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대답을 못한 것을 공자가 추궁했다. 자로는 왜 공자에 대해 대답을 못했을까? 자로는 공자를 더 위대한 모습으로 설명하고자 했으나 공자가 생각하는 스승의 상은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고 30세에 섰다는 것은 규모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40세에 불혹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50세 지천명은 변곡점이고 60세, 70세는 완숙되어 가는 경지였다. 지천명이란 인간의 삶이 생각대로 영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사람이 하는 영역이 있고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사람의 일을 다 해야만 실망하거나 미련이 남지 않게 된다. 천명을 알게 되면 여유있게 삶을 대하게 된다. 지천명에서부터 이순, 종심욕구불유구가 가능하게 된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둔 이후로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말하고 싶어한 것 같다. 공자는 잘 가르치는 모습이 아니라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스승에게 보여주는 최소한의 예물이 속수다. 속수는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으려는 마음의 징표다. 공자는 그것을 중시했던 것이다.
온고이지신은 어떤 사람이 스승이 될 만한가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동일한 것이 변하기 이전이 고이고 변한 이후가 신이다. 이 변화는 지적인 작용과 관계있다.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동력이 온이다. 온은 식지 않도록 계속해서 데운다는 뜻에 가깝다. 배움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가해서 새로운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 스승인 것이다.
공자는 배움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승이 되었다. 스승이 없었던 공자가 스승이 된 것을 보고 제자들은 공자가 태어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을 생이지지자가 아니라 옛을 좋아해서 누구보다 민첩하게 구한 사람이라고 했다. 공자는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서 배웠다. 스승이 없다는 악조건을 승화시킨 데에 공자의 뛰어남이 있다.
술이부작이란 말이 참 공자다운 말인데 작은 창작이다. 창작이란 없던 것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술이란 있던 것을 좀 더 보완해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공자가 했던 모든 말은 옛 사람이 했던 말을 자기화해서 전해주었을 뿐이다.
조문도 석사가의, 그 정도로 도를 듣는다는 것이 가치있다는 뜻이다. 인간다운 삶의 길이 가치있으며 그런 길이 있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 멋대로 가려고 한다.
군사부일체. 아버지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임금은 나를 장성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스승은 나를 가르쳐준 분이다. 스승은 나의 생물학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스승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스승은 도를 전수하고 학업을 제공하고 미혹을 풀어준다. 개인이 아니라 도를 스승으로 삼는다.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계신 곳이다. 전통사회의 위계질서는 나이와 지위가 결정한다. 그러나 도를 알고 사는 것은 나이와 지위도 중요하지 않다. 전통사회에서 스승을 임금과 아버지와 같은 지위로 본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규정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