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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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을 벗삼아 그속에서 소박한 삶을 꾸려가는 인생을 동경하고 한번쯤 꿈꾸어 본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가도 보고, 가을에는 황금들녘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며 겨울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집안에서 눈이 소복히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그런 삶이란 상상만해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그러나 이런 삶을 우리는 상상만할 뿐, 선뜻 그 꿈의 생활을 현실로 만들지는 못한다. 산좋고 물좋은 건강한 자연의 삶이란 결국 이 편리한 현대문명과는 거리를 두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공기가 주는 상쾌함 대신 매연의 탁한 냄새를 기꺼이 선택하여 주어진 댓가로 이 편리한 문명을 이용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과연 지금 당장 읽고 쓰고 있는 이 인터넷 환경조차 포기해야할지도 모를 곳에 선뜻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문명의 혜택과 자연을 벗 삶아 사는 자신의 꿈을 기꺼이 맞바꾸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이하영씨 같은 사람들이 그런 쪽에 속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오랜 꿈이였던 전원생활을 위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명도시 서울의 삶을 포기한 당찬 여인네의 모습은 참 신선하고 독특했다. 보통 전원생활을 위해 도시에서 시골로 향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하거나 아이가 없어서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들 보통인데, 이하영씨는 오히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무려 세쌍둥이인 아이들을 데리고 전원생활을 선택했다는 점이 내눈에는 참 특이해 보였다. 하긴, 이하영씨의 삶에서 특이하다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기준역시 자신의 꿈을 위해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의 시선에서 내려진 판단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엿본 산좋고 물좋고 아름다운 산골의 삶은 우리의 예상대로 소박하고 담백했다. 자연을 벗삼아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곰배령 사람들은 자연에서 나는 것들을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고 이용하며 자신들의 소소한 삶을 꾸려나갔다. 자연에게 한없이 일방적으로 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얻는 만큼 자연을 보살피며, 자신들의 고마운 마음을 되돌려 주는 그들의 소박한 마음은 읽는 이의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깊고 깊은 산속에 사니 부족한 것도 많고 아쉬운것도 한두개가 아닐테지만 자연을 벗삼아 사는 이들에겐 그런 것들은 아쉬워 보이지 않았다. 현대인들이 좋아라 마시는 커피대신 구수하고 몸에 좋은 차를 마시면 되고, 시장에서 파는 과일대신 산에서 직접 채취한 과실을 먹으면 되니 몸에도 좋고 정신도 얼마나 맑고 상쾌해지겠는가? 곰배령의 그들이 참 부러웠고, 이곳의 삶을 놓지도 못하며 그들을 부러워하기만 하는 내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보통 책을 처음보면 책의 제목과 표지에 적힌 책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읽으며 머릿속에 책의 내용을 한번 그려본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책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난다. 그 기대감이란 책에 대한 선입견의 다른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머릿말을 읽으며 이 책에 대해 기대한 내용이 있었다. 자연의 곁에 사는 소박한 삶의 대한 일상사와 에피소드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그것이였다. 그리고 머릿말은 그런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자연에 대한 예찬과 저자자신이 자연을 받아들이는 삶에 대해 눈을 뜨게되며 경험하게 된 이야기들이 주로 적혀 있었다. 물론 자신의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큼 존재하지 못했다.  

저자가 국문과를 나왔기 때문일까? 평범한 사람의 경험담이라는 소박한 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책의 문체는 픙경과 내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 내용들이 이미지로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단어들이 유기성을 가지지 못하고 반복되는 문장과 단어들이 혼재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연과 벗삼아 사는 삶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저자의 의도가 그녀의 소박하지 못한 문체에 가려 어정쩡하게 느껴졌다. 사실 아무리 아름답고 탄탄한 문장이라도 문장안에서 묘사하고자 의도한 대상이 무엇인지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글에 대한 몰입도와 이해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자는 그녀가 사는 곳에서 나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설익은 묘사와 반복되는 꾸며진 문체로 서술하며 독자의 이해를 방해했다.  

솔직히 말해서 책속에 나오는 그녀가 말하는 식물들의 삼분에일조차도 알지 못하는 나로써는 참 안타까운 일이였다. 물론 그 이야기에 등장한 식물들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는 노력을 하면 쉽게 이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독자들은 그렇게까지 부지런하지 못하다. 그리고 독자들은 작가의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이미지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지 인터넷을 통해 이해하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책에 중간중간에 들어간 아이들에 대한 삽화와 사진 대신 꽃에 대한 사진과 설명 삽화들을 넣었다면 독자들의 이해도는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런저런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 아쉬움 이상으로 이 책을 통해 현재의 내 빡빡하고 번잡한 삶을 한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가난하고 삶이 질곡할수록 자신의 것을 하나라도 더 타인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순간에는 내 가슴도 따뜻해졌다. 그러다 문득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문명과 멀고 먼 곳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더 넉넉해지고 더 따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문명의 때가 사람에게 끼지 않으니 사람의 선하고 푸근한 본질이 그대도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소박한 사람들의 정이 살아있고 자연이 그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며 가슴에 꽃비가 내리게 해주는 그 곳, 곰배령에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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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망, 너무 사양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마망 너무 사양해 -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꼬마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한마디
이화열이 쓰고 현비와 함께 그리다 / 궁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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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두편의 에세이 책을 손에 들고 어떤 것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던 중, 5월의 파란 하늘 같은 표지색에 이끌려 마망 너무 사양해를 읽기로 결정했다. 파란 두꺼운 도화지 느낌의 책 표지에 하얀색의 띠지로 감싸진 그다지 가볍지 않은 두께의 책에게 끌렸던 것은, 하얀 띠지 위에 그려진 서툰 느낌의 아이들 일러스트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결정은 썩 훌륭한 것이여서, 이 책 덕분에 무료한 일요일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사는 한국인 엄마와 프랑스인 아빠,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에 살아가는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했다. 세심하고 부지런한 엄마와 느긋하며 배려심 깊은 아빠, 그리고 단호하지만 마음 따스한 딸 단비, 언제나 행복으로 반짝거리는 아들 현비의 이야기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나의 친한 친구 이야기처럼 따스하고 편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른 두나라의 문화가 한데 섞여서 살고 있는 이 독특한 가정의사랑스러운 두 아이들 에피소드에서 그들의 색다른 발상에 몇번이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나도 어릴 때 단비와 현비 같은 모습과 생각으로 삶을 살았던 것일까. 문득 궁금하여 어머니께 여쭈어 보니 어머니께서는 웃으시며 모든 아이들은 다 그렇다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해 주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와 동생들의 어릴적 모습을 곰곰히 되짚어보니 나 역시 단비와 현비 같은 색다른 발상을 지녔던 시절의 에피소드들이 기억났다. 덕분에 그 에피소드들과 더불이 재미있게 이 책을 완독한 후 책의 여운을 마음으로 느끼고 내 어린시절을 머리로 더듬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 결심한 것이 한가지 있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내 자식들을 키우지 않을꺼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릴 때 이런 결심을 하지 않을까 싶지만, 어쨋던지 간에 이런 결심을 하던 무렵의 나는 우리 부모님이 너무 엄격하고 자식들에게 인색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다시 그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하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나 역시 그런 팍팍한 어른이 되었다며 화를 낼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그 엄격함과 물질에서만은 절제된 인색함이라는 교육철학이 있었기에 내가 이렇게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릴 때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자리에 세상이치를 깨달아 채우는 과정이 아닐까.  

소소한 에피소드지만 마음에 울림을 주는 담백한 파리지앵 가족의 이야기에서 나는 우리에 삶의 태도가 조금은 여유로워지면 어떨까 하는 메세지를 읽었다. 물론 이 책은 프랑스에서 사는 우리와는 조금 먼곳의 사람들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의 배경이 프랑스라고 해서 그들의 삶이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사람사는 모습은 프랑스나 아프리카라고 다르지 않으니까. 이 책은 그저 같은 삶을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지만 보다 더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고 삶에 한가지 교훈을 던져줬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고 보니 나 역시 조금은 파리지앵처럼 소소한 삶에 행복을 느끼는 태도를 갖게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책 덕분에 미소를 지으며 이 책을 덮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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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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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책을 처음 손에 집는 순간, 책이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책의 장르나 재질, 두께 여부와 상관없이 이 책이 내책이라는 느낌이 손안에서 맴돌게 되면 나는 어느새 읽지도 않은 그 책에 매료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첫 만남을 한 책들은 결코 단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적이 없었다. 그 책들은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고 나는 그 이야기들에 흠뻑 취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느낌의 책은 좀체 만나기가 쉽지 않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기분이 이런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이 책을 손에 집는 순간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런 내 느낌은 적중했다.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의 화자는 40대 중후반의 남성이다. 그는 몇년전 아내와 사별하고 "제3의 작가"라는 명칭으로 대필업을 하며 살아간다. 홀아비로써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그래서 그에겐 아내가 죽은 이후 어느날 부터인가 보이는 죽은 사람들의 모습도 그에겐 타인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몸은 살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아내와 함께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가지만 작가라 할 수 없는 직업, 살아있지만 산 것이 아닌 삶. 이런 경계에 사는 남자에게 죽은 자가 보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 같이 느껴졌다.  

남자는 시종일관 자신의 일상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오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추억하기도 하고 회환에 젖어들기도 한다. 이런 그의 기억들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이어지는  담백한 문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처음에는 그저 너무 평범할뿐인 일상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왜 손에서 놓지 못하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이 책을 처음 본 순간에 느낀 그 기분 때문에 잡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무엇이 내 마음을 이 책으로 자꾸만 잡아 당겼다. 책의 반을 읽은 시점에서야 문득 그것이 화자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누군가를 충분히 사랑했다면 외롭다는 이 서글픈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 사랑에 대한 결과가 내가 원했던 것과는 비록 다를지언정 나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리고 그 감정에 충실하여 내 모든것을 재도 남지 않을 만큼 다 태워버렸으므로 나는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후회와 미련이 그 자리에 쌓여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어버린다. 시간은 가고 다른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자꾸만 지나온 그 자리로 되돌아가 과거를 회상하며 홀로 우두커니 그 감정들을 곱씹게 된다. 그래서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감정은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화자가 그랬듯이,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과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에 "천사의 게임"이 생각났다. 죽은자와 산자의 담담하지만 가슴 뭉클한 감정의 교환, 그리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가 이 두 책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일으겼다. 그래서 이 책들을 문학이라는 커다란 종이 위에 포지셔닝 한다면 아마도 아홉번째 집 두번째 계단의 자리는 철도원과 천사의 게임에 중간쯤이 될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성과 독특한 발상이라는 두가지 장르를 동시에 취합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지만 특별하게 보여준 이 책의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작품으로도 임영태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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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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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잊혀지는 것들이 있는 반면 더 소중하게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잊혀져가든 소중하게 간직되든 이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는 지나간 그것들에 대해 그리워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비록 옷에서 떨어진 단추나 입가에 묻어 있던 여름날의 아이스크림에 대한 기억과 흔적들처럼 소소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 각각의 것들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그것들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이 책은 이런 소소한 일상에 기억과 그 향수를 사진과 글로 추억한다. 

세상은 점점 빠르고 편리하게 변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편리함은 다른한편으로 인간을 고립되게 만들었고 따스한 감성의 결핍을 가져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만 과거의 기억과 그것에 연계된 물건들에서 따스함을 찾고자 한다. 아직은 감성이 남아있던 아날로그 시절의 물건들은 우리에게 큰 마음의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변화가 이 책과 같은 에세이집을 탄생하게 만들 어 준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렇게 사진과 간단한 글이 곁들여진 감각적인 에세이집은 처음이라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소화해야 할지 몰라 처음엔 조금 난감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마치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기분이였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나자 이 책의 구성과 감성을 이해하고 음미하게 되었다. 이 책은 두시간이면 쉽게 뚝딱 읽어볼 수 있는 양이였기에 후루룩 쉽게 넘겨보았지만 완독 후에는 조금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었더라면 또다른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은 아쉬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아날로그를 그리워하고 그 시절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아직은 모든것이 불편했지만 사람간의 정이 넘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는 그 기억들을 꺼내어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스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의 여행을 작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난했지만 평범했던 내 아날로그 시절 일상의 감성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이 책을 온전한 에세이집이라고만 표현히기엔 약간 부족해 보인다. 그것은 작가의 본업이 사진작가라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사진집으로써 아날로그에 대해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보통의 에세이집보다 조금 더 감각적이고 감성적이다. 또 중간중간 존재하는 작가자신의 간단한 사물 스케치 역시 이 책의 감성적인 요소를 더해준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에 비해 이 책의 다른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텍스트 부분의 힘이 많이 모자라 보였다. 작가 자신의 과거 경험과 기억에서 오는 소소함을 풀어낸 그 텍스트들은 너무 평범해서 어딘가의 블로그에서 스쳐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에세이집을 읽으며 내 현재와 과거를 더듬어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같다. 아마도 이런 오늘의 나를 미래에 어느시점에서 문득 기억하며 그리워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오늘을 더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과거의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리움보다는 미소로 아날로그의 향수를 꺼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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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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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마치 첫사랑같은 풋풋함과 그리움, 그리고 포근함을 가진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혹은 만개한 벛꽃들 때문에 핑크빛으로 가득찬 느낌을 주는 것도 같다. 그래서 흐드러지게 만개한 벛꽃과 따스한 봄바람 같은 4월의 이미지는 사랑의 시작이 주는 설레임과 맞아 떨어지는 오묘함을 갖고 있다. 이런연유로 이 책의 제목을 처음봤을 때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첫사랑과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소박한 소망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속설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잃었을 때 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접어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곱게 접어버리지 못하는 첫사랑은 영원히 기억 속을 떠돌며 때때로 심장을 차갑고 시린 기억으로 베어낸다. 그러면 그 기억 때문에 상처받은 심장을 부여잡고 또 울어버리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서인과 선우는 그 접어버리지 못한 첫사랑의 칼에 심장을 베이고 또 베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아픔을 치유해 줄 사랑을 갈망하며 그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아무도 그들의 아픈 기억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지 못한다. 사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은 그들 자신이였다. 마침내 둘은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게 된다. 너무나 운명같다고 믿었던 사랑이라 그 사랑이 그들의 심장을 베어대던 그 기억과 닿아 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서로에게 빠져든다.  

결국 사랑이 치유해 줄거라 믿었던 심장의 상처가 오히려 사랑으로 더 고통스러워져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 그 상처로 인해 묻어버린 과거를 더듬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에 발을 딛게 되는 순간 오랫동안 꼭꼭 감추어두기만 했던 기억의 비밀이 깨어진다. 이제 그들의 사랑은 달콤하기만 했던 핑크빛 솜사탕에 4월이 아니라 뒷맛에 진한 씁쓸한 맛을 남기는 커피같은 가을의 기억과 서늘한 바람의 눈물이 되어버린다. 그들이 찾았던 과거의 기억은 마치 연어가 무의식중에 태어난 곳을 찾아가 그들의 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과 같은 것이였기 때문에. 

이 책에서 운명이란 결국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과거에 아무리 스쳤다 하더라도 서로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만나고 스쳐본들 소용이 없다고. 결국 사랑이란, 혹은 운명이란 기억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아픔과 그 아픔에서 오는 외로움을 공통적으로 지녔기에 서인과 선우가 운명이라는 이름의 사랑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이라. 비록 그것이 과거에 기억을 다시 현재로 가져온 것이라고 하여도 말이다.  

이런 사랑이야기의 한국문학은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간 읽었던 외국소설들과는 색다른 맛에 흠뻑 취해 금새 읽어내려 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책의 제일 뒷편에 존재하는 작가의 말을 읽고 조금 놀라게 되었다. 우선 권지예라는 작가의 데뷔작이 아니라는 것에 놀랐고 꽤 오랜시간에 걸쳐 쓰여진 책이라는 것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꽤 화려한 수상이력과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 활동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글솜씨는 이제 갓 데뷔한 작가의 작품과 그다지 차이가 난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긴 시간동안 공들여 쓰여진 작품이라기엔 여러모로 설익은 부분이 많이 존재하기도 했다.  

처음 이 책의 첫 챕터를 읽고 이 책이 단편집 모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첫번째 챕터와 두번째 챕터의 연계성이 모자라 보였다. 그래서 세번째 챕터를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모두 한편의 소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완독한 지금까지도 왜 그 첫번째 챕터가 존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비록 책의 분량이 짧아진다 한들 그런 연계성 없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는 편이 좀 더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첫번째 챕터 외에도 서인과 친구 혜경의 너무나 가벼운 대화와 표현들 역시 이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데 한 몫을 했다. 선우와 깊은 관계가 되기전의 아픔없고 평범하기만 했던 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의 대화가 참으로 가벼워 눈에 거슬렸다. 굳이 영어표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 영어표현을 사용했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연계성 없는 대화들이 반복되다보니 작가의 어설프고 가벼운 글솜씨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래서 이 책에 섞인 여러가지 장르들이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혼탁하게 느껴졌다. 만약 선우의 사진처럼 밝음과 어둠이 보랏빛으로 은근하게 섞이듯이 책안의 요소들이 서로 어우러졌다면 이 책의 재미가 배가 되었을 텐데 그저 아쉬운 마음만 들었다.  

또 한가지 눈에 거슬린 점은 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와 표현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오리널리티라는 건 별로 없어 보인다. 대부분 어디선가 한번은 본듯한 느낌의 익숙한 표현과 에피소드들이 반복된다. 특히 혜경의 사랑이야기가 그 익숙한 이야기들의 정점에 서 있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부분을 읽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수가 없었다. 몇년전부터 인터넷을 떠돌던 이야기를 그대로 이 책의 에피소드로 무려 두페이지나 차용했기 때문이다. 고작 기존의 닳고 닳은 인터넷 이야기를 읽기 위해 독자들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뼈를 깍는 고통으로 만들어낸 보다 참신한 표현과 새로운 이야기를 읽고자 책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독자들의 소망이자 작가의 소명의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쉽게 에피소드를 차용해 이야기를 엮어내다니. 독자로써 무시당한 기분에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4월의 물고기란 만우절날 어리숙한 사람을 놀리는 프랑스적 표현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분명 기존의 내 독서취향에서 벗어나 이 이야기를 색다르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들 때문에 놀림받았다는 생각도 살짝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림 받았으면 어떠하랴. 만우절 그날만은 우리모두 바보가 되어 놀림받고 놀려주어도 재미있고 왠지 모르게 뿌듯한 그런 기분이 드는 날 인것을. 왠지 달콤쌉싸름한 이 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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