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딘 eBook ]토지 03권 - 박경리 - 사실 두 사나이는 용이의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기는 하나 그의 슬픔을 공감할 수는 없었다. 아니, 강청댁의 죽음 자체가 이들에게는 마치 일상다반사같이 무감동하게 바래 봬졌던 것이다. 그것 참 안됐네, 하며 조의를 베풀 상황이 아니었다. 시시각각으로 발소리도 없이 다가오고 있을 병마,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덮쳐올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재앙 앞에 마을 전체는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집집에서 병자의 신음이 들려올 것이다. 시체는 줄을 잇고 마을 뒷산으로 떠날 것이다. 아니, 시체를 거둘 사람조차 없을 만큼 마을 전체를 휩쓸고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이십여 년 전 잊었던 악몽은 보다 강한 빛깔을 띠고 사람들 가슴속에 절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