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9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영화 <범죄도시>를 보고 참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들도 그렇고 연출도 그렇고 우직하면서도 코믹하고 인간적인 예의와 배려를 놓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느꼈을까를 이번에 혼불 9권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토록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힘 속에 우리네 근원적 심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 사대부가의 자제로서 동경 유학생인 강호가 호성암 스님 도환과 함께 사천왕을 비롯한 불교의 세계와 단군 신화가 맞닿는 지점으로 안내한다. 절의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의 조상은 그 무시무시한 위세에 질려서라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데, 예로부터 사천왕 불사를 하는 이유가 호법과 호국에 있었음을 새삼 일깨우면서 일제 말기 명맥을 이어가던 저항 운동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았을 때 대장경 불사를 일으키고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어 민족의식을 고취해 국난을 극복하려 했던 것처럼 도환 역시 사천왕 신앙과 단군 신화의 연결을 통해 민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려는 것이다.

도환의 설명에 따르면, 제석천은 환인이고 사천왕은 환웅이고 인간은 단군왕검이 된다. 천계에서도 인간계와 가장 가까운 사천왕천을 다스리는 사천왕(환웅)은 도리천을 다스리는 제석천(환인)의 아들로서 인간계(조선)에 직접 내려와 인간(단군왕검)을 낳고 지상천국을 건설한다. 그만큼 하늘과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고 하늘의 꿈을 간직한 사람이 조선 사람이다. 그래서 사천왕의 모습에는 어질고 바른 조선 사람의 심성과 얼이 투영되어 있다. 무시무시한 사천왕상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산천을 닮은 푸근한 익살과 해학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어우르는 넉넉함이라고나 할까.

마음은 몸의 바탕이고, 몸은 정신활동의 바탕이고, 정신활동 자체가 곧 신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에서 불계에 이르는 열 가지 단계인 십계가 모두 하나의 마음 작용이란 의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제석천과 아수라의 전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듯이 일본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조선의 힘 역시 조선의 마음을 되찾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돌멩이 하나에도 깃들어 있고, 사천왕상을 빚은 장인의 손길에도 어려있는 다른 듯 닮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알아 보아야 우리의 땅과 문화를 사랑하고 지킬 수 있다고 강호와 도환을 통해서 작가 최명희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무섭고 사나워도 어질고 귀여우며, 조악해도 어리숙한 이 사천왕과 악귀 죄인 형상들의 달라도 닮은 해학이 눈물겨워, 강호는 한바탕 이들을 끌어안고 창자가 훑이도록 웃음을 터뜨리며 뒹굴고 싶어진다.
알겠다……알겠다……내 이제 알겠다.
알아본 마음을 하염없이 저 묵묵한 흙덩이 가슴에 문지르며 울고도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