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음주모드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지난 금요일 밤에는 몇 개월만에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그것도 100% 나의 의지에 의하여 결정한 것이 아닌
조직(?)의 막강한 파워에 의한 약자의 낮은 포복으로 말이다.
그것도 술을 진탕 마시고....

제목은 " 브리짓 존슨의 일기2"
아, 이 여자 얼마전에 내한했었던 그 여자구나.
르네젤위거..이름이 왜 이렇게 형이상학적으로 어려운 거야.
그러고 보니 외국인들은 기억력이 좋아야 겠다.
그렇게 길고 어려운 이름들이 많으니
우리나라의 개똥이, 소똥이, 말똥이라는
간단 명료한 이름만 외우고 살던 나 같은 이의
단순한 뇌 구조로는 도저히 그들의 이름은 제 때에 기억 못한다.

하도 르네젤위거가 어쩌고, 브리짓존슨이 어쩌고 하며
매스컴에서 요란을 떨던 영화인지라
비록 음주 모드였지만 두 눈을 무릎뜨고 최대한 조목조목 볼려고 했다.(공짜였으니까)
그런데, 내가 아무리 술을 진탕 마셔서 화장실 표시를 헷갈렸다 해도 그렇지
술에 취해서 본 이 영화는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일행 중 누군가가(남자였다) 야한 씬이 나오니까 잘 봐야 한다고 미리 일러줬는데
밀려오는 수면욕때문에 결국 야한 씬이 나오기는 했는지 오리무중이다.

그나마 흐릿한 골목길의 가로등처럼 뜨문뜨문 기억하는 부분은
뚱뚱한 르네가 술에 취해 all by myself를 부르던 대목과(이 부분에서 잠이 퍼뜩 깼다),
할리우드 사창가에서 흑인과 원나잇을 흥정하던 휴 그랜트가
뚱뚱한 르네를 꼬시느라고 진땀을 빼는 장면뿐이다.

누군가 휴그랜트만 안나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며
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어렴풋이 들렸고
저렇게 뚱뚱한 푼수데기가 억지로 웃기는 이런 영화를 보는 일이 돈이 아깝고
그 돈으로 차라리 3차를 갈 걸 하며 아쉬워하는 소리도 기억난다.
그럼 내가 이 영화를 기억하는 부분은 정말 이것 뿐인가.
아쉬운 것인지, 그날 밤 동행한 누구의 말대로 차라리 잘 된 일인지
뚱뚱한 르네가 앞가슴이 깊게 파인 검정색 옷을 입고 나와
all by myself를 부르던 대목만
뇌속에 남아 있으니, 이 영화평을 어떻게 해야 하나.

형만한 아우 없고,
원조보다 나은 리메이크 없고
1편보다 재미있는 2편은 없다?
재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원체 떠오르는 것이 빈약하니
미국식 로맨틱 코메디와 영국식 로멘틱 코메디가 어떻게 다른건지
그 차이조차 그저 깜깜한 기억으로 남을
그날 밤의 음주영화관람은 이렇게 결론이 난다.

암만 영화래도 어쨌든 뚱뚱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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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용서



 

 



 

 

 

 

 

 

 

 

곡명 : Stamatis Spanoudakis - 'Absences'

깊이 사죄하오
당신을 떠나가서가 아니라
너무나 오래
곁에 있었던 것에 대해서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알렉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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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Shall We Dance



 

 

 

 

 

 

 

 

 

 

곡명 : The Pussycat Doll -Sway

나는 지금도 혼자 춤추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무용강습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고, 무용시간에 무용 선생님의 수업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었을 뿐이었지만 무용시간을 손꼽아 기다렸고 당시에 폴모리아 음반으로 처음 그 이름을 접했던 이사도라 던컨 흉내를 내며 그녀의 갸녀린 몸매와 불꽃 같았던 맨발의 춤을 기억해내곤 했다. 그렇게 춤을 좋아했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무용반에 들 수 없었던 가장 큰 난관은 키가 작다는 것이며 키가 작다 보니 율동이 주는 유연한 곡선의 실루엣도 볼품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학교 다닐때만 하더라도 뒷 자리에 앉을만큼 키가 컸던 나는 중1때부터 2년여간 병을 앓으면서 성장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고, 중3이 되자 번호 이동성은 앞번호로 훌쩍 당겨져 있었다. 덕분에 그토록 열망하던 무용반에 들어가지 못했고 죽어라 하기 싫었던 과학반에 반강제적으로 가입되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회식이 끝나고 난 후 2차로 몰려간 노래방에서 그동안 숨겨져 온 나의 춤끼(!!)를 적나라하게 공개한 일이 있었다. 그 전에는 노래방을 가는 2차에서 항상 도망쳐 오는 일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직원들과 나이트 한 번 가는 일이 있어도 자리에서 가방 지켜 주기나, 부킹 들어오는 남자들하고 재미나게 수다만 늘어 놓는 모습을 보여 주던 내가 그 날은 직원들에게 충격적인 변신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그 춤은 탬버린 춤이다. 노래방에 가면 서너개 정도는 비치된 탬버린은 흥을 북돋어 주기에 좋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손에 잡기에도 구조적으로 잘 만들어진 악기다. 탬버린 춤은 손바닥에 탁탁 쳐서 소리를 내는 기본적인 방식이 있지만 그런 기본만으로는 분위기를 주도할 수가 없다. 무언가 충격적이고 강렬한 자극을 주는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경악하며 뇌에 그 자극을 오래 저장 시켜 줄 수있다.

내가 보여준 탬버린 춤은 탬버린을 몸에 부딪쳐서 소리를 내는 탬버린과 몸의 충돌로 빚어지는 육탄 공세인 셈이다. 그러면 몸의 어느 부위에 부딪쳐야 하는가. 팔, 다리, 허벅지, 엉덩이, 머리, 발바닥 등을 리듬에 맞추어 탁탁 쳐 주면서 몸을 함께 흔들어 주는 기교적인 막춤이다. 술에 알딸딸하게 취한 직원들은 예상했던 대로 열광했고 여직원들은 그동안 조용하던 나의 평소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 경악을 하며 춤의 전수를 요청하기도 했으며 후문으로 들리던 소문에는 예전에 업소에서 알바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난무했다고도 하지만, 사실 그 날밤의 현란한 나의 탬버린 춤은 티브이에서 답습한 것이 고작이다.

그 이후로 노래방에 몰려가는 회식의 끝자리에서 두어번 더 육탄적이고 도발적인 나의 탬버린 춤쇼가 있었지만 의도하지 않은 춤은 흥도 나지 않고 몸만 피곤하게 만든다. 무엇이든지 마음이 정해져야 즐거운거지, 남들의 압박에 의한 보여주기는 당사자에게도 고역이 되는 일이고, 보는 이들도 왠지 미흡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수가 있다. 탬버린 춤 말고도 내가 보여준 춤쇼는 스카프나 넥타이를 이용한 조금은 야한 포즈를 연출하기도 하는 춤이었지만 지금은 전설의 춤이야기에 묻히고 말았다. 나의 춤이 전설의 이야기가 된 이유는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나이트에 단체로 우르르 몰려 가거나 노래방 가는 일에 참가하는 일이 없기 때문인데, 전설은 희소성과 신빙성과 과거성으로 뭉쳐져야 빛을 낸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본격적인 춤을 배워볼 요량으로 룸바, 차차차, 살사같은 고난이도의 춤을 한 번 배워보고 싶은 계획을 잡고 이 지방의 무용 학원 정보를 뒤진적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낙후된 문화시설과 배경을 지닌 이 지방의 열악한 문화환경은 한가한 아주머니들이나 아저씨들이 부킹에 목적을 두고 배우는 무슨무슨 무도학원 같은 곳이 달랑 한 군데 있었을 뿐이다. 춤바람난 그들이 낮시간에 열심히 배우는 사교춤은 밤시간이 되면 인근 카바레를 실습현장으로 삼고 있는데, 우리나라 중년들의 춤문화가 어긋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시장 바구니를 들고 나온 가정주부들이 대낮에 극장용 두꺼운 커텐이 드리워진 밀실의 무도회관에서 외간 남자와 끌어안고 춤을 추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려 혼찌검이 나는 웃지못한 일까지 다반사였고, 그들의 은어로 "촬영 나간다."는 한 마디 말로 춤추러 가는 저녁 시간은 몸단장에 치성을 들이고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남의 배우자와 은밀한 만남을 즐기는 재미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가정이 파괴되는 비극적인 결과까지 낳는 중년의 춤바람. 왜 우리는 근사하게 그 한순간만을 춤으로서 즐기지 못하고 이리 되는 것일까. 몸과 몸의 접촉의 유혹은 마약보다 강하다. 그래서 심약한 나는 이사도라처럼 혼자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경기도 안성에서 웃는 돌 무용단을 운영하는 홍신자 선생은 나이 서른이 다 되어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은 몸으로 춤을 시작했고, 공옥진 선생은 자신의 한을 풀어 보고자 꾸불꾸불 인생역정같은 끈적한 춤을 춘다. 차이코프스키같은 유명한 음악가와 원 없는 사랑을 나눈 이사도라도 맨발로 홀로 춤추기를 즐겼고, 북으로 간 최승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인기 속에서도 홀로 춤을 추며 자신의 외로움을 달랬다. 인류에게 주어진 언어에는 문자와 음악과 바디 랭귀지가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법문이 있다면 문자는 버리기 위하여 읽어야 하고, 음악은 듣고 정돈하기 위하여 들으며,춤은 왜 있는가. 살아서 생명이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보여주는 언어가 춤이라면 춤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언어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 내 몸은 돌 덩어리보다 더 딱딱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이 아닌가 싶어진다. 짐승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럽다. 아, 춤이나 한판 출까보다. 인생 거 뭐 별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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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임창정의 요리-파 송송 계란 탁

임창정이 나오는 영화는 재미는 있지만 연기력은 오버한다는 생각을 항상 지녀온 나. 그런데 이 영화는 방송사와 합작품이란다. 당연히 기존의 임창정과는 다르겠지 하는 약간의 주춤거리는 생각을 하며 봤다. 아이가 나오는 영화 앞에서는 무조건 일단 마음이 약해지는 나의 취약성 때문인지 이 영화의 소감은 한마디로 주제는 가볍지만 재미있고 임창정은 심각하지만 관객은 웃긴다. 이 페이퍼를 쓰려고 하다보니 몇 시간 전 마태우스님이 한 발짝 앞질러 일을 저질렀다. 이런....발빠른 양반 같으니 역시 테니스계의 발바리로 불리우는 호칭은 그냥 생긴게 아니었다. 마태우스님은 임창정을 평하기를 "임창정이 출연하는 영화라면 왠만하면 본다" 주의다. 나와 정반대의 임창정을 만나고 있었던 거. "임창정이 출연하는 영화라면 왠만하면 안본다." 라는 예전의 나는 왜 임창정을 멀리 했을까? 그가 경박하고 호들갑을 떠는 영화를 주로 찍은 이유겠지만 영화 속에서 너무 오버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게 임창정에게 잘못이 있는건 아니다. 그가 보여준 <남부군>에서의 어리버리하면서도 순진한 빨치산의 막둥이 역할을 너무 오래 기억하고 있는 탓일게다.

이 영화에서 임창정은 비록 짝퉁이지만 음반업계의 부흥을 위해 매진한다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항상 여자 꼬시기의 전략을 담고 사는 그. 어느 날 여자 꼬시기로 소일하는 그 앞에 갑자기 한 아이가 나타난다. 이름은 전인권(인권이 라이프를 외치던 록커와 동명이다)나이는 아홉살. 아홉살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아홉살 어린아이와 철없는 노총각(늙을 노가 아닌 NO총각)과의 아웅다웅 티격태격이야기다. 서정적인 내용은 애초에 기대 하지 않는다.

아닌 밤중에도 홍두깨격으로 여자 꼬시는 능력만 믿고 잘 나가는 임창정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아들의 등장은 임창정(극중 인물:대규)에게 경악과 충격 그자체다. 그러나 인권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좀 찔리는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청준생활에 종지부를 짝기 위하여 내 아이라고 인정하자니 여러가지가 억울해진다. 결국, 대규는 경찰서에 미아 찾기 신고도 하고, 거리에 버리고 도망도 치지만 번번이 아이는 대규에게 돌아 온다. 영화속에서 아이는 잘도 찾아 오더라는.

자신의 청춘을 최대한 여자들과 희희낙낙 구가하며 즐기고 살려는 대규는 아들을 버리는 비정하고 비열한 아버지이지만 반면에 자신을 어떻게든 떼 버리려는 아버지의 계략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괴롭히는 아들의 질긴 아빠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임창정은 26살의 총각으로 분하여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코믹 연기를 감추는 것 없이 발휘한다. 여전히 그는 방방뛰고 잔머리를 굴리면서 계속 당하는 모습이지만 그게 또 임창정의 컨셉이니 이 영화의 제목처럼 파 송송 썰어넣고 계란을 탁하고 깨뜨려 넣어 끓인 서민적이고 친숙한 라면맛 같은 임창정. 그를 줄기차게 쫓아 다니며 내가 당신의 아이임을 인정해 달라며 괴롭히는 아역의 이인성은 무려, 1500대의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새로운 아역 스타다. 이 영화에서 이인성은 노래 실력까지 발휘 하는데 너도나도 엔터테이너가 되려는 시대 풍조에 걸맞는 최연소 만능 엔터테이너의 새로운 탄생이 예고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나야말로 너무 오버하는건 아닐까.

윗 글을 장구하게 늘어 놓은 후의 한 마디 결론-재밌다. 그리고 웃긴다.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말 것. 그리고 남자들은 자신이 지나온 과거사속의 여인네와의 추억을 한 번쯤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아나. 어느 날 "아빠~"하며 찾아 와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가 있을지...걀걀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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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제니와 주노 15세 임신이라구?

어제 퇴근을 하면서 우울한 기분을 떨쳐 보려고 오랜만에 비디오 대여점엘 갔다. 주말이니 당연히 볼만한 건 벌써 외출중일텐데....들어가서 신작과 구작을 얼씬거리자니 주인 아주머니는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 일본 영화를 한 편 골라준다. 중년의 사랑이 어쩌고 하는것 같은데, 아니, 내가 그렇게 시들한 중년처럼 보였던가? 말도 안돼!! 요새 일에 치이고 질질끄는 감기때문에 팔딱팔딱 뛰는 모습을 잃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날 그렇게 기운없는, 재미없는 고객으로 본다는 건 기분이 상할 일. 그래서 약이 올라 5백원짜리 할인코너에 가서 일부러 기웃거리는 시늉을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권하던 일본 영화를 침이 튀도록 말하다가 말고 내가 방향을 전환하자 이내 시큰둥한다. 오백원짜리 코너에도 잘만하면 건질만한 영화가 간혹 있다. 그곳에서 만났던 영화로는 '그랑블루', '더티 댄싱', '라스트 모힌칸', '양철북'등이 있었다. 운좋게 만난 기억이 있던 나는 어제도 오백원짜리 할인코너를 기웃거리며 쓸만한 녀석을 한 놈 낚아챌 요량으로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했다. 바로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바로 옆의 신작 코너에 다섯개가 쭈욱 나열된 '제니와 주노'

아하, 이게 요즘 애들의 때이른 사랑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란 말이지? 근데, 15세 관람가다. 15세라, 그렇다면 중학교 이상의 연령이 되어야만 볼 수있다는 얘기인데 초등학교 애들이 봐서는 안될 장면이 나오나? 우리 사무실에 스물 다섯살의 막둥이가 이 영활 얘기해 준것이 기억난다. 아무렴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막둥이의 대화는 당연히 소통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면 깜찍한 이 영활 보고 나도 스물다섯살의 그녀와 한 번 소통을 해보자. 그런데 <어린 신부>의 김호준 감독이다. 에이, <어린 신부> 별로였는데....잠시 갈등을 하다가 오백원짜리 할인코너에서 별 반 소득을 얻지 못해 결국 낙찰된 <제니와 주노>를 가방에 집어 넣고 나오다.



비슷한 나이 또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성춘향과 이몽룡 커플을 현대의 이 어린 연인들과 비교하는 일은 좀 무리가 있다 싶은게 내 결론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간의 오랜 반목과 권력 쟁탈전이. 춘향전의 경우에는 변학도라는 못된 라이벌과 부패관리의 폭정이 있었다면 '제니와 주노'속의 커플에는 뜻하지 않게 예상밖으로 생긴 아이문제다. 전형적인 청춘물의 발랄함과 산뜻함, 퐁퐁 튀는 가벼운 핑크색감으로 영화 전체를 도배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10대 (그것도 중학생)의 임신 문제를 별다른 문제 제기나 의식 없이 만화적인 화법으로 예쁘게만 그리고 있다. 아무리 성의 개방으로 이러한 문제를 넘어간다고 해도 구닥다리 386세대인 나로서는 무조건 재미나고 볼 만한 영화라는 평은 못하겠다. '요즈음 10대를 이해 못하면서 무턱대고 비판만 할 것인가?' '옛날 같았으면 애를 두세명은 낳았을 나이다." 하는 식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는 이 영화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사회의 어른이다."라는 논리는 이 영화를 보는(논리를 찾기 위하여 진지하게 봤다)내내 눈을 씻고 봐도 영화 속 어디에도 없었다. <어린 신부>가 흥행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내 사견으로는 감독이나 출연 배우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어린 신부>는 안방용 영화정도 된다고나 할까. 극장용으로는 관람료가 아까운 영화였다. 그럼에도 <어린 신부>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주연 여배우로 나온 문근영이라는 신선한 컨셉을 이미지 홍보에 잘 활용했을 뿐이다. 이렇게 말을 해 놓고 보니 감독에게 아주 혹평을 가하는 관객으로 돌변하는 모양새다.

흥행 성적은 더 나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임상수의 '눈물'도 아니고 장선우의 '나쁜영화'도 아니다. 10대의 로맨스 판타지 영화에 청소년의 임신 문제를 이상하게 가볍고 경박하게 끼워넣은 어정쩡한 영화이며 10대들의 1회용 호기심을 자극하는 최고의 상업적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내가 기특하게 여긴 대목이 있다면  그래도 어린 애들이 낙태하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겠다는 아이들과 이를 말리며 낙태를 하라는 어른들사이의 갈등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임신한 아이들에게 제시한 부모의 해결책은 유학이며 아이들은 "우리는 아이도 낳고 공부도 할거다. 그럴려면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너무나 당당한 요구를 한다.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 와 '게임 잘 하는 남자 아이'의 애정 행각은 임신한 뒤 약간의 당황함을 거치고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게 돈 많은 부모들에게 기대고 능력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걱정하기 보다는 쪽팔려서 어이없는 현실을 받아 들인다. 그리고는 출산 후에는 애는 부모에게 맡기고 서울대를 가야 한다며 다그치는 제니와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하는 주노의 모습이 나올 때쯤에는 이 영화의 황당무계한 가벼움에 허허 웃음이 나온다. 감독은 원래 이 영화를 낙태 반대의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제니와 주노의 1시간 30분짜리 이야기에서는 어디에도 청소년의 임신과  추후 문제에 관한 진지하고 성의있는 내용은 만날 수 없었다. 오버가 심했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참고로 호적상 혼인의 절차를 거치려면 16세부터가 법적으로 혼인신고가 가능하고 18세 미만이면 양가 부모의 동의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며 살까? 영화에서는 다행히 능력많은 부모들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현실속의 미성년자 부모들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문제는 분명 대단히 큰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직 사회학적인 성분으로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보다는 경제적 자립을 하기에는 많은 제약과 혼란과 힘겨움이 따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냉엄함의 현실은 인터넷 소설에서 대히트를 쳤던 청소년 러브로망의 환타지를 아름답게 보기만 하려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고로 스물다섯살의 사무실 막둥이는 "재밌어요. 귀엽고요"라며 이 영화에 관한 소감을 내게 피력해 왔던 것이다. 물론,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들은 귀엽고 예뻤다. 그들의 능력많은 부모로 출연한 배우들의 오버연기도 볼만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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