바탕 일이 끝났는데도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고통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어서 일테다. 하지만 힌두교 경전의 말을 마지막으로 끝맺는 책은, 왜인지 이게 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다.


종말은 없다. 영혼에는 출생도 죽음도 없다.

한번 생겨난 존재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태어나지도 않고 영원하며, 항상 존재하며

죽지 않는 태고의 존재다.

ㅡ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 중에서


당신은 감당할 수 있겠는가, 피할 수 없는 그 운명의 저주를..


덧)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공포를 잘 접목시켜 굉장한 소설을 써낸 신진오 작가는 <무녀굴>이 첫 작품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욱 기대를 해 봐도 좋을 듯 하다. 거기다 이번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퇴마: 무녀굴>은 원작과는 조금의 차이점이 있는 듯 한데, 내가 충격적으로 봤던 부분들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됐는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볼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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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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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흔하게 쓰인지' 벌써 몇 년. 컬러링북이 자기 자신을 힐링하는, '무언가를 하는' 책의 탄생을 알렸다. 색칠을 하는 동안에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던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은 채 비워진 곳을 색칠하는 데 집중하며 잡생각을 날려버리고, 여러 색깔을 섞어서 쓰면서 그 속에서 묘한 어울림을 발견하기도 하는 즐거움을 찾는 그런 컬러링북. 컬러테라피를 컬러링북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컬러링북은 '붐'이 일어날 정도로 어른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컬러링북을 안 해 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컬러링북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이가 없는 것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 속에 색칠을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책을 그대로 베끼는 '필사' 영역까지 뻗어 나왔다. '라이팅북'이라는 이름을 달고 말이다. '무언가를 하는 책' 2기가 시작된 셈이다.

 

시중에 라이팅북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캘리그라피와 맞물려 둘의 시너지가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 같고, 사람들이 글자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컬러링북에 이어 놀이화 시키기 시작했다. 필사는 더이상 작가가 되기 위해 한 번쯤은 해 보는 작가코스가 아니며, 굳이 어렵고 읽기 힘들지만 주옥같은 문장들이 담겨 있는 책을 필사할 필요도 없다. 라이팅북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게 여러 장르의 책들을 내놓았고, 독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내용들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를 선택했다.


 


이 책은 애초에 샘플북으로 시작한 필사단이라서 책 전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샘플북을 보며 직접 필사를 해 본 결과, 이 책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시를 읽는 재미가 있다. 모르는 시를 읽는 것도 좋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시를 읽는 것도 좋다. 시를 읽으며 그 단어를 곱씹어 보면서 한 글자씩 바로 옆의 공간에 옮겨적다보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책은 김용택 시인이 직접 선택한 시 101편과 김용택 시인 본인의 시 10편이 수록돼 있다. 총 111편의 시를 다 읽어보지는 않아 알 수 없지만, 시를 추천해 준 김용택 시인의 감성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필사한 것들 중에서 '그날'이 가장 좋았다. 곽효현 시인의 시도 좋았고, 내가 옮겨 쓴 것도 좋았고, 거기에 사진도 잘 찍혔다. 내가 받은 샘플북에는 총 12편의 시가 실려 있다. '청포도' 같이 유명한 시도 있고, '찬란' 같이 처음보는 시도 있다. (이병률 작가가 시인이었다는 걸 늘 잊고 있는데, 이 '찬란'이라는 시를 통해 그를 다시 깨달았다고 해야할까. 무튼 되게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12편의 시 모두가 각기 다른 매력을 내뿜고 있는데, 본편은 4부로 나뉘어 있다고 하니 각 시가 담긴 카테고리를 잘 생각하며 작가가 그 카테고리에 넣었던 느낌을 생각 했으면 좋겠다는 느낌.

 

 


맨 뒷쪽에는 앞에서 마음에 들었던 시를 다시 한 번 써보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나는 전문을 옮기는 대신 내게 와 닿았던 단문을 옮기는 것으로 마음을 먹고 이것 저것 옮겨 보았다. 샘플북에 실려있는 12편의 시 중에서 '그날'이란 제목의 시, '울컥 울음이 터졌다/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는 아마 두고두고 느끼지 않을까 싶을만큼 내게 새로운 발견이었던 시였고 기분 좋은 시란 생각이 든다.

 


본래 이 책의 제목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작가의 말 속에 그 의미가 담겨있다.

누구나

눈물 한 말 한숨 한 짐씩 짊어지고

밤하늘의 별들 사이를 헤매며 산다.

시인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시가 헤매는 우리 마음을 잡아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밤하늘의 저 별들이

내 슬픔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김용택


내 슬픔 한 조각이라도 위로받고 덜어낼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 같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그저 손을 움직여 집중하는 것 뿐인데 머리가 맑아진다. 기분이 나아진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시를 발견하게 된다. 정말 이 책이, 어쩌면 내 마음을 잡아줄 지도 모르겠다라는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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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리얼 종이접기 2 - 하늘을 나는 생물편, 한차원 업그레이드된 살아있는 창작 종이접기 리얼 종이접기 2
후쿠이 히사오 지음, 민성원 옮김, 오경란 감수 / 에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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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가 어린이들만 하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나. '종이접기가 시시하다'며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 정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얼른 이 책을 손에 쥐어 주고 싶다. 섬세하고 세부공정이 많은데다 곡선으로 접는 공정이 많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종이접기와는 차원이 다른 종이접기의 신세계를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요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영맨'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종이접기'에 갖는 관심이 뜨거워졌다. 영만 아저씨가 접는 종이접기는 아이들과 함께 접기 쉽고 창의력 발달에 좋은, 쉬우면서 오감을 자극할만한 알록달록 '공작시간' 정도다. 자르고 붙이고 간단하게 접으면서 어렵지 않게 흥미유발을 일으켜 '함께 놀기 위한' 종이접기. 근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들을 만들자니뭔가 좀 간지럽다. (나는 영만 아저씨의 마리텔을 보고 옛추억에는 잠겼으나, 그 종이접기를 따라하며 동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종이접기는 충분히 어른이 된 나한테도 매력적이긴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하는 쉬운 종이접기 말고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종이접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와중에 '리얼 종이접기'라는 책 제목이 유독 눈에 띄어 보게 된 책.


<놀라운 리얼 종이접기2>는 1편의 반응에 힘입어 나온 2편이다. 1편은 토끼, 사자, 호랑이, 사마귀 등 땅에 사는 동물과 곤충들, 티라노사우르스, 스테고사우르스 등의 공룡들과 달마, 반야상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을 '종이접기'로 구현해냈다. 2편은 '하늘을 나는 생물'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됐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을 나는 무엇이든간에 종이접기로 구현해내겠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놀라울 정도로 사실성에 입각한 종이접기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까마귀, 참새, 홍학, 독수리, 공작, 제비, 백조, 원앙 등의 새와 잠자리, 장수풍뎅이, 나비, 매미, 풀무치(여치와 비슷하게 생겼다) 등의 곤충, 용과 봉황까지 표현해내는 종이접기는.. 과연 내가 접을 수 있을까의 생각을 하게 했다.


완성된 작품으로만 얼핏 보면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각 작품에는 기초접기 단계가 있어 우선 그것을 접고 나면 점차 리얼하고 높은 단계의 형태로 전개시킬 수 있게 됩니다. 과정이 조금 긴 기초접기도 있지만 그리 어렵지 않으므로, 몇 번 도전하다보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접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종이접기 방법을 고안해 낸 후쿠이 히사오가 머릿말에서 한 말이다. 정말 완성품으로만 본다면 엄청나게 어렵게 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꽤 어렵다. '얼핏 보면 어려워 보일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접어가다 보면 어디를 접어야 하는지 뒤집어야 하는지 꽤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공정도 많아서 되게 많은 선이 생긴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시중에서 파는 일반 색종이로 종이접기를 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 종이접기는 '될 수 있으면 얇은 종이'로 하길 권한다.


<놀라운 리얼 종이접기>에만 있는 특별한 것은 또 있다. 바로 '풀먹이기'다. 리얼하고 입체적인 형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사실 종이접기 하는데 목공용 풀이 왜 필요한가 싶었다. 직접 접어보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 종이접기는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과정이 많고 접는 선이 많아 더이상의 종이접기를 할 필요가 없는 부분은 '풀을 먹여' 빳빳하게 모양을 만들어 주는게 다음 과정을 위한 준비이다. 풀먹이기가 무조건이지는 않지만 만약 중급자 이상의 종이접기 실력자라면 꼭 풀먹이기를 해보라 작가는 권한다. (나는 중급자가 아니라 초급자이므로 풀먹이기는 하지 않았다만.)


표지에서 제일 눈에 띄는 봉황 종이접기 부분을 호기롭게 펼쳤다가 눈이 돌아갈 것 같아 제일 쉬운 종이접기로 돌아왔다. 제일 쉬운 난이도의 새 중에서 가장 만만해 보였던 원앙을 펼쳤다.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는 꽤 잘했던 걸로 기억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당최 무슨 그림인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게 함정.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겨우 원앙을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종이중 가장 얇은 종이는 종이접기용 색종이 뿐이어서 색종이로 만들어 보았다. 풀먹이기의 필요성을 이때 처음 느꼈는데, 작가가 만든 예시만큼 빳빳하게 서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누르는 힘이라던가 제대로 잘 안접힌 부분이 존재하는 듯 했다.) 더불어 종이는 될 수 있으면 얇은 종이를 쓰라던 작가의 말에도 공감했다. 모양을 만들어갈수록 종이를 접어야 하는 두께가 존재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잘 접히지 않고 그냥 구겨져 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를 접어보니 뿌듯했다. 아직 녹슬지 않았어!!란 생각까지 하면서.


 


종이접기 방법은 여타 종이접기 방법과 다를게 없다. 다만 '풀먹이기' 부분을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 표시되어 있다는 것과 포인트로 유의점을 짚어주는 부분도 읽고 넘어가면 종이접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입체적 작품들을 만들어내면서 최대한 사실적이면서도 종이접기의 틀은 벗어나지 않은 채 창의력은 높일 수 있는, 한 마디로 굉장한 종이접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다음부터 접은 종이접기 작품들은 중간에서 중도포기 한 것들이 꽤 많지만, 종이접기 도면을 보면 볼수록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감이 잡혀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가 진짜 봉황을 성공하게 되는 때가 올 것만 같은 느낌. "많이 접어 볼수록 도면을 보는 안목이 높아진다. 따라서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접어 보고 자신감이 생겼을 때 작가가 제시한 풀먹이기를 통해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보기 바란다."는 감수자의 말에서 내가 왜 도면에 익숙해졌는지 찾아냈다. 그리고 굉장히 반가웠다.


아직 나는 초보자일 뿐이라 이 책에 있는 모든 종이접기를 잘 하게 되는 날이 올까 싶지만, 이 종이접기도 컬러링북이나 라이팅북처럼 잡생각을 떨치고 집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라이팅북이나 컬러링북이 마음대로 칠해지지 않는다고,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가뭐라하지 않지 않나. 종이접기를 하면서 잡다한 생각을 떨쳐내고, 더불어 창의적인 생각까지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종이접기가 진화했다. 다음에 연이어 나올 <놀라운 리얼 종이접기3>에는 어떤 종이접기들이 있을지, 점점 기대가 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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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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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고르는데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단연 제목이다. 그리고 글쓰는 사람의 책은 일단 믿고 보게 된다. (나만 그런가) 근데 이 책은 '제목'이 <다정한 편견>이고 손홍규 작가가 쓴 책이라고 한다. 어찌 손을 뻗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실 제목부터가 생각이 많아진다. '편견'에 다정함이 속할 수 있는 것일까? 편견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선을 그어버리는 행동인데, 거기에 '다정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니까 되게 그럴싸해지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도대체 다정한 편견이란 것이 무엇일까.

 

책의 절반은 '체험'이고 나머지 절반은 '주장'인데, 저는 전자가 조금 더 좋았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글이다. 이 한 문장만큼 <다정한 편견>이라는 책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없는 것 같아 적어보았다. 앞쪽의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과 2부 '선량한 물음'은 작가가 겪었던, 예전의 그 어느 날이 갑작스레 떠오르거나 잔잔하게 떠올라 쓴 글들이 대부분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글대로 작가가 겪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따뜻하다. (2부보다는 1부가 더 따뜻하다) 3부 '바느질 소리'와 4부 '다정한 편견'은 어떤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작가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글들이 주를 이뤘다. 고개를 끄덕일만한 작가의 생각도 있었고, 폭풍공감을 하며 읽었던 나와 비슷한 생각도 있었으며, 읽으면서 별 생각 없었던 이야기도 있었다. '어른'의 시선이 잔뜩 들어간 충고와 조언의 생각들을 마주하면서, 비록 나도 어른이지만 '어른의 생각은 이런거구나'라는 걸 느꼈다고나 해야할까.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꽤 담담하게 꺼내놓고 있는 글이었지만, 그 글 속에서 느껴지는 어른스러움은 아직 내가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듯하게 느껴졌다. 글에서 내공이 느껴지는 책은 또 오랜만이었다.

 

 

<다정한 편견>의 1부의 느낌은 구수한 고향집에 잠시 다녀가는 느낌이 드는 글들이다. 대체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어린시절 살았던 가난하지만 정겨운 시골 고향집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따금씩 정전이 되는지라 촛불을 늘 준비해놓기도 하고, 홍시가 익을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곶감을 만들던 그런 시골 고향. 그 속에는 작가를 위해 흙탕물을 달려오신 어머니가 계시고, 짜파게티 끓이고 난 후 버리는 물도 못내 아까워 소 여물통에 쏟으려다 면발까지 같이 쏟아버린 아버지가 계신다. 작가의 어린시절이 글 하나하나에 조금씩 조각조각 나뉘어 담겨 있는데, 그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중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싸목싸목'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이다. 몇몇 울컥했던 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가의 고모가 늘 입에 붙인채 추임새처럼 넣어주던 단어라던, 내게는 꽤 생소한 단어인 '싸목싸목'. 

 

밥 한끼 베푸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대접할 게 없던 그 시절에는 밥상 한번 차려주는 것보다 더한 인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싸목싸목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리 배가 불렀다. 바쁜 일 없으면 싸목싸목 오시게나,라고 해도 배가 불렀고 체할라, 싸목싸목 먹으렴, 이라 해도 배가 불렀다. (33쪽)

 

이상하게도 나는 한 번도 들어본 말이 아닌데, 작가의 고모님의 정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정이란 것이 생각보다 낯선 내 또래들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생경한, 그리고 꽤 부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우산'이라는 제목의 글도 되게 좋은 글로 추천한다.

 

 

2부는 1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체험이다. 길가다가 본 어떤 이주노동자의 눈물로 말미암아 '눈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도 하고, 언어살해자라고 불리는 영어를 생각하다 말고 '진정한 언어살해는 뜻이 통하지 않는 말,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판돈'이라는 인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농민의 서글픔을 생각하기도 한다. '다음생'이라는 제목의 글은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전생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과거가 바로 전생이다. 마찬가지로 미래가 다음 생이다. 오늘 오후가 그렇고 다음날이 그렇고 다음달이 그렇다. 다음 생에서 불안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다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지금부터 다음 생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83쪽)

 

 

3부의 글은 꽤 관념적인 단어들과 관련된 사유들이었고, 4부의 글은 현재의 대한민국 혹은 정치에 대한 사유들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은 앞쪽이었으니 3,4부는 좋은 글 몇 문장을 옮겨 놓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오늘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난 뒤에야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매번 깨달음은 한 걸음씩 늦게 찾아오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165쪽)

 

우리는 가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줍기 위해 무릎을 굽히기도 한다. 삶은 이 멈춤과 침묵 없이 해석될 수 없다. 멈추고도 멈추지 않는 것 흐르고도 흐르지 않는 것.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그 무엇이다. (187쪽)

 

때때로 혹은 자주, 공간은 냄새보다 강렬하게 과거를 환기시킨다. 사랑을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았거나, 벗들과 정답게 술잔을 기울였거나, 그보다 더 우울했거나 즐거웠거나 사소했거나 상관없다. 우리가 부려놓았던 감정들만큼 공간은 의미가 있다. (247쪽)

 

사실, 책을 받아들자마자 '다정한 편견'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부터 읽어보려했다. 하지만 '다정한 편견'이라는 글은 존재하지 않았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4부의 제목일 뿐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되게 내 방식대로 생각해 보건대, '다정한'은 1부와 2부를 지칭하고 '편견'은 3부와 4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4부의 제목이라서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왜인지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서평의 제목이 '다정한 쪽이 좋다'라고 지은 것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이 책 <다정한 편견>은 잘 쓰여진 책이다. 원고지 4.5매의 제약을 뚫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2페이지가 채 안되는 분량의 글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내고 그래서 읽는 이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좋은 책- 그래서 나도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을 가져보려고 한다.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이 세상속에 존재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편견들 속에 다정함을 살짝만 넣어 좀 더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래서 결국엔 '다정한'만이 남게 된다면 내 편견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정한 쪽이 더 좋은 나는, 편견을 다정하게 바꾸어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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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독해 - 나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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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좋아서, 읽어야 해서, 읽으니까 좋다고 해서, 할 게 없어서 등등. 각자가 어떤 이유에서든 책을 읽고 있다. 그것이 누가 시켜서든 자의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책을 읽는 이유만큼이나 책을 읽는 방법도 사람들마다 조금씩은 다르다. 책을 읽어내는 행위는 한 가지이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거기서 얻어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다면 아마 자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읽어낼테고, 솔로들이 읽는다면 미래의 어느때를 상상하면서 읽어낼테고, 이별하는 사람들은 그런 책은 쳐다도 보지 않는 것처럼. 책이 가진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책은 하나인데 그 속에서 읽히는 것이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사실 책읽기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입에 논술이 강조되면서부터 논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독서는 각광받기 시작했고, 살기가 팍팍해질수록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자기계발서들이 불티나게 조명됐으며, 현재는 첨단기술과 인문학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인문학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책을 읽으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아이를 둔 엄마들은 어떻게든 아이에게 책읽는 습관을 들여주려 안달복달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책을 읽기만 해서' 그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그 부분에 의문을 갖는다. '도대체 어떻게 읽으면 통찰력이라는 것이 생긴다는 말인가'라고 말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통찰력이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 나의 주변을 재배열하는 힘'이다. 그것은 '외부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적시적소에 자신의 의도를 풀어냄으로써 전체 흐름을 타는, 혹은 이끌어가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지 절대로 물리적으로나 학습적으로 배워서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도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책을 '읽어내기만 한다'고 책 속의 모든 지식이 이야기가 내것이 되리란 보장이 없다. 물론 좋은 이야기를 백 번 천 번 본다면 그것은 그 텍스트 그대로 저장되어 기억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렵지만 책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얹고 생각을 얹어 내것으로 얼만큼이라도 만들어내는 작업을 통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통찰이다. 이 책 <인생 독해>는 저자인 유수연이 생각하는 '통찰'의 방법이다. 저자는 책 그대로의 이야기보다는 책 속의 이야기에서 뻗어나온 여러 상황들을 현실에 빗대어 생각해 보는 것을 즐겨한다. (저자 본인은 그것을 '실전 독서'라고 이야기한다.) 그 생각들 속에서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고, 얻을 수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어떤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음에 그 독서는 꽤 진중하고 좋은 독서가 될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어린왕자>를 읽고 어린왕자를 두둔하기는 커녕,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려낸 사업가를 두둔하는 모습. <페스트>를 읽고 전염병은 차별을 뜻하는 것이며, 현실은 돈이라는 전염병을 통해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모습. '거울'이라는 이상의 시를 읽고 에고 소비를 생각하는 모습. <인생론>을 읽으면서 '잘 파는 법'에 대한 생각을 하는 모습 등- 그녀의 책읽기는 무섭게도 현실과 가까이 있었다. 조금은 신선한 책읽기 방법이었다고나 할까. 사실 책은 파트 1과 파트 2로 나뉜다. 파트 1의 책들은 저자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과 현실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한다면 파트 2의 이야기들은 경영, 혁신, 소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아마도 파트 2는 독해라는 주제에 맞게 책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끌어낸게 아닌가 싶다. (현실은 책의 연장이라는 작가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그렇다는 거다. 뭐 더 정확한 건 저자 본인만이 알테니 나는 이쯤에서 패스하는 걸로)

 


책 속에 담긴 그녀의 생각들은 그다지 감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고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무서울 정도로 현실을 잘 알고 한 발 더 내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의 글이었다. 속물적이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가치관'은 카뮈에게서 삶의 '전술과 전략'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에게서 그 완성은 '나' 자신에게서 증명되고 확인된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생 독해>는 유수연의 생각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하는 생각, 가치관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글에 대한 내공을 말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그녀의 내공은, 읽는 이를 압도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이며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녀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더 크게 와 닿는다. 책 한 권도 허투루 읽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덧대어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이 당연한 사람의 그 '생각'이란 것은, 일반인들은 절대로 따라갈 수 없겠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 속에 담긴 고민의 흔적들은 아마 내일의 나도 어젠가는 동감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위치에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읽는 이에게도 생각이 많아지게 한다.

 


묵묵히 발밑만을 보고 걸었다. 손에 쥔 빵 한 조각과 조각칼에 감사하며 걸었다. 서툰 기대와 어설픈 희망을 경계하며 나의 하루를 믿고 걷고 또 걸었다. 어설프고 잔인한 희망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피하고 싶은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노력은 특정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함이었다. 그저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다 보면 언젠가 오늘과는 다른 위치에 가 있겠지,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 (136쪽)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듯한 그녀의 생각은, 생각보다 생각할 것이 많은 글이라 참 좋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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