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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책을 처음 손에 집는 순간, 책이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책의 장르나 재질, 두께 여부와 상관없이 이 책이 내책이라는 느낌이 손안에서 맴돌게 되면 나는 어느새 읽지도 않은 그 책에 매료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첫 만남을 한 책들은 결코 단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적이 없었다. 그 책들은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고 나는 그 이야기들에 흠뻑 취해 버린다. 하지만 이런 느낌의 책은 좀체 만나기가 쉽지 않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기분이 이런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이 책을 손에 집는 순간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런 내 느낌은 적중했다.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의 화자는 40대 중후반의 남성이다. 그는 몇년전 아내와 사별하고 "제3의 작가"라는 명칭으로 대필업을 하며 살아간다. 홀아비로써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그래서 그에겐 아내가 죽은 이후 어느날 부터인가 보이는 죽은 사람들의 모습도 그에겐 타인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몸은 살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아내와 함께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가지만 작가라 할 수 없는 직업, 살아있지만 산 것이 아닌 삶. 이런 경계에 사는 남자에게 죽은 자가 보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 같이 느껴졌다.  

남자는 시종일관 자신의 일상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오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추억하기도 하고 회환에 젖어들기도 한다. 이런 그의 기억들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이어지는  담백한 문체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처음에는 그저 너무 평범할뿐인 일상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왜 손에서 놓지 못하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이 책을 처음 본 순간에 느낀 그 기분 때문에 잡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무엇이 내 마음을 이 책으로 자꾸만 잡아 당겼다. 책의 반을 읽은 시점에서야 문득 그것이 화자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누군가를 충분히 사랑했다면 외롭다는 이 서글픈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 사랑에 대한 결과가 내가 원했던 것과는 비록 다를지언정 나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리고 그 감정에 충실하여 내 모든것을 재도 남지 않을 만큼 다 태워버렸으므로 나는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후회와 미련이 그 자리에 쌓여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어버린다. 시간은 가고 다른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자꾸만 지나온 그 자리로 되돌아가 과거를 회상하며 홀로 우두커니 그 감정들을 곱씹게 된다. 그래서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감정은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화자가 그랬듯이,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문득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과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에 "천사의 게임"이 생각났다. 죽은자와 산자의 담담하지만 가슴 뭉클한 감정의 교환, 그리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가 이 두 책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 일으겼다. 그래서 이 책들을 문학이라는 커다란 종이 위에 포지셔닝 한다면 아마도 아홉번째 집 두번째 계단의 자리는 철도원과 천사의 게임에 중간쯤이 될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성과 독특한 발상이라는 두가지 장르를 동시에 취합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지만 특별하게 보여준 이 책의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다른 작품으로도 임영태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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