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제니와 주노 15세 임신이라구?

어제 퇴근을 하면서 우울한 기분을 떨쳐 보려고 오랜만에 비디오 대여점엘 갔다. 주말이니 당연히 볼만한 건 벌써 외출중일텐데....들어가서 신작과 구작을 얼씬거리자니 주인 아주머니는 별로 재미없어 보이는 일본 영화를 한 편 골라준다. 중년의 사랑이 어쩌고 하는것 같은데, 아니, 내가 그렇게 시들한 중년처럼 보였던가? 말도 안돼!! 요새 일에 치이고 질질끄는 감기때문에 팔딱팔딱 뛰는 모습을 잃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날 그렇게 기운없는, 재미없는 고객으로 본다는 건 기분이 상할 일. 그래서 약이 올라 5백원짜리 할인코너에 가서 일부러 기웃거리는 시늉을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권하던 일본 영화를 침이 튀도록 말하다가 말고 내가 방향을 전환하자 이내 시큰둥한다. 오백원짜리 코너에도 잘만하면 건질만한 영화가 간혹 있다. 그곳에서 만났던 영화로는 '그랑블루', '더티 댄싱', '라스트 모힌칸', '양철북'등이 있었다. 운좋게 만난 기억이 있던 나는 어제도 오백원짜리 할인코너를 기웃거리며 쓸만한 녀석을 한 놈 낚아챌 요량으로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했다. 바로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바로 옆의 신작 코너에 다섯개가 쭈욱 나열된 '제니와 주노'

아하, 이게 요즘 애들의 때이른 사랑 이야기를 다룬 그 영화란 말이지? 근데, 15세 관람가다. 15세라, 그렇다면 중학교 이상의 연령이 되어야만 볼 수있다는 얘기인데 초등학교 애들이 봐서는 안될 장면이 나오나? 우리 사무실에 스물 다섯살의 막둥이가 이 영활 얘기해 준것이 기억난다. 아무렴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막둥이의 대화는 당연히 소통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면 깜찍한 이 영활 보고 나도 스물다섯살의 그녀와 한 번 소통을 해보자. 그런데 <어린 신부>의 김호준 감독이다. 에이, <어린 신부> 별로였는데....잠시 갈등을 하다가 오백원짜리 할인코너에서 별 반 소득을 얻지 못해 결국 낙찰된 <제니와 주노>를 가방에 집어 넣고 나오다.



비슷한 나이 또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성춘향과 이몽룡 커플을 현대의 이 어린 연인들과 비교하는 일은 좀 무리가 있다 싶은게 내 결론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간의 오랜 반목과 권력 쟁탈전이. 춘향전의 경우에는 변학도라는 못된 라이벌과 부패관리의 폭정이 있었다면 '제니와 주노'속의 커플에는 뜻하지 않게 예상밖으로 생긴 아이문제다. 전형적인 청춘물의 발랄함과 산뜻함, 퐁퐁 튀는 가벼운 핑크색감으로 영화 전체를 도배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10대 (그것도 중학생)의 임신 문제를 별다른 문제 제기나 의식 없이 만화적인 화법으로 예쁘게만 그리고 있다. 아무리 성의 개방으로 이러한 문제를 넘어간다고 해도 구닥다리 386세대인 나로서는 무조건 재미나고 볼 만한 영화라는 평은 못하겠다. '요즈음 10대를 이해 못하면서 무턱대고 비판만 할 것인가?' '옛날 같았으면 애를 두세명은 낳았을 나이다." 하는 식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는 이 영화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사회의 어른이다."라는 논리는 이 영화를 보는(논리를 찾기 위하여 진지하게 봤다)내내 눈을 씻고 봐도 영화 속 어디에도 없었다. <어린 신부>가 흥행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내 사견으로는 감독이나 출연 배우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어린 신부>는 안방용 영화정도 된다고나 할까. 극장용으로는 관람료가 아까운 영화였다. 그럼에도 <어린 신부>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주연 여배우로 나온 문근영이라는 신선한 컨셉을 이미지 홍보에 잘 활용했을 뿐이다. 이렇게 말을 해 놓고 보니 감독에게 아주 혹평을 가하는 관객으로 돌변하는 모양새다.

흥행 성적은 더 나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임상수의 '눈물'도 아니고 장선우의 '나쁜영화'도 아니다. 10대의 로맨스 판타지 영화에 청소년의 임신 문제를 이상하게 가볍고 경박하게 끼워넣은 어정쩡한 영화이며 10대들의 1회용 호기심을 자극하는 최고의 상업적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내가 기특하게 여긴 대목이 있다면  그래도 어린 애들이 낙태하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겠다는 아이들과 이를 말리며 낙태를 하라는 어른들사이의 갈등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임신한 아이들에게 제시한 부모의 해결책은 유학이며 아이들은 "우리는 아이도 낳고 공부도 할거다. 그럴려면 어른들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너무나 당당한 요구를 한다.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 와 '게임 잘 하는 남자 아이'의 애정 행각은 임신한 뒤 약간의 당황함을 거치고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게 돈 많은 부모들에게 기대고 능력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걱정하기 보다는 쪽팔려서 어이없는 현실을 받아 들인다. 그리고는 출산 후에는 애는 부모에게 맡기고 서울대를 가야 한다며 다그치는 제니와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하는 주노의 모습이 나올 때쯤에는 이 영화의 황당무계한 가벼움에 허허 웃음이 나온다. 감독은 원래 이 영화를 낙태 반대의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제니와 주노의 1시간 30분짜리 이야기에서는 어디에도 청소년의 임신과  추후 문제에 관한 진지하고 성의있는 내용은 만날 수 없었다. 오버가 심했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참고로 호적상 혼인의 절차를 거치려면 16세부터가 법적으로 혼인신고가 가능하고 18세 미만이면 양가 부모의 동의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며 살까? 영화에서는 다행히 능력많은 부모들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현실속의 미성년자 부모들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문제는 분명 대단히 큰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직 사회학적인 성분으로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보다는 경제적 자립을 하기에는 많은 제약과 혼란과 힘겨움이 따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냉엄함의 현실은 인터넷 소설에서 대히트를 쳤던 청소년 러브로망의 환타지를 아름답게 보기만 하려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고로 스물다섯살의 사무실 막둥이는 "재밌어요. 귀엽고요"라며 이 영화에 관한 소감을 내게 피력해 왔던 것이다. 물론,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들은 귀엽고 예뻤다. 그들의 능력많은 부모로 출연한 배우들의 오버연기도 볼만했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