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즈마리 > [영화] Mr. 히치

Mr. 히치



hitch 라는 말은 속어로 '결혼'이라는 뜻이 있다. 윌 스미스의 이 별명은 그의 직업에 대한 힌트, 그리고 후에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가 그에게 비꼬는 말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재밌는 역할을 한다. 서구에서는 사실 그리 흔치 않던 일종의 '중매쟁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의 직업에는 몇가지 룰이 있는 것 같다. 첫째, 모든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마력에 빠질 충분한 마음의 빈틈이 있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을 낚아채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셋째, 단, 진실한 사랑이어야 한다.

물론 그의 직업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두번째 룰에 의해서다. 이 때문에 히치는 그의 여자친구로부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빌미가 된다. 아니, 누구에게로부터든 오해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사랑이란 어떤 기술(skill)이 가미된 것이 아닌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아주 미묘한 아이러니를 안고 출발한다.

우리는 기술적인 사랑이 아닌 순수한 사랑을 원한다. 하지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 영화는 윌 스미스, 즉 촌닭같고 서툴었던 사랑의 상처를 딛고 사랑의 의사(love doctor)가 되어 기술을 전수하는 사람과, 사랑에 완전초보인데다 뚱뚱하고 매력이란 눈꼽만치도 보이지 않는 한 남자의 평행구조로 이루어진다. 윌 스미스는 이 남자가 돈많고 아름다우며 유명한 한 여자에 대한 사랑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진척을 위해 힘쓴다.

그의 방식은 흥미롭다. 그의 가르침에 여자로서 나 역시 깊이 공감했다. 가슴만 보지 말고 여자의 말을 들을 것. 그리고 그 말에 반응을 보일 것 등등. 여자는 자신을 SEX의 대상으로 보아주기 보단,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좀 더 재밌는 건, 러브 닥터인 그 역시 초짜라는 것. 그가 주의깊게 계획한 것들은 어딘지 모르게 핀트가 안 맞거나 실수 투성이. 그가 가르치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 엉망으로 춤 추고, 소스를 흘리고, 갑자기 크게 휘파람을 불지 않나.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그 실수들, 그 빈틈이 사랑을 진실하게 하고, 여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결국, 러브 닥터란, 본래 지닌 그 모순 때문에 용서될 수 있다. 순수한 사랑은 기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실된 모습, 그 사람 자체로의 모습에서 이끌어져 나온다는 것. 어쩌면, 진실한 사랑만 엮어주겠다는 그의 룰 자체가 그의 직업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던 게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도 역시 그것이었다. 우리 마음의 이율배반. 사랑은 순수하고 그 사람 자체로 드러나길 바라면서도, 여전히 뭔가 기술적인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 뚱뚱한 남자가 윌 스미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여자와의 사랑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러브 닥터의 중요한 일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하는 것. 바로 자신감을 갖는 것일 터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다가갈 때, 그리고 자신의 실수조차 너그러이 받아들여주는 진실한 여자를 만났을 때,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연이 아닐까.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였다.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로 생각했는데. 역시 사랑에 완벽한 선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완벽한 선수라면 더 못미더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진실된 사랑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기술적'이었다는 것으로 자신을 농락한 것처럼 여겨지는 건 또 왜일까.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길 바라면서도, 그 사랑이 기술적이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 재밌는 지점이다.

내 생각에, 사랑엔 선수란 없다. 사랑을 경험해보았든 아니든, 그 기간이 짧았든 많았든, 경험이 많든 적든 간에, 우리는 모두 사랑 앞에선 어느 정도 초짜, 언제나 속수무책인 것이 아닐까.

H's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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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돌이 > 매력적인 그녀 노다메

오랫만에 만화를 봤다.

 

 

             바로 요것, [노다메 칸타빌레]

 

 

9시에 애들재워놓고 보기 시작했는데 손에서 놓을 수 없게 재밌다. 나야 음악에는 영 문외한이지만 그걸 관두고도 참 매력적인 만화다.

전형적인 일본만화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자상한 멋진 왕자님과 엄청난 천재성을 가지고있지만 아직은 천재성이 발현되지 못한 중구난방의 여주인공.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일깨우고 사랑을 키워가는... 뭐 대충 이런 스토리지만 그래도 이 책의 여주인공인 노다메는 참 매력적이다. 너무나도 단순하고 순진한 그녀...(여기서 순진하다는건 뭘 모른다는 얘기와도 통하겠지..)

어쨌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요리든 춤이든 등등 뭔가 한 분야를 전문주제로 잡고 만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일본만화는 참 탁월하다. 그리고 그 뻔한 스토리들조차 막대한 조사와 공부로 새롭게 변주해내는 그들의 능력... 그래서 어떨 때는 좀 식상하다 싶으면서도 그들 만화의 위력에서 내가 아직도 못벗어나는 것이리라...

노다메 칸타빌레 12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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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야야툰 - 설 명절 부부가 봐야 할 섹스만화
야야툰 - 비빔툰 에피소드 1 ㅣ 문지 만화 1
홍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올(2005년) 설맞이 KBS "TV 책을 말하다"의 주제는 "올 설에는 가족들에게 책을 선물합시다"라고 한다. 서구에서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가 가족 중심의 행사라면 아무래도 우리에겐 설과 추석이 그 격에 해당한다. 그러다보니 설명절 주제로  '가족들에게 선물할 만한 책'이 주로 선정되는 건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가족을 주제로 한 책의 저자들이 출연한다고 하는데, '이 한장의 사진'(박완서, 이호철등 저)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이중섭 저)'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윤영무 저) '아버지의 바다'(김연용 저) '비빔툰 1-5'(홍승우 저) 등이 그들이다.(음, 원래 이 서평은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요새 너무 바빠서 어제 방송을 이미 해버렸다. 물론 난 그 시간에 "해신 " 보느라고 "TV, 책을 말하다"를 못 보고 말았지만, 흐흐)

 "비빔툰"은 예전에 서평으로 한 차례 다룬 적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 읽기에 참 좋은 만화책이다. 그런데 이 때 "TV, 책을 말하다"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형, 아우 그게 전부인가? 아니다.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존재가 있으니 그건 바로 부부다. 예전에 김규항과 홍승우를 비교하며 이 두 사람이 지닌 힘의 근원은 솔직함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솔직함에는 차이가 있다고도 했다. 김규항의 솔직함은 외부를 향한 시선으로부터 발생하지만, 홍승우의 솔직함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밖을 향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말하자면 양자의 솔직함 가운데 홍승우의 그것은 자신의 약한 고리를 자청해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면 정직하다고 할 수 있다.

요사이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여러모로 궁리를 많이 해보는 중인데, 궁리 끝에 몇 권의 책을 읽고 또 다른 이들의 여러 견해를 살필 수 있었다. 성매매는 그것을 지칭하는 용어만큼이나 다양한 입장과 견해들을 가지고 있는데, 창녀, 윤락, 매춘, 매매춘, 성판매, 성매매, 성구매, 성노동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물론 앞서 "창녀"부터 "매매춘"에 이르는 용어들은 전근대적이거나 성매매의 본질을 남성적인 시각으로 은폐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리어 적나라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무리 다양해 보여도 본질적으로는 한 가지 사실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의 여성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약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본질은 그러하다고 해도, 이에 대한 해법은 진보와 개혁, 수구와 보수를 바라보는 시각차와 이에 대한 해법 만큼이나 복잡하다. 전에 언니네 운영위원인 "권김현영" 씨의 글 "인터넷에서  페미니스트들에게 질문하는 법"이란 글을 마이페이퍼를 통해 올린 적도 있지만, 여성주의(페미니즘)라고 해서 단일한 대오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이들 사이에서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각은 본질적으로 같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풀어내는 해법에 대한 생각은 동일할 수 없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의 시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이런 시각차를 일일이 논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내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급진적 페미니즘에선 결혼을 궁극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성매매 제도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가족(가정)이란 남성중심사회(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제공하는 하나의 매트릭스란 것인데, 호주제 문제에서 보여지듯 이런 매트릭스(母型)는 여성들만 피해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아직까지는 남성들에게 유리한 체제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만 살펴봐도 역시 그렇다. 이제 며칠 있으면 설이고, 우리네 설은 서구의 크리스마스처럼 한국식 "가족이데올로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날만큼은 "날 제발 가족에서 빼줘"라고 외치고 싶은 맥컬리 컬킨들이 양산되기도 한다. 그 이름은 "아내"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다(이쯤 오면 내가 아내 혹은 여성에 대한 대단한 이해심을 갖춘 페미니스트 남성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나도 그저 그런 남자일 뿐이다).

"야야툰"은 "19세 이상 구입 가능"한 만화책이다. 전에 "18금" 어쩌구 하는 일본 아니메 책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우리는 18금이 아니라 19금인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19금이므로 서점 진열대에서는 잘 만날 수 없다. 서점 진열대란 것은 예비 독자들로 하여금 책의 내용을 미리 살필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지니는데, 비닐 포장이 된 것들은 책 내용을 살필 수 없으니 진열해둘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알라딘의 도서 분류를 살펴보아도 "성인/성애만화"로 구분되어 있다. 사실 이 작품집엔 이 분류가 아주 적절하다. 성인용으로 만들어진 성애만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19금이란 거다. 난 이 만화를 청소년용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다 읽고 서평을 올리려고 보니 정작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청소년들은 이 만화를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안 볼리야 없겠고, 성인이라 해서 성문제에 대해 청소년들보다 좀더 많은 실전 체험이 있다뿐이지 의식적인 면에서 일취월장한 의식을 지녔을리도 없다.

홍승우의 "야야툰"은 작가 자신의 성고백서 혹은 성체험에 바탕한 작품이란 점에서 카트린 밀레의 "카트린 M의 성생활"과 흡사한 면이 있다. 이 두 작품의 중요한 차이점이라면 카트린 밀레가 여성이고, 홍승우가 남성이란 차이점 말고도 홍승우의 "야야툰"은 성성장(性成長)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성(性)이란 무엇일까? 성이 단순히 남녀간의 성교(섹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건 이제 상식이지만, 동양에서의 성이 서양의 섹스와 젠더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동양에서 성은 마음심과  날생의 합성어이며, 섹스 이전에 인간의 본성 즉, nature를 의미한다는 사실이 간과된다. 그런 점에서 홍승우의 "야야툰"이 본질적으로 여성해방적인 측면을 지닌 작품이라고 단언하기는 곤란할 수 있지만, 인간해방적인 측면을 지닌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모두 하고 있습니까? (1995, Getting Any?)"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영화이지만 제목만큼은 죽여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모두 하고 있는데, 모두가 아닌 척 하는 일상의 성에 대해 홍승우는 만화적인, 아니 만화이기 때문에 차라리 용납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성에 대해 자못 용감하게 발언한다. "야야툰"은 두 가지 이유로 계몽적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성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그릇된 판타지(일부 작품은 동성애에 대한 이성애자의 관점)에 대한 것을 불식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한 소년이 성인이 될 때까지 겪게 되는 성의 성장사를 다룬다는 점이다.

그의 낯익은 캐릭터들 "정보통과 생활미"는 이 만화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상대방(타인 혹은 이성)이다. 홍승우는 이 만화에서 여성캐릭터인 "생활미"에 대해 섣부르게 이해하는 척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솔직한 욕구와 입장을 확실히 드러낸다(그렇다고 이 입장이 여성들이여! 제발 남자를 알아달라, 이해해달라는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란 점이 이 작품집의 매력이다). 103쪽에서 정보통은 침대에서 "우리 할까?"라며 활미에게 말한다. 활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보통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만 준비 좀 하고"라며 귀에 리시버를 꽂고, 워크맨에 카세트 테이프를 장착한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시작하자구". 만화는 여기까지가 한 쪽을 이룬다. 다음 장인 104쪽에서 만화는 입을 가리고 신음을 참는 활미가 등장하고, 삽입된 지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교성을 질러도 난 당신을 정숙한 여자로 생각한다우."

29쪽의 내용은 더욱 적나라하다. "오늘하자"란 제목의 이 단편에서 활미는 회사에서 일하는 보통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빨리 들어와. 나 오늘 되게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런 뒤 내용은 회사에서 퇴근하고, 이 두 내외가 섹스에 진입하는 단계까지를 보여준다. 모두 4쪽에 걸쳐 보여주는 내용은 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이 샤워를 하고(물론 작품상으로는 생략되어 있지만) 이번엔 활미가 샤워를 하고, 남편의 성기를 살짝 만져주고는(이 때 홍승우는 의성어 "물캉"을 동원해 정보통이 아직 섹스할 준비가 안 되었음을 암시한다), 다시 젖은 머리를 말리기 위해 물러난다. 잠시 후 아내가 옷을 벗고 다가 온다.

하단부 컷 화면 좌측으로부터 아내 활미의 유두가 팽팽하게 서 있고, 침대에 누워있는 보통의 눈자위가 붉다. 활미가 침대에 벌렁 눕는다. 눈치없는 혹은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다음 장면에 뭔가 있을 거란 걸 알 수 있다. 그것이 홍승우 만화의 재미, 흥미 유발 장치이자, 고조 국면이다. 다음 장면을 보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한 장을 넘겨야 한다. 당연히 이 대목에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자, 다음 장을 넘겨보자. 화면은 상하 두 컷으로 분류되어 있다. 활미는 홀랑 벗고 드러누워 말한다. "준비 됐어. 어서...." 그리고 아래 화면에서 활미가 말한다. "애무해줘." 이때 아내 활미의 몸은 봉제인형처럼 그려진다. 그리고 홍승우가 지문을 통해 개입한다(정보통이 홍승우의 페르소나란 건 말 안해도 알 수 있으리).

어느 책에서 보니까 이런 글이 있더군요. "애무는 여성만이 받는 것은 아니다." 라구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성인에 이르기까지 보통의 남성들은 여성들보다는 다소 완만한 성징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성의 초경으로부터 폐경(혹은 완경)에 이르는 과정처럼 확연히 드러나는 신체의 변화가 드물기 때문에 생긴 오해일 수 있지만, 남성들 역시 자신의 신체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성징에 대해 고민한다. 때로는 자살을 고민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의 성기가 발기한 상태에 대해 대개는 일률적인 해석을 내려 버린다. 여성의 성기와 겉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해면체로 구성된 남성 성기의 정맥혈이 충만하는 것을 흔히 발기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발기는 일종의 충혈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남성이 성관계를 갖기 위해선 반드시(?) 발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남성의 발기현상을 그대로 성적인 욕구의 발현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관계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 아기들에게도 발기현상은 일어난다. 즉, "발기 = 섹스 욕구"로 받아들이는 건 오해라는 거다.

정보통이 최초로 경험한 성적인 만족감은 운동(놀이) 시간에 기둥타기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된다. 성기가 기둥에 밀착하게 되면서 최초의 성적인 쾌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소년들은 발기 현상을 그대로 성교와 연결짓지 않는다. 남성의 제2차 성징인 "몽정"이 있기 전에도 발기 현상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교 무렵(요새는 더 빨라졌겠지만)이면 주변 친구들에 의해 성적인 자신감을 포장하는 것으로 남성성을 시험받게 되고, 이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성적 자신감은 곧잘 타인에 대한 자신의 우월로 귀결된다. 남학교에서 혹은 남녀공학이라도 배후에선 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노골적으로 오간다.

예를 들어 33쪽의 "아, 씨발 어제 다섯 번 딸 쳤더니 졸라 피곤하네" 같은 말은 횟수로 자신의 성적인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과장은(물론, 십대 시절 다섯 번의 자위행위가 꼭 과장은 아닐 수 있지만) 사정했을 때, 자신의 정액이 천장에 붙어 버렸다던지 하는 식의 정력과시가 함께 곁들여지기 마련이다. 만화 "이나중 탁구부"의 에피소드들은 분명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중학교의 남학생들 경우엔 이와 흡사한 얼토당토 않은 에피소드가 가능한 분위기와 재미난 일화들 한두 가지쯤은 경험하게 된다(최소한 나는 경험해봤는데, 같은 반 급우를 여러 친구들이 붙들고 바지를 끌어내리는 장난 같은 것들은 전염성이 꽤 강하다). 이제 막 사타구니에서 거웃이 자라나기 시작한 중학생 시절의 성적인 이야기들은 고등학생 시절보다 훨씬 더 만화적인 판타지일 경우가 많다. "야야툰"은 그렇게 정보통의 성장사를 다룬다.

기시다 슈는 "성은 환상이다"(이학사)를 통해 남성의 성인식이 기본적으로는 환상(판타지)에 기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설파하고 있다. 홍승우는 "야야툰"을 통해 이 실체를 조금씩 해체해서 보여준다. 지금의 남학생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단 한 차례도 성교육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여성이 일정한 연령대에 이르면 월경을 하고, 아기는 섹스를 통해 만들어지며, 섹스에는 수많은 체위가 있고, 아기는 자궁에서 양육되고 산도를 따라 출산한다는 것을 국민학교 4학년 때 이미 알았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는데, 내가 이토록 "잘 까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다락방에 함부로 방치된 여성백과류의 책을 통해서였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이니 누구나 알 것이라는 착각을 종종 한다.

나는 친구들과 임신,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거지로 주장하는 아이들에게 밀려 아기는 항문으로 나온다는 의견에 억지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웃지못할 경험도 있다. 이렇듯 잘 모르니까, 환상은 더욱 커지고, 환상은 때로 여성을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류의 짐승처럼 여기게 만든다. 이미 파시즘이 잘 증명해냈듯 인간은 나와 다른 어떤 류의 생명체 - 성별, 민족, 인종, 종교 등으로 - 를 종종 인간으로 생각지 않거나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하곤 한다. 남성들은 이렇게 여성을 나와 다른 종류의 어떤 존재로, 쉽게 배타적인 존재로 규정해버리곤 한다. 그 결과가 본질적으로는 파시즘적인 폭력과 같은 형태의 청소년 성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적으로 잘 교육받은,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해온 여성의 경우,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능력)와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처하는 능력이 좀더 확보될 수 있다.

나는 주변에 당구 잘 치는 친구들로 인해 입으로는 당구를 300 넘게 치지만, 실제로는 당구를 전혀 못 친다. 성적인 지식과 성체험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정보통은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한동안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그들의 성기로만 보이는 체험을 한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 충격은 또 다른 환영을 낳는다. 마치 당구 80에서 100 넘어갈 무렵의 당구 초보자들 눈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머리통이 당구알(다마)처럼 보이고, 저 머리통의 어느 부위를 밀어치기(오시)로 치면 벽 맞고 스리 쿠션일 텐데 하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33쪽부터 군데군데 색다른 에피소드들이 삽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131쪽까지는 이런 어린 시절의 성체험과 환상을 다룬다. 중학생인 보통은 상추, 햄버거, 벌어진 밤, 조개, 해초, 사과, 호두 등 무엇을 보아도 여성의 성기를 연상한다. 길을 가도 암수 개들이 성행위를 하는 것만 보이고, 이제 환상은 주변의 모든 여성들의 성기를 공상해보는데까지 이어진다. 집에 오니 아, 어머니....  정보통은 "상상하면 안돼, 상상하면 안돼." 하며 제 방으로 들어와 자기 뺨을 친다. 자기 뺨을 친다는 건 스스로 정해논 금기를 넘어섰다는 걸 의미한다. 종종 여성들은 딸 같은 여성을 농락하는 중년 남성들의 심리를 비난한다. 맞는 말이다. 

남성이 여성을, 비록 타인의 딸이지만, 그네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어쩌구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최소한 쉽게 그런 짓을 하기는 곤란할 게다. 하지만 변명 대신에 한 마디 하자면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에게 적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란 어렵다. 너무 확대해석했다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남성들의 심리 안에, 이런 식의 살벌한 경쟁 의식과 이기심은 늘 주입되고 있지 않나? 오누이인 사람들, 특히 누나인 사람들은 남동생을 이기적이라고 욕하곤 한다. 그만 특별히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이라서 이기적으로 길러지는 건 아닐지 한 번 자세히 관찰해보시라. 한국 남성들의 이런 이기적인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 외국 생활에 적응 못하는 이들도 대개는 여성보다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한국은 아직 남자들이 살기에 괜찮은 곳이다. 안 그런가?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지 못할 때, 상대방은 물론 그렇게 바라보는 이, 자신의 인간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승우의 "야야툰"은 소시민적인 깨달음과 반성을 토대로 한 가족육아만화  "비빔툰"의 가족이데올로기로부터 진일보하고 있다. 인터넷이란 기술의 진보는 화장실 낙서만 없앤 것이 아니라 빨간책의 존재 자체도 희미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어딜보나 심지어는 스스로 정론이길 다짐하는 언론사 사이트에서조차 예술을 가장한 외설 게시판들이 함께 뜨는 현실에서 성은 더이상 어른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도처에서 성이 팔리고, 포장(환상)되는 데 누구도 나의 성생활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성은 더욱 거대한 환상이 되고, 이 거대한 환상은 좀더 크고, 힘차게 쭈욱쭉 뻗어갈 것이다.  

성매매특별법 이후 남성의 본능에 대해 - 남성은 성욕을 참을 수 없으며, 일정한 시기 안에 반드시 사정을 해야한다. 성매매가 없었던 시대와 나라가 있는가 - 이야기하거나, 성매매가 금지됨에 따라 성병이나, 강간 등의 병폐가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남성의 본능(이기적이고 참을성이 없으며)에 대해 나역시 별로 부인하고 싶지 않으며, 성매매특별법이란 법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실제로는 단속을 엄격하게 실시함으로써 유발된 현재의 협박 아닌 협박들이 실제로 일정기간 동안 증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최근 우리는 몇몇 사례들을 접하고 있는데, 한 가지는 성병의 일종인 XX바리가 증가하고, 성매매특별법의 허술한 측면을 찾아 자위행위를 보조해주는 유사성매매가 있었다는 것, 동남아 일대로 떠나는 홀로남들의 여행(sex tourism)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는, 혹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글쎄, 이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 혹은 전세계 어느 국가도 특출한 묘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성매매 금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든, 이를 부분적으로 허용(성노동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든 상관없이 최소한 외연적으로 성매매를 긍정하고 있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인정하는 나라들도 성매매여성을 피해자 혹은 약자로 규정하여 성판매자(여성)는 처벌하지 않고, 성구매자(남성)에 한해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쌍벌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성매매를 성노동의 차원에서 허용(성판매여성의 생존권 보장 차원이든, 실제로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성을 매매가능한 것으로 보든 간에 상관없이 여성부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성매매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한다고 해서 성매매의 발생원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크게 보장되지도 않을 것이란 점이다(물론 사각화된 부분에서 벌어지는 성매매에 비해 노동으로 인정받게 되는 경우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등의 약간의 권익신장은 기대되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성인식이 현재 수준의 답보상태로 머물고 있는 동안 누가 성매매여성노동자라고 자청해서 노조 활동을 하겠는가?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조차 지탄받고 있는 마당에).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남성의 자연적인 욕구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욕구를 여성에겐 순결이데올로기, 가부장적 체제로 강요하기 때문(이때 말하는 "가부장적 체제"란 말에는 마르크스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억압에 일조하고, 강화하는 시스템이란 뜻도 내포한다. 하지만 성매매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성착취제도란 점에서 자본주의적 문제만은 아니다) 이다. 만약 남성들의 이런 욕구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면, 배타적 섹스파트너(부부)를 가지고 있는 중년 남성들보다 미혼 남성들이 성구매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터인데, 실제 성구매자들은 기혼남들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은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이 사안의 결론이 성매매 근절만으로 논의될 때,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여러 논의들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신이 요구해서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성매매가 성매매여성들의 요구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그나마 성매매 근절에 일정정도 성공하고 있는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볼 때, 성매매 정책의 핵심엔 여러 층위를 지닌 여성주의자들의 매매 근절, 성노동 주장이나 성매매 여성, 성매매 근절을 추진하는 정책당국의 문제가 아니라 성구매 남성들이 문제라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이 사안을 두고, 일부 남근주의 언론은 역시 "여성의 적은 여성이었다"는 식의 관전평을 늘어놓으며 흐뭇해 한다. 물론, 이 문제를 남성 개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여, 개개인의 윤리의식, 도덕에 책임을 묻게 할 순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이 남성들에게 혹은 남성 중심 사회의 이데올로기들에 있음(일상의 정치투쟁이란 점에서 남성 개개인에게 책임이 있음)을 간과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원인을 놓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언제나 같은 말이지만 여성이 해방되어야 남성인 나도 함께 구원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깊고 넓은 이해를 통해 논의를 지속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결론 부분에 가서 홍승우의 "야야툰"과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어보고 성매매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본다면 궁극적으로 가족, 부부의 문제(혹은 자녀의 성교육)가 성매매 문제와 결코 외따로이 떨어진 문제가 아니란 나의 고민에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섹스, 동성이든, 이성이든 간에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평등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일어나는 '영혼의, 혹은 몸의' 대화가 되어야 하며,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도 부응하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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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정복기의 여정은 어느새 끝을 보이고 있다.물론 내 여정은 계속 제작되고 있는 영화들에 비추어 볼때 아직도 멀고 멀은듯한 그런 거리감이 있지만,,내 기준에서 볼때 상당히 먼 길을 달려온듯 하다..자 한번 남은 영화들을 볼까..미션 석세스를 위해..다이어리에 써두려 한다..먼저 빅 3..주먹이 운다,혈의 누,댄서의 순정..이  영화중 주먹이 운다는 이번주에 볼것이고,,,댄서의 순정은 7월 출시작이다..혈의 누도 7월정도에 나올걸로 보고 있다..그리고 이어지는 남극일기,자카르타,연애술사,엄마,아나키스트,인터뷰...여기까지가 내 영화목록에 올라와있다..일본영화로 넘어가보면 검은물 밑에서,인랑,환생,연애사진,바람의 검 신선조,키즈 리턴등이 내 시선을 끈다..이중 인랑,환생,키즈 리턴은 조만간 볼 생각이다...뭐 저중에서 검은물 밑에서를 비디오로 빌려볼 가능성도 높다..중국 영화로 가보면 무간도 시리즈중 무간도2,3를 정복해야 하는 상황이다..그외에 집으로 가는길,메이드인 홍콩도 있다..집으로 가는길은 6월내로 볼 생각이다..메이드인 홍콩은 가까운 비디오점에서 먼지를 먹고 있지만 다음달이든 군대가기전이든 내 손에 쥐어쥘 날이 있을것이다..자 이제 정복하고 싶은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외국 영화..에비에이터,스내치,헐크,파인딩 포레스터,패닉룸,어바웃 슈미트,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것,더게임,패치 아담스,저지걸,볼링포 콜럼바인,데드 얼라이브,얼라이브,유브갓 메일,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더티댄싱 하바나 나이트,네고시 에이터,제8요일,레드 드래곤,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존큐,더홀,분노의 질주,내셔널 트레져,네버랜드를 찾아서 등이 내 영화목록에 있다..세어보니 25개정도 되는데,,과연 이걸 얼마나 시간을 두고 봐야할지는 미지수다..뭐 내 평소 보는대로 나가면 7월까지면 다 보지 않을까 생각된다..내일은 6월 6일..빨간날이다..이런 날이 있어 그나마 학생들에겐 한달을 버틸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이제 잔말은 그말하고,,내일은 어느새 다가오니,,또 잘 시간이니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내일은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한다..그놈의 실기인지 살기인지 어느새 다가오는 시험땜에 또 연습을 해야한다..다음주엔 기말고사다..이번주엔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대략 알려줄것 같으니,,열심히 학교생활에 임해야 할것같다..평소엔 안 임한다..ㅋㅋ..쥬얼리의 슈퍼스타를 듣다가 한번 가사를 써본다..그대를 힘들게 한날은 잊고,,잊지는 마,기억해둬..그댄 바로 슈퍼스타..바로 그거다..힘든일 같은건 얼른 잊고,,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우리들이 바로 진정한 슈퍼스타인것이다..너무 힘들다면 지금 어떤것도 일에 잡히지 않는다면 쉬어가면서 하자..너무  바쁘게 달리는 인생에 끼어서 힘들어 하지 말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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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들어서 기분이 좋다면,,여름방학이 온다는 것이고,,또 안 좋은게 있다면 그 방학전에 시험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내가 그런거에 벌써부터 신경쓰는 사람이던가..또 벼락치기로 갈게 뻔하다..중간고사때도 벼락치기로 해봤지만,,대학교 시험은 벼락치기의 위력이 그리 크게 발휘되지는 못하고 있다..어저께 언제나 그렇듯 영화를 봤다..마파도의 비디오 출시에 얼른 비디오 가게에 다녀와서 어제 밤 느지막히 봤다..내 기대가 컸을까..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에 사람들이 많이 봤다던 마파도가..나에겐 그닥 재밌지 않았다..물론 이문식의 연기가 그나마 날 웃음짓게 했고,,할매들의 구수한 입담과 괴기스러운 행동들이 언뜻보면 정감있는 미소로 화답할수 있는 요소라 할수 있겠지만,,내가 기대한건 그것보다 더 재밌는 상황과 폭소였는데,,그것에 비하면 상당히 내 기대에 어긋나는 영화였다..마파도를 노래를 부르며 비디오를 기다렸건만,,왜 그렇게 관객동원력이 뛰어났는지는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음이다..그러나 다음주엔 다를거라 생각한다..개봉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눈여겨 봤던 주먹이 운다의 비디오 출시가 이번주다..금요일에 나온다는데..주먹이 운다는 내 영화욕구를 채워줄 영화라고 충분히 생각되어진다..오늘은 일요일..화창하다 못해 더워서 돌아가실것 같은 햇빛의 위력으로 손부채로 버텨보다 결국 선풍기의 버튼을 누르게 된다..너무나 더운 날씨..그리고 다음주에 실기가 있어,,썰기 연습과 조리를 해야 하는 주말인만큼..불쾌지수는 제법 올라가 있다..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단테스피크를 보고..또 밤에 영화를 하나 골라서 볼 생각을 하니 그나마 버틸만하다..영화로 더위를 이기는거..내가 자주 취하는 방법이다..더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전쟁에서 이기고 있을거라 생각하며,,짜증날땐 짜장면,우울할땐 울면,,탕탕탕탕 탕수육을 먹어보자..더위 먹으니까 내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이제 그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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