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물은 읽는 쪽이든 보는 쪽이든 싫어한다. 귀가
예민하기도 하고 큰 소리에도 잘 놀라기 때문에 영화에서 들리는 기분나쁜 소리들은 정말 쥐약이다. 블록버스터에서도 큰소리 나오면 깜짝 놀라는데
호러물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공포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이게 뭔지 되게 궁금하다' 호기심이 충만한 스타일이긴 한데 또 궁금하다고 막
덤벼드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대개는 호기심에 반짝 눈을 빛내며 달려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접는 쪽을 택한다. (접으면 또 금방 잘 잊어버리는 마음
편한 스타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서움을 잘 느끼는 건 엄마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은 것 같은데, 엄마와 영화관에 가서 무서운 영화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심지어 집에서도 없다. 엄마도 무서운 걸 보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면서 '절대' 보지 않는 편.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무서운 것은 글을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이러 생각한다. 눈앞에 실체화되지 않는 상상이라는 것은 그 누가 뭐라고 하던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형태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머릿속 상상물을 글로 풀어놓은 그것들을 자신만의 상상으로 재조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호러물은 읽지 않는 편인데.. 왜인지
<무녀굴> 이 책은 읽어보고 싶었다. 여름이랑 잘 어울리겠다, 읽고 나면 시원해지겠다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무녀'가
호러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 하나 때문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하길 대체로는 접는 쪽을 택한다 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 부딪혀 보기로
했다. 읽다가 정 무서우면 무서운 부분은 건너뛰면 될 것이라 생각해서다. 그렇게 해서 읽어보게 된 <무녀굴>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아니 무섭긴 했는데 내가 무서운 부분은 세세히 읽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저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것은 뼈대이다. 그건 어느 글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무녀굴>은 그 뼈대가 착실히 잘 세워져 있었다. 반전을 위한 복선을 앞쪽에 계속 깔아 놓으면서도 그것이
복선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호기심을 차근차근 모아둔다. 책을 읽는 동안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긴박감에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손에 책을 잡으면 쉬이 놓을 수도 없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책을 읽게 되는 책. 도대체 이 다음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 건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그래서 결말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무려 440페이지나 되는 책을, 빽빽히 글로만 들어차 있는 책을 밥 먹는 시간과 약간의 쉬는 시간들을 포함해 4시간 정도만에 독파했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고.
굉장한 두께답게 등장인물이 엄청나다. 그리고 그 많은
등장인물들 중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여러 명이다. 일단 주인공은 의대에 다니다 현재는 퇴마사 일을 하고 있는 '신진명'이라는 남자다. 의대에
다닐때 자신을 챙겨줬던 선배 김주열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찾아갔다 귀신과 관련된 무언가를 느끼게 돼 사건에 깊숙히 개입하게 된다. 그
김주열의 아내이자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금주', 그리고 그의 딸 '세연'. 그리고 신진명을 취재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알고 싶어하는
'박혜인'이라는 방송국 여자PD. 이 정도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박혜인 피디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캐릭터로 주인공으로 치부하기는
어렵지만, 그녀가 가끔씩 저지르는 상황들로 인해 이야기가 급 전개 되므로 중요한 사람들 속에 집어 넣었다.
<무녀굴>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금주'의 주변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진명'이다." 쯤이려나.
사실 이야기의 시작은 '금주'가 아니다. 제주도 사굴
탐험을 하러 떠난 자전거 동호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금주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된다. 자전거 동호회의 이야기는 그렇게 오프닝으로만
쓰이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초반에 다시 살아나 굉장히 많은 떡밥을 던져 준 채 퇴장한다. 그리고 온전히 금주에게로 사건이 옮겨간다. 그 전까지는
2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거기에 신진명의 시점까지 3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차다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죽을 때 듣는 방울소리, 하얀 소복을 입고 곱게 쪽을 진 머리를 가진 귀신을 본다는 것으로(물론 독자들만 아는 사실이다만) 그
귀신이 무당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살짝의 힌트만을 던져준 채 사건들만을 좇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 동호회 사건이 마무리될 쯤 그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여 끝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하면서부터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만큼 박진감이 넘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라고 할 수 있는 그 부분들의 좀 루즈한 느낌을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속도가 붙어 굉장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초반에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그 부분들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들 또한 놓칠 수 없는 것이 뒷쪽에서 앞의 이야기들을 가끔씩 소환하기 때문인데, 그러니 잘 봐두는 걸로.
중요하겠지, 생각하고 적어뒀던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었다. 그런데 끝으로 치달을 수록 예상을 뛰어넘기도 하고 예상대로 진행되기도 하면서 전혀
새로운 국면을 자꾸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이 이 책의 굉장한 묘미다.
여긴 그저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 그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했다. 어떻게 보면 상상이란 마치 병원균처럼 전염성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최초의 누군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다른 누군가에게 입으로
전달되고, 다시 그것이 상상이라는 과정을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상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다 보면 그것은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거치게 되고, 다시 몇 세대를 거쳐 후대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다.
초반에 이렇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혼동하지 말자!를
외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페이크다. 오히려 이런 것들로 인해 작가는 '실제와 만들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구별할래?'라고 독자에게 묻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해결이 된 듯 해결이 되지 않은 듯한 묘한 뒷끝을 남기는 것 또한, 당신이 금주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는 듯
느껴졌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고 싶어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그녀만큼 불쌍한 영혼은 이 책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한바탕 일이 끝났는데도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고통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어서 일테다. 하지만 힌두교 경전의 말을 마지막으로 끝맺는 책은, 왜인지 이게 끝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다.
종말은 없다. 영혼에는 출생도 죽음도
없다.
한번 생겨난 존재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태어나지도 않고 영원하며, 항상
존재하며
죽지 않는 태고의
존재다.
ㅡ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
중에서
당신은 감당할 수 있겠는가, 피할 수 없는 그 운명의
저주를..
덧)
전해내려오는 설화와 공포를 잘 접목시켜 굉장한 소설을
써낸 신진오 작가는 <무녀굴>이 첫 작품이라고 하니 앞으로 더욱 기대를 해 봐도 좋을 듯 하다. 거기다 이번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퇴마: 무녀굴>은 원작과는 조금의 차이점이 있는 듯 한데, 내가 충격적으로 봤던 부분들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됐는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볼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