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chaire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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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살다 보면 간혹, 지나치게 바쁘다 싶을 때가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업무량이 과중해지는 때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물론이고, 몸보다 마음이 앞서서 분주해지는 바람에, 다른 것들에는 정신의 눈을 들이대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때를 말하는 거다. 이런 때란 어쩌면 정신적 소진 상태,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의욕 상실 상태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 어떤 책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책, 아니 “읽게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실은 아주 예전부터 읽고 싶던 책인데, 유치한 말장난과 쓸데없는 현학으로 뒤범벅되어 있을 것 같은 어떤 불길한 예감 때문에 미루고 미루었던 책이다. 이 책도 역시 지하철용으로 좋다. 한 사흘만 지하철로 출퇴근하면 너끈히 끝낼 수 있는 책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그런데 끝내고 보니, 다시 읽고 싶어진다. 유머러스할 뿐만 아니라 퍽 깊은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는 페터 빅셀의 독특한 글투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첫문장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가 작품 첫머리에 던져놓은 문장들, 예컨대 이런 것, “이젠 아무것도 더 할 일이 없는 남자가 있었다.” “발명가란 배워서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남자는 열차 시간표를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고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남자가 말했다.” 같은 문장을 읽고 어찌 그 다음 문장으로 눈을 굴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그의 독특한 말재주(심하게 말하면 말장난 같은 문체)는 이 책의 소제목만 봐도 얼른 눈치챌 수 있다. 사실, 나도 소제목에 끌려 이 책을 샀다.
단숨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메리카는 없다'라든가 '책상은 책상이다' 같은 작품은 웬만한 철학책 뺨치는 심오함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정말 책상은 왜 사과가 아니고 책상일까 하는 작가의 뜬금없는 질문, 그리고 콜럼버스가 실은 우리가 아는 만큼 위대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도발적 상상력에 나는 경의를 표하며 키득거렸다.
바쁜 와중에 정말 즐거운 책읽기였다. 이런 책읽기는 소소한 행복을 준다, 고 생각하며 나도 빅셀처럼 묻는다. 나는 왜 산더미같이 꽉 막힌 내 마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지내는가? 왜 하루살이로 사는 데만 급급한가? 가끔은 평범한 내 삶을 거꾸로 살아봐도 괜찮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