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줄리 > The Notebook

꽤 전에 본거구 감상문도 어딘가에 끄적여 놓던것이다. 그냥 정리 차원으로 올려놔야겠다.

난 1930-40년대의 미국 배경인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역사를 몰라서 그런지 그런 시대가 나오면 저랬겠구나 하는 동감이나, 저건 아닌것 같은데 라는 의심조차도 할수 없다는게 싫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당시가 회상이고 현재가 주인 액자소설식을 택해서 그런건지 내가 모르는 시대가 배경인 이야기여두 보는데 별로 지장이 없었다.
영화는 현재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에게 한 할아버지가 노트속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노트속의 1930-40년대 이야기가 결국 영화의 내용이다.
한 여름 상류층 딸이 자신의 여름별장에서 지내면서 평생 육체노동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야 할 그런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딸의 부모,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이 그들을 결국 갈라놓게 만든다.... 하지만...
내용을 요약하려고 하면 울나라 드라마나 영화속에서 쉽게 볼수 있는 상투적인 내용으로 밖에는 안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상투를 상투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말되나?). 세련되게 라면 말이 될려나. 하여간 느낌이 다르다. 주인공들이 살아 있다고나 할까?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연속과 단절이 그저 그녀의 부모나 상황이 만들어내는 운명의 비극이 아니다....
장면들, 그리고 그속의 인물들, 그녀의 약혼자였던 완벽한 남자, 그리고 그녀의 엄마, 아빠 또한 그저 그들을 둘러싼 들러리가 아닌 살아있는 인물로 사실적으로 그려진게 맘에 들었다.

현재로 와서 그녀는 현재의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자신의 가족마저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녀 옆에는 그녀의 기억을 찾게 해주려고 그녀의 젊은날의 이야기가 써있는 노트북을 읽어주는 그녀의 남편인 할아버지가 있었다. 난 처음에는 이 할아버지가 남편인줄 모르다가 알게 되었을때 가슴이 뭉클해졌다.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누군가의 일생의 한부분, 가장 critical 한 부분을 보는 것은 늘 긴장이 되면서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시간을 지내고 난 오랜 후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다. 어떤 모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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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줄리 > 한국영화를 몰아서 보았다.

시월애, 거짓말, 효자동 이발사, 발레교습소, 집으로, 이렇게 5편을 한꺼번에 몰아서 보았다.

좋았던점 : 한국영화의 다양한 소재들을 맘껏 감상할수 있어서 좋았다.
나빴던점 : 점심을 라면으로 때워가며 봐서 건강을 해쳤을것 같다. 그리고 보는 틈틈히 컴 정리를 했는데 겨우 두 폴더쯤 정리했나싶다.

시월애 :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잔잔한 사랑의 느낌을 펼쳐나간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2년 차이의 두 시간대에 있는 두 사람이 우체통을 통해 편지를 교환한다는 구성이 참신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그 우체통이 있던 바닷가집의 몽환적인 분위기, 여자 주인공의 고향인 제주도의 그 아름다운 바닷가를 보면서 쓸쓸한 아름다움이 저런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지현의 그 자연스러운 긴머리와 이 영화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헐리우드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사갔다고 하는데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된다.

거짓말 : 뭐 더 할 말이 필요있을까 싶다. 그냥 포르노군... 이 말이면 되지 싶다. 내가 무삭제판을 봐서 그런가? 장선우의 과감함에 새삼 놀랐다. 그리고 그 여자 주인공의 대범(?)한 연기를 보면서 감탄보다는 걱정이 되었다는게 맞다. 그런 일 진짜 세상에서는 별로 아니 거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건 영화지, 그리고 거짓말인 영화일뿐이라고 보련다....

효자동 이발사 : 보는 내내 말도 안되는 상황들과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헛웃음과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과장일지라도 저런 비슷한 일들이 울나라의 역사속에서 진짜로 일어났었고 우리도 그 시대의 동참자였던 사실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어찌 효자동 이발사뿐이랴.. 그 암울한 시대에서 벌벌 떨며 마음 조리며 그저 꼭두각시들처럼 살아야 했던 사람들 말이다. 그 시대를 버티면서 앉음뱅이가 되어야 했던 효자동 이발사의 아들이 결국 걸을수 있게 되는 마지막이 위안이 되었다. 힘든 시대를 살아내며 묵묵히 정성을 다해 아들의 걷기를 위해 애썼던 효자동 이발사의 인내가 그것을 이루었으리라. 우리가 지금 예전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시대를 살수 있는건 효자동 이발사와 같은 많은 사람들 덕분이리라...

발레 교습소 : 애들 성장 영화는 싫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저 그런 아이들(세상 눈에), 아무 고민없이 별 생각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낭비하면서 사는듯한 그 아이들도 할 말이 있고 또한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하며 진지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감독의 시선이 따뜻하다. 변영주 감독이 괜찮은 여자, 아니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영화가 나오면 꼭 봐주리라 마음먹었다. 단지 내가 지나온 나이라고 해서 고만한 아이들을 보면 어린것들, 철도 없는 것들, 도대체 뭐가 되려고... 라는 식의 걱정도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던(직접은 아니더라두 속으로라도) 나를 반성했다. 어떤 나이든, 어떤 상황의 아이들이건 그들도 그들의 의견과 생각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

집으로 :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김을분 할머니가 연기자가 아닌 진짜 할머니라는 사실이 그랬고, 그 할머니의 진짜 삶도 영화속 삶과 마찬가지로 고단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구부러진 허리로 손자에게 맛난것을 해주시려고 움직이고, 시장에 나가 캐간 나물을 파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늙는다는 것, 그리고 가난하다는 것... 그 철없던 손자가 할머니를 생각하고 걱정하기 시작하는 감동이상으로 내마음을 무겁게 한 주제이다.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들에게 바친다고 한 마지막 글귀에 그만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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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줄리 > 인간극장-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제는 회사에서 오후에 좀 한가하기에 케비에스에서 하는 인간극장을 봤다.

소제목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였는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서른 초반의 부부가 전라도 무주의 산골에 들어가 사는 이야기였다.

신선하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시골이라도 멋진 펜션식으로 편하게 지어놓고 사는것두 아니구 화장실까지 푸세식(물론 머리를 써서 환경친화로 바꾼 형태이긴 하지만) 인 전형적인 산골 농가에서 자연을 벗삼아, 또는 이겨내며 살고 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옆집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책을 보면서 배워야 하는 아마추어 농촌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부지런하게 살고 있었다. 그냥 멋부리는 시골 생활은 아니었다.

둘은 그 어린나이에 득도를 한것일까? 어쩜 그렇게 욕심없이 자기네들이 가진 그 속세의 편안함을 다 내버리고 그렇게 살수 있을까? 보는 내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남들의 끊임없는 부추김에 그들이 계속 자기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이 든다. 자꾸만 살얼음에 애들을 내어 놓은 부모같은 마음이 드는것은 왜 인지 모르겠다.

너무나 아름다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두사람의 모습, 그들이 좋아하는 통창밖의 그 아름다운 풍경보다 더 아름다왔다. 그런 모습이 영원할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한가보다. 산사에서 오래 산 득도한 맑은 스님의 얼굴 모습을 그들에게서 봤다. 그들의 대화 또한 어떤 드라마속의 사랑의 속삭임보다 더 애틋하고 성숙하게 들렸다.

시부모님 생신에 드릴 곶감을 직접 만들며 기뻐하고, 안입는 옷을 이용해서 다른 옷을 만들고는 행복해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다 행복해졌다.

그들의 산골에서의 삶이 아름답게 보인 이유는 그들이 모든 속세의 욕심을 버린 상태로 너무나 행복하게 보였기 때문일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도 걱정 안하고, 자신의 옷이 아니다 라고 생각한 모든 허울들을 과감히 벗어버린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득 문득 나두 그렇게 살고 싶다. 그들처럼 진짜 산골로 들어가 가는 일은 아닐지라도 많은 것 벗어 던지고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린 남들이 규정해 놓은 남들이 말하는 성공에 좌우되어서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게 뭔지도 모른채 그냥 그냥 남들처럼 사는거지 하면서 급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적어두 나는 늘 남들이 그려주는 나의 모습과 내가 그려야 할 나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사니까...

난 잠시 동안, 모습은 말할 것두 없고 사는 모습, 마음까지 아름다운 두사람을 보면서 행복할 수 있었다. 티비에 노출되었기에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마음 고생이 그들에게 없었으면 좋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속세의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그런 부분을 멋지게 기우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 그 마음으로 그 아름다운 산골에서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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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줄리 > 세편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아무도 모른다
여자, 정혜

이렇게 세편의 영화를 봤다.
세편의 영화는 느낌이 비슷하다. 사실적이라는데서. 그리고 살아간다는게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는데서 말이다.

난 픽션보다는 난픽션을 좋아하고 드라마보다는 다큐를 좋아한다. 영화는 잘 만들어진 것은 어떤 장르든지 좋아하지만 우리 일상속의 인물들을 클로즈업한 느낌이 드는 사실적인 영화들에 더 애정이 간다.

아무도 모른다. -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일단 시작할때 이 영화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라는 말때문에 그애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것 같다. 힘들다는 말도 안하고 너무나 그 상황에 자연스러워진 아이들이지만 바로 그 사실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펐다. 애들이 누려야할,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누려야만 할 기본적인 행복조차 박탈당했던 그 아이들이 불쌍했다. 아이들을 버린 그 엄마를 원망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난 그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는 행복해지면 안되니?' 라는 말로 면죄부가 될수는 없다. 그녀는 왜 그녀만 행복해지려 했을까? 같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으면 안되었을까 싶어서였다. 특히 몇년전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본 여자의 일때문에 이 영화가 특히 더 사실처럼 다가왔다. 21살의 어린 여자애가 어학연수를 왔다가 캐나다 남자를 만나 같이 살다 안살다 하면서 애를 둘씩이나 낳았다. 그리고는 그남자는 그녀를 버렸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났는지, 아니면 파티를 전전하며 다녔는지 몇일동안 집에 안들어왔고, 애 우는 소리때문에 그 집에 들어간 경찰은 애가 굶어죽을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 녀의 큰애 서너살 되었던 아이는 근처 시내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추방이라는 결론과 함께 잊혀졌던 사건이었다.
어쨌거나 영화는 아이들의 그 버려짐조차 웬지 낭만적이게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연기가 자연스러워 그랬는지 모르겠다. 난 그래서 잠시 속았다. 난 영화를 보면서 슬펐지만 그애들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찾아본 이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되었던 사건은 역시 현실은 영화가 아니구나 라는 걸 실감하게 해주었다. 감독은 그 사건을 보고 너무나 충격을 먹은 나머지 그냥 묻어두고 그 사건을 다시 재구성하고 싶었던건 아닌가 싶다. 실제 이야기는 잔인한 불행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극이었다. 책임감이 있던 큰애가 사실은 라면 하나때문에 동생을 죽이기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엄마도 애 하나를 죽여 집안에 숨겨놓기까지 했다.
영화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 그중에 아이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가슴시리게 느껴져 지금도 눈물이 나올려고 한다. 밖에 나가고 싶어 애쓰고 물이 없는데도 베란다에 키우는 화초에 물을 주는 아이... 산다는 것... 엄마에게 버림받은 그애들에게 너무나 힘든 세상이지만 그 애들은 그래도 그런 세상속에서 그렇게 살고 싶어 했다...

고양이를 부탁해 - 여자감독의 영화라 그런지 여자들, 젊은 아이들의 절망과 희망을 과장하지 않고 잘 풀어낸듯 하다. 그중에서도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낮은 위치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이는 역할을 맡기로 되어 있는 듯한 여자들의 이야기로 이만한 이야기는 지금껏 없었을듯 싶다. 혹시 감독은 인천의 그 허름한 골목의 한 집에서 자라고 그 아이들 중 하나처럼 여상을 졸업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젊은 나이만으로도 예쁘고 환할것 같은 아이들은 그리 밝지 못하다. 우리가 어릴때는 단 한번도 젊고 모든게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 아이들도 그렇다. 그 나름대로의 심각한 고민이 있고, 그리고 사실 그녀들에게 사회는 그렇게 관대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게 현실이니까. 꿈꾼다고 다 되는것두 아니고 확 트인 길보다는 장애물이 있는 길이 늘 더 가까이 있으니까. 그녀들이 우울한 현실을 넘어 어떤 어른들로 가게 될지 별 장미빛 미래가 그려지지는 않는다. 두 주인공이 잠시나마 그 암울한 현실을 뒤로 하고 여행을 떠나는것으로 영화는 끝나지만 그건 희망의 메시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돌아와 다시 부딪쳐야 할 세상은 그대로일것이기때문이다...

여자, 정혜 - 어릴때 성폭력을 경험한 여자,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직업에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듯 보일수 있겠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일로 인해 분명 사람들과의 관계맺기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때로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할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여자를 안다. 남이 보기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고 남들하고 다르지 않지만 그녀는 지금도 악몽을 꾸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걸 무서워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직업을 구하는 일을 하려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힘들어 한다. 문득문득 자신을 해하고자 하는 자신을 보는게 무섭다고 했다.
정말 무섭다... 폭력이란 절대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선 안된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그 상처에 온 인생을 고통받으면서 살수도 있는것이다. 여자 정혜가 겉으로는 상처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성폭력이 별거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 겉으로 생긴 상처도 아물려면 힘들지만, 안으로 생긴 상처는 제대로 된 약도 없어 치료도 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그런 일은 폭력을 휘두른 사람보다 폭력을 당한 사람이 잘못을 한거구 부끄러운 일처럼 만드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여자, 정혜 이 영화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단지 내가 그런 폭력의 희생자가 아니니 너무 다행이다 라고만 생각하기엔 정혜 같은 여자들의 상처가 너무 크다....

세편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난 지금 머리가 좀 아프다. 아 이제는 좀 막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 뭐가 좋을까? 쿵후허슬을 보고 내가 너무 재밌었다고 하니 내동생이 소림축구를 보면 까물어치게 좋아하겠군 그랬다. 그렇다면 그 영화를 보는게 좋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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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영화 두편

 

러닝머신을 뛴 거리는, TV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걸 하느냐에 달려있다. TV가 재미없으면 달리는 게 지루하고 힘들지만, TV에 빠지면 내가 달린다는 사실조차 까먹게 된다.


1. 6월 3일(금)

밤 10시부터 축구를 했다. 우리집 앞 맥주집은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광화문도 그렇단다. 아무리 그래도 난 3년 전처럼 흥분할 수 없었다. 월드컵 한달을 제외하고는, 축구는 내게 남의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빅게임이 있는 시간에 맞춰 퇴근을 했고-사람이 없으니까-새벽에 축구를 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래도 봐야지” 하고 튼 축구는 너무도 재미가 없었다. 그걸 보면서는 단 1킬로도 달릴 수가 없었기에, 케이블에서 하는 <조폭마누라2>를 보기 시작했다. 케이블에서는 영화를 틀 때 중간광고를 삽입하므로, 그때마다 축구 쪽으로 채널을 돌렸다. 축구가 한숨만 나온 반면,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이 영화가 그렇게 욕을 먹었던 그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기억을 상실한 신은경이 마초 남자들을 혼내주는 장면, 그리고 서민들과 애환을 나누며 지내는 장면은 흐뭇하기만 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웃기려고 삽입한 장면들이 하나도 안웃겼다는 것. 하지만 더 후진 영화가 천지인데, 이 영화에 왜 그렇게 비난이 쏟아졌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계기판을 보니 내가 뛴 거리는 대략 6킬로, 간단한 샤워를 한 뒤 누워서 영화를 봤다. 끝나고 나서 축구로 채널을 돌렸다. 0-1로 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가슴이 찢어질 일이지만, 의외로 담담했다. 난 더 이상 축구팬은 아니었다. 박주영의 동점골에 일어나 환호하긴 했지만.

맥스무비 별점평 4.27


2. 6월 6일(월)

황금의 3일 연휴라지만, 난 그다지 잘 보내지 못했다. 사랑니를 뺀 상처가 도대체 아물지 않았던 탓. 아픔을 이기려고 타이레놀을 때려먹고-왕창 먹는다는 뜻-자고, 깨고나면 또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황금같은 이틀간 책도 별로 못읽은 채, 잠만 잤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밤 10시쯤 러닝머신을 시작했다. 뭘 하나 틀었더니 <역전에 산다>를 한다. 김승우와 하지원이 주연한 그 영화. 이 영화에는 나만 아는 추억이 있다.


어느 사이트에 젊은 영화감독이 글을 올렸다. 자신이 <역전의 명수>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 영화의 감독인 박씨가 <역전에 산다>라는 제목을 붙여버렸다는 것. 영화 내용상 그런 제목이 붙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영화는 <역전의 명수> 말고는 붙일 제목이 없다는 것 등을 들어 그 감독은 박씨가 자신을 물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제목을 택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영화판이란 곳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시나리오를 다 써줬는데도 감독이 지가 시나리오까지 쓴 양 행세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히치코크는 훌륭한 감독이다). 어찌되었건 <역전에 산다>는 흥행에 실패했고, 올해 드디어 개봉한 <역전의 명수>(정준호.윤소이) 역시 관객동원에 실패, 두 편 다 감독의 인생을 ‘역전’시키지 못했다.

이건 역전의 명수

이건 역전에 산다


 

그럼에도 난 <역전에 산다>를 재미있게 봤다. 보는 영화마다 재미있게 봤다니 눈이 있긴 있느냐고 의심하겠지만, 이걸 보면서 러닝머신 9킬로를 쉬지않고 뛰었으니 재미있게 본 건 확실하다. 매력적인 배우 하지원이 자신의 매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원래 존재 자체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배우고, 두 세계를 오가는 스토리도 제법 흥미로웠다. 단점을 찾자면 무수히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좋게만 평가하는 건 내가 심리검사의 CP(chief parent, 지배적 어버이) 점수가 3점으로 기록적으로 낮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거다. 한가지 의문. 그렇다면 내가 혹평한 영화는 도대체 뭐야?? 참고로 맥스무비 별점평은 역전에 산다 5.47, 역전의 명수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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