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에 갓 들어왔을 때, 여성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참으로 무식했다. '군대 안가는 여자가 뭐가 불평등하냐?'는 논리만 피력하다가 선배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선배들의 비판은 쓴 약이었다.



쓴 약 중에 지금도 약발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니가 여자를 알아?"라는 물음과 함께 주어진 책 한권이다.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이라는 <이갈리아의 딸들>이 그것이다.




이 책은 매년 3월 8일 즈음 언론에서 단골로 소개된다. 올해도 그랬다. 여성의 날 행사를 소개하는 몇몇 신문이 잠깐 이런 책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어찌 '여성의 날'에만 이 책이 소개되어야 하는지. <이갈리아의 딸들>은 1년 내내 소개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극단적이다. 남성과 여성이 뒤바뀐 세계가 이갈리아다. 남성(맨움)과 여성(움)이 현실과 동일하게 등장하는데 하는 일과 역할이 극단적으로 바뀐 세계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라고 외친다면 이갈리아에서는 "하느님, 어머니!"라고 외친다고 보면 된다. 또한 현실에서 여성이 미모를 가꾸는 대신 이갈리아에서는 남성이 미모를 가꾸고, 남성이 정부 요직을 차지한 대신에 여성이 정부 요직을 차지한다. 그리고 성폭행의 주요 피해자로 남성이 등장하는 사회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글 솜씨는 뛰어나다. 그래서인지 <이갈리아의 딸들>의 도입부를 읽을 때는 재밌다거나 유쾌하다는 평이 많다. 남성들이 읽어도 그렇다. 주인공 페트로니우스가 무도회에 가서 여성들에게 선택받기를 갈망하는 장면이나 여성만 할 수 있는 잠수부가 되고 싶다고 고백할 때는 유쾌한 코미디를 보듯, 살며시 웃음을 짓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다. 서서히 페트로니우스가 여성들에게 차별받고 그로 인해 자신의 희망이 꺾일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마냥 웃고 있을 수는 없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사회생활이 금지 당하는 마당에 이를 어찌 웃으며 지켜보겠는가?




술 취한 여성들에게 희롱당하는 페트로니우스의 모습과 그가 받은 충격, 피임 걱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의 남성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남자로 태어난 게 다행이구나.'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남성과 여성이 뒤바뀐 세상에서 페트로니우스가 평등을 얻기 위해 맨움해방운동을 시작하는 과정은 이갈리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낯설지 않다. 그러한 풍경은 최근 우리가 접하는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역지사지'를 실현케 해주려는 것이 아닐런지. 페미니즘을 다룬 책은 많고 또한 논쟁을 일으키는 책도 많다. 그러나 많은 책들이 범하는 오류는 자신의 입장에서 전달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갈리아의 딸들>은 훌륭하고 특히 남성들이 읽어봐야 할 책이다. 어렵고 민감한 주제를 이처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책도 없다. 독자는 이갈리아를 방문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게 되리라.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평등이 왜 필요한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기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은 글보다 말에 더 가까운 것이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글쓰기는 유혹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中>

사람들은 문학상 수상자에게는 ‘문장’에 대해 물어보지만 대중소설가에는 물어보지 않는다. 또한 문학상 수상가의 글은 예술이라고 말하지만 대중소설가의 글은 홀대한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내용이 영화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지라도 기본적인 문장, 글쓰기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다.

그것이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간에 현실이 그렇다. 몇 번이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대중 작가보다도 한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등단한 작가에게 글쓰기에 대해 물어보는 것, 그것이 현실이다.

스티븐 킹도 그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내놓기 전에 꽤나 고심했다. 그것은 작품 곳곳에서도 보이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는 글쓰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였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그는 창작을 하게 된 과정, 창작의 방법 등을 이 책에 담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하고 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는 이미 이론화 되어 있는 기존의 창작론 같은 고상한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처음부터 “내가 무슨 문단의 허풍쟁이나 고상한 체하는 얼간이처럼 취급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대신에 직접적인 지도가르침을 기대해야 한다. 한동안 유행했던 ‘빨간펜’선생님처럼 다가온 스티븐 킹은 조심스러워하지도 않고, 추상적으로도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우를 설명하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모르겠으면 나처럼 해보라’는, 다소 건방져 보이지만 그 동안 사람들이 갈망했던 가르침이기도 하다.

“가장 흔한 잘못은 상투적인 직유나 은유나 이미지 따위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내달렸다, 그녀는 ‘꽃처럼’ 예뻤다, 그 사람은 ‘유망주’였다. 밥은 ‘호랑이처럼’ 싸웠다… 이렇게 케케묵은 표현으로 내 시간을 빼앗지 말라. 이런 표현을 쓰는 작가는 다만 게으르거나 무식해 보일 뿐이다.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작가로서의 평판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유혹하는 글쓰기 中>

“사실적이고 공감을 주는 대화문을 쓰려면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한다. 망치로 엄지를 내리쳤을 때 사람들이 내뱉는 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점잖은 체면 때문에 ‘이런 제기랄!’대신 ‘어머나 아파라!’라고 쓴다면 그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의 약속을 어기는 짓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中>

<유혹하는 글쓰기>는 솔직하다. 어떤 작품이 왜 실패했는지를 언급하는가 하면 성공한 비결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가 하면 속된 표현으로 ‘망하는’ 작품의 지름길이 무엇인지도 이야기해준다.

더불어 흥미로운 글을 쓰는 것으로 소문난 스티븐 킹인 만큼 어려운 것에 대한 설명이 소설을 읽는 것처럼 쉽다는 것과 글쓰기에 대해서 격려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유혹하는 글쓰기>의 매력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글쓰기에 대한 스티븐 킹의 창작 이야기 <유혹하는 글쓰기>가 왕도로 이르는 길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많은 책들이 아는 체 했지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창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유혹하는 글쓰기>는 대담하게 알려주고 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거야?’라는 의문을 품고 산다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러면 최소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학의 거목 박완서의 신작 <그 남자네 집>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소설 속 화자를 작가 자신으로 볼 수 있는 것이나 작가의 체험이 짙게 묻어났다는 사실 등은 실상 이 작품을 박완서가 ‘걸어온 삶의 길’로 한 조각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그 남자네 집>은 화자가 돈암동으로 이사 간 후배네 집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과거의 기억을 아주 어렴풋이 간직하고 있는 현재의 돈암동에 방문한 화자는 젊은 날 자신을 ‘구슬 같은 여인’으로 만들었던 첫사랑의 주인공이 있던 그 남자네 집을 기억해낸 것이다. 


작품은 이때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한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되는 상황, 이념을 따르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냉전시대의 한복판에서 화자는 ‘연애’를 한다. 첫사랑과의 연애, 그 남자와의 연애가 그것으로 전쟁의 기운이 가득한 세상에서 시를 찾고 음악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나를 구슬 같다고 했다. 애인한테보다는 막내 여동생한테나 어울릴 찬사였다. 성에 차지 않았지만 나도 곧 그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슬 같은 눈동자, 구슬 같은 눈물, 구슬 같은 이슬, 구슬 같은 물결…… 어디다 그걸 붙여도 그 말은 빛났다. 그해 겨울은 내 생애의 구슬 같은 겨울이었다.” <그 남자네 집 中> 


하지만 화자에게 전시상황마저 잊게 만드는 그 구슬 같은 시절은 환상으로만 끝나게 된다. 멀쩡한 상이군인이자 백수인 그 남자는 첫사랑으로 존재할 뿐, 남편이 되는 것은 현실 감각이 투철한 은행원 민호라는 인물이다. 결국 화자는 첫사랑에게 청첩장을 보여주고 은행원의 부인이 되어 낯선 집안의 새댁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 남자네 집’과의 인연의 끈을 끊지 못한 채 말이다. 


<그 남자네 집>은 첫사랑인 그 남자와의 추억이 작품의 진행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작가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단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세밀한 묘사 덕분에 새댁으로서 문화 차이와 살림하는 것을 실감해나가는 화자의 모습, 전시상황의 피폐함과 가족의 곤궁함을 어떻게든지 벗어나려고 시장과 길거리에서 발버둥치는 여성들의 삶을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림처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제왕처럼 제 입만 아는 남편과 영원토록 아들을 입맛으로 붙들어두려는 시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에 복잡한 비애를 느꼈다. 나의 비애는 패배감일 수도 있었고, 체념일 수도 있었다. 문득 시어머니가 길들여놓은 남편의 입맛은 그들 모자의 탯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나이에 아직도 탯줄을 못 끊은 남편이 경멸스러웠지만 내가 어찌 해볼 염두는 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아내이지 산파가 아니지 않는가.” <그 남자네 집 中> 


누군가의 표현처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는다는 나이를 훌쩍 넘은 작가는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펜을 놀리고 있다. 단순히 펜을 놀리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전성기적 모습을 연상케 할 만큼 작품에는 어느 것 하나 허술함이 없다. 세상 이치를 깨닫듯이 소설쓰기도 도를 깨우친 것처럼 보일 정도다. 


흔하디흔한 개인사를 넘어 시대사를 보여주면서도 애틋한 첫사랑의 이야기까지 보여주는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눈길 끄는 소설들이 범람하는 지금 구슬 같은 소설로서 독자들에게 소설 읽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죽이기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유향란 옮김 / 문이당 / 200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이면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비극적인가? 더군다나 그런 존재가 인간만큼이나 많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2003년 세계 환타지상 수상자인 조란 지브코비치의 <책 죽이기>는 비극적인 삶을 살던 ‘책’이 세상을 향해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생각지도 못한 녀석이 사람흉내를 내며 우리 곁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책이 사람 행세를 한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하지만 <책 죽이기>는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책을 여성으로 의인화시킨 <책 죽이기>는 저자의 기발한 소재만큼이나 내용 또한 기발하다. 또한 구성도 튼튼하여 단숨에 독자들의 시선을 빼앗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많이 데려가는 곳은 침대이다. 최소한 어울리는 장소이긴 하지만 침대에서의 기분을 말하라면 무시당하고 있는 마누라 같다는 게 딱 맞을 것이다. 피곤해 지친 무뚝뚝한 남편이 얼른 제 욕심만 채우고 마누라쟁이를 이내 싹 잊어버리는 꼴이다.(…)우리는 밤새 또는 다음 날까지도 활짝 펼쳐진 채 - 이 얼마나 채신머리없는 자세인가 - 읽던 자리에 내박쳐져 있어야 한다. 가랑이를 찢어져라 벌린 채 몇 시간씩 혹은 종일 버티고 있다고 상상해 봐라.”
...


“더 몹쓸 경우가 있으니 이름하여 세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책이 곧장 지옥으로 떨어지는 형국이다. 비록 얽매인 신세이기는 하지만 자존심 강한 우리에게는, 그것이 아무리 비싼 가격이라 해도 값이 매겨졌다는 그 자체가 상처이다. 출판업자들이 우리의 가치를 고작 이 정도 밖에 안친단 말이지?”<책 죽이기 中>

수난, 학살, 망신, 임신, 진통, 착상, 출산, 죽음 등 7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책 죽이기>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받는 여성의 삶에 책을 의인화시켜 진행하고 있다. 서론은 기발한 착상으로 경쾌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을 사창굴이라고 지적하거나 헌책방을 양로원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에서 허를 찔린 듯한 기분으로 웃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 죽이기>는 그저 웃자고 쓰여진 책이 아니다. 사소한 행위들, 이를테면 도서관 책을 찢거나 침을 묻히거나 과시욕으로 책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들부터 돈을 위해 책을 만드는 황금만능주의까지 조목조목 비판하는 것이 <책 죽이기>를 통해 책이 사람흉내를 내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기발함도 기발함이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책들의 항거와 비분강개 때문인지 제목은 ‘죽이기’이지만 실상은 책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를 상대하는 예의까지도 톡톡히 알려준다.

21세기의 오늘날 노골적으로 수난당하는 ‘책’들의 탄식과 하소연 그리고 분노를 담아낸 <책 죽이기>는 <동물농장>만큼이나 기발한 착상과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어렵지 않게 독자들을 붙잡고 있다. 더군다나 저자가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낮은 자세로 이야기하고 있기에 연령층이나 독서량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책 살리는 재미’를 톡톡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chaire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읽으면 좋은 책!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살다 보면 간혹, 지나치게 바쁘다 싶을 때가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업무량이 과중해지는 때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물론이고, 몸보다 마음이 앞서서 분주해지는 바람에, 다른 것들에는 정신의 눈을 들이대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때를 말하는 거다. 이런 때란 어쩌면 정신적 소진 상태,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의욕 상실 상태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 어떤 책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책, 아니 “읽게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은 아주 예전부터 읽고 싶던 책인데, 유치한 말장난과 쓸데없는 현학으로 뒤범벅되어 있을 것 같은 어떤 불길한 예감 때문에 미루고 미루었던 책이다. 이 책도 역시 지하철용으로 좋다. 한 사흘만 지하철로 출퇴근하면 너끈히 끝낼 수 있는 책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그런데 끝내고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진다. 유머러스할 뿐만 아니라 퍽 깊은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페터 빅셀의 독특한 글투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첫문장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가 작품 첫머리에 던져놓은 문장들, 예컨대 이런 것, “이젠 아무것도 더 할 일이 없는 남자가 있었다.” “발명가란 배워서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남자는 열차 시간표를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고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남자가 말했다.” 같은 문장을 읽고 어찌 그 다음 문장으로 눈을 굴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그의 독특한 말재주(심하게 말하면 말장난 같은 문체)는 이 책의 소제목만 봐도 얼른 눈치챌 수 있다. 사실, 나도 소제목에 끌려 이 책을 샀다.

단숨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메리카는 없다'라든가 '책상은 책상이다' 같은 작품은 웬만한 철학책 뺨치는 심오함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 책상은 왜 사과가 아니고 책상일까 하는 작가의 뜬금없는 질문, 그리고 콜럼버스가 실은 우리가 아는 만큼 위대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도발적 상상력에 나는 경의를 표하며 키득거렸다.

바쁜 와중에 정말 즐거운 책읽기였다. 이런 책읽기는 소소한 행복을 준다, 고 생각하며 나도 빅셀처럼 묻는다. 나는 왜 산더미같이 꽉 막힌 내 마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지내는가? 왜 하루살이로 사는 데만 급급한가? 가끔은 평범한 내 삶을 거꾸로 살아봐도 괜찮을 텐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