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Shall We Dance



 

 

 

 

 

 

 

 

 

 

곡명 : The Pussycat Doll -Sway

나는 지금도 혼자 춤추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무용강습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고, 무용시간에 무용 선생님의 수업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었을 뿐이었지만 무용시간을 손꼽아 기다렸고 당시에 폴모리아 음반으로 처음 그 이름을 접했던 이사도라 던컨 흉내를 내며 그녀의 갸녀린 몸매와 불꽃 같았던 맨발의 춤을 기억해내곤 했다. 그렇게 춤을 좋아했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무용반에 들 수 없었던 가장 큰 난관은 키가 작다는 것이며 키가 작다 보니 율동이 주는 유연한 곡선의 실루엣도 볼품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학교 다닐때만 하더라도 뒷 자리에 앉을만큼 키가 컸던 나는 중1때부터 2년여간 병을 앓으면서 성장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고, 중3이 되자 번호 이동성은 앞번호로 훌쩍 당겨져 있었다. 덕분에 그토록 열망하던 무용반에 들어가지 못했고 죽어라 하기 싫었던 과학반에 반강제적으로 가입되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회식이 끝나고 난 후 2차로 몰려간 노래방에서 그동안 숨겨져 온 나의 춤끼(!!)를 적나라하게 공개한 일이 있었다. 그 전에는 노래방을 가는 2차에서 항상 도망쳐 오는 일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직원들과 나이트 한 번 가는 일이 있어도 자리에서 가방 지켜 주기나, 부킹 들어오는 남자들하고 재미나게 수다만 늘어 놓는 모습을 보여 주던 내가 그 날은 직원들에게 충격적인 변신의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그 춤은 탬버린 춤이다. 노래방에 가면 서너개 정도는 비치된 탬버린은 흥을 북돋어 주기에 좋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손에 잡기에도 구조적으로 잘 만들어진 악기다. 탬버린 춤은 손바닥에 탁탁 쳐서 소리를 내는 기본적인 방식이 있지만 그런 기본만으로는 분위기를 주도할 수가 없다. 무언가 충격적이고 강렬한 자극을 주는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경악하며 뇌에 그 자극을 오래 저장 시켜 줄 수있다.

내가 보여준 탬버린 춤은 탬버린을 몸에 부딪쳐서 소리를 내는 탬버린과 몸의 충돌로 빚어지는 육탄 공세인 셈이다. 그러면 몸의 어느 부위에 부딪쳐야 하는가. 팔, 다리, 허벅지, 엉덩이, 머리, 발바닥 등을 리듬에 맞추어 탁탁 쳐 주면서 몸을 함께 흔들어 주는 기교적인 막춤이다. 술에 알딸딸하게 취한 직원들은 예상했던 대로 열광했고 여직원들은 그동안 조용하던 나의 평소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 경악을 하며 춤의 전수를 요청하기도 했으며 후문으로 들리던 소문에는 예전에 업소에서 알바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난무했다고도 하지만, 사실 그 날밤의 현란한 나의 탬버린 춤은 티브이에서 답습한 것이 고작이다.

그 이후로 노래방에 몰려가는 회식의 끝자리에서 두어번 더 육탄적이고 도발적인 나의 탬버린 춤쇼가 있었지만 의도하지 않은 춤은 흥도 나지 않고 몸만 피곤하게 만든다. 무엇이든지 마음이 정해져야 즐거운거지, 남들의 압박에 의한 보여주기는 당사자에게도 고역이 되는 일이고, 보는 이들도 왠지 미흡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수가 있다. 탬버린 춤 말고도 내가 보여준 춤쇼는 스카프나 넥타이를 이용한 조금은 야한 포즈를 연출하기도 하는 춤이었지만 지금은 전설의 춤이야기에 묻히고 말았다. 나의 춤이 전설의 이야기가 된 이유는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나이트에 단체로 우르르 몰려 가거나 노래방 가는 일에 참가하는 일이 없기 때문인데, 전설은 희소성과 신빙성과 과거성으로 뭉쳐져야 빛을 낸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진짜로 본격적인 춤을 배워볼 요량으로 룸바, 차차차, 살사같은 고난이도의 춤을 한 번 배워보고 싶은 계획을 잡고 이 지방의 무용 학원 정보를 뒤진적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낙후된 문화시설과 배경을 지닌 이 지방의 열악한 문화환경은 한가한 아주머니들이나 아저씨들이 부킹에 목적을 두고 배우는 무슨무슨 무도학원 같은 곳이 달랑 한 군데 있었을 뿐이다. 춤바람난 그들이 낮시간에 열심히 배우는 사교춤은 밤시간이 되면 인근 카바레를 실습현장으로 삼고 있는데, 우리나라 중년들의 춤문화가 어긋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시장 바구니를 들고 나온 가정주부들이 대낮에 극장용 두꺼운 커텐이 드리워진 밀실의 무도회관에서 외간 남자와 끌어안고 춤을 추다가 경찰의 단속에 걸려 혼찌검이 나는 웃지못한 일까지 다반사였고, 그들의 은어로 "촬영 나간다."는 한 마디 말로 춤추러 가는 저녁 시간은 몸단장에 치성을 들이고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남의 배우자와 은밀한 만남을 즐기는 재미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가정이 파괴되는 비극적인 결과까지 낳는 중년의 춤바람. 왜 우리는 근사하게 그 한순간만을 춤으로서 즐기지 못하고 이리 되는 것일까. 몸과 몸의 접촉의 유혹은 마약보다 강하다. 그래서 심약한 나는 이사도라처럼 혼자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경기도 안성에서 웃는 돌 무용단을 운영하는 홍신자 선생은 나이 서른이 다 되어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은 몸으로 춤을 시작했고, 공옥진 선생은 자신의 한을 풀어 보고자 꾸불꾸불 인생역정같은 끈적한 춤을 춘다. 차이코프스키같은 유명한 음악가와 원 없는 사랑을 나눈 이사도라도 맨발로 홀로 춤추기를 즐겼고, 북으로 간 최승희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인기 속에서도 홀로 춤을 추며 자신의 외로움을 달랬다. 인류에게 주어진 언어에는 문자와 음악과 바디 랭귀지가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법문이 있다면 문자는 버리기 위하여 읽어야 하고, 음악은 듣고 정돈하기 위하여 들으며,춤은 왜 있는가. 살아서 생명이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보여주는 언어가 춤이라면 춤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언어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금 내 몸은 돌 덩어리보다 더 딱딱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이 아닌가 싶어진다. 짐승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럽다. 아, 춤이나 한판 출까보다. 인생 거 뭐 별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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