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널은 과학, 20세기에 아주 급격한 과학기술의 변화를 가리켜서 과학 혁명이라고 했다. 꼬이레가 43년에 쓴 논문에서 ‘갈리레오와 플라톤’이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과학 혁명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때 정의가 된 16, 17세기에 과학 혁명이라고 했다. 16,7세기에 과학 전체의 혁명보다 그 분야에 따라서 혁명을 예를 많이 들고 있다. 16,7세기의 과학 혁명은 그 이전의 2000년 동안 내려온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은 사건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을 버리고 전혀 다른 근대적인 과학을 시작하게 한 사건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근본적인 재정위(radical reorientation)라는 표현을 쓴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년-코페르니쿠스는 이 저서를 통해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천명하였다) 나오고 베실리우스는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1543년-총 7권으로 구성된 베실리우스의 저서로 의학 근대화의 새로운 기점이 되었다)라는 책이 나온다. 이게 유명해서 ‘Revolution’, 베실리우스는 줄여가지고 ‘De fabrica’라고 하는데 1687년은 뉴턴의 ‘Principles’,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년에 나온 아이작 뉴턴의 세 권짜리 저작으로 서양의 과학 혁명을 불러일으킨 책의 하나로 여겨진다), 이 두 책이 나온 해이다.

중세의 명상적 지식에서 이제는 근대의 조작적이고 행동적인 지식, 라틴 말로는 'Scientia contemplativa에서 scientia est operativa'이렇게 넘어 간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베이컨의 유명한 말 ‘앎은 힘이다’ ‘Scientia est potentia’라는 말, 그게 바로 근대적인 지식을 상징하는 말이다. 과학 혁명의 결과 교회는 완전히 유럽의 구심점이었던 지위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과학에게 내주게 된다. 그래서 과학 혁명 이후에는 과학이 교회를 대신해서 유럽 문명의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과학 혁명의 결과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이 무너지고 근대 과학은 플라톤(BC427~BC347-그리스의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철학적 대화편의 저자이다)과학이 그 기초를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질적인 것이 양적인 것으로 바뀐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의 수학화다. 고대의 세 가지 전통이라고 한다면 수학과 마술로 대표되는 플라톤, 질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으로 대표되는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원자론 이 셋이 경쟁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원자론은 일찍 탈락하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싸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겨서 지배를 해오다가 과학 혁명의 결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몰락하고 플라톤이 득세를 하는 것 그것이 질적인 것에서 양적인 것으로 넘어간 것을 뜻한다.

자연을 기계로 보는 관점이 이제 자리 잡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계적 철학의 지배다. 이건 철학에서는 잘 안 쓰고 과학사에서 만든 말인데 기계적 철학은 간단히 말해서 모든 것을 물질과 운동으로 설명하는 경향이다. 'matter in motion', 물질과 운동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굉장히 극단적인 기계론 유물론, 뭐 나아가서 무신론까지 된다. 그것이 16, 7세기의 전체의 특징이다. 베이컨에서 데카르트 갈릴레오에 이르기까지 거의 다 이런 경향을 갖고 있다. 궁극적인 설명을 버리고 즉각적인 기술을 택했다. ultimate explanation을 버리고 immedial scription을 택하는 것이 과학혁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시대에는 물체가 하늘에서 왜 떨어지느냐면 물체 속에 형상이 있다. 이데아 같은 것. 그 궁극적인 원리 비슷한 것이 있어서 물체의 고향인 땅으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다. 어떻게 떨어지느냐? 어떻게 속도가 변하느냐? 그것을 알고 그것을 측정하는 것이 갈릴레오의 과학이다. 그러니까 왜에서 어떻게로 달라지는 것이 과학 혁명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 혁명의 특징이다. 상식적인 경험을 버리고 추상적인 이성을 택한 것이 과학 혁명이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를 버리고 플라톤의 추상적인 이성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적인 과학을 플라톤의 양적인 과학으로 바꿔놓은 것, 그게 수학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기계로서의 우주, 기계적인 우주관은 그 조상을 따져 본다면 그리스 철학에서 셋이 경쟁하면서, 원자론, 데모크레이토스에게서 온 것이다.

방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새로운 과학의 방법을 내놓았다. 소련에서 온 물리학자인 보리스 게슨은 영국의 부르주아들이 항해 그리고 광산개발이라던가 이런 여러가지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는데 그것을 해결 하려면 뉴턴 물리학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 그런 사회경제적인 배경 때문에 뉴턴 물리학이 나왔다는 것. 로버트 K.머튼은 첫째 명제가 뭐냐면 당시 영국의 Puritanism, 청교도주의가 상당히 그 특이한 교리를 갖고 있었는데 뭐라고 할까 그것이 아주 실용적이고 행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공리적인 이런 특징을 가졌다. 완전히 사회와 격리된 지적인 사건으로 보는 사람이 내적 접근인데 이 접근에서 대표적인 것이 꼬이레인데, 꼬이레는 이것을 두 가지로 정의했다. 하나는 공간의 기하학화(Geometriction de l'espace), 그러니까 이게 플라톤적인 우주관을 받아들인 결과 공간을 정성적으로 질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어떤 경향이다. 근데 그것은 결국 피타고라스, 플라톤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또 하나는 코스모스의 해체(Dissolation de Cosmos)로 우주는 그냥 우주가 아니라 질서 있는 우주라는 뜻이다. 지적인 태도의 변화, 지적인 변형 또는 지적인 돌연변이, 플라톤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결과 과학 전체도 달라졌다는 것이 내적인 접근이다. 그런 단계에서는 사회의 영향이 있다는 것, 과학이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과학이 발달해 가지고 수준이 높아지고 자리가 잡히면 패러다임이 확립이 되고 그렇게 되면 이게 사회로부터 고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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