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아담의 오류-던컨 폴리의 경제학사 강의(던컨 폴리 지음, 김덕민/김민수 옮김, 후마니타스, 2011.05.02.) 

 지난 달 신간추천 페이퍼를 작성할 때부터 눈여겨봐뒀던 책인데, 이 책이 아슬아슬하게 5월 출간도서에 속하는 바람에 한달을 기다리다가 이제야 추천하게 되었다. 최근 몇년 사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쉬운 해설서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그 이전에는(그것이 불과 몇년전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새삼 놀랍지만) 대학교 1, 2학년생들이 쉽게 이해할 만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에 관한 해설서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던컨 폴리의 책을 누군가 번역한 파일이 손에서 손으로 돌면서 읽히곤 했었는데, 내가 봤었던 것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관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누가 봐도 이해할 만한 방식으로, 참으로 명쾌하게 쓰인 글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이 나왔으면 하고 바랐었다. 

 그만의 장점이 이 책에도 적용되었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경제학사 전체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르크스의 경제학에 대한 서적이 많이 출간되었고, 많이 읽혔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독자적인 경제학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 비판으로 존재한다는 점이 간과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던컨 폴리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경제학사를 검토하는 것이야말로 경제에의 이데올로기인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본령을 밝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데리다 평전 (제이슨 포웰 지음, 박현정 옮김, 인간사랑, 2011.05.20.)

 흔히 '해체의 철학자'로 불리는 데리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는 20세기 지성사가 '종합'되어 있다. 

 

 

 

 

 

 

 

통치성과 자유 (사카이 다카시 지음, 오하나 옮김, 그린비, 2011.05.25.) 

 인지자본주의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통치당하고 있는가? 조정환의 <인지자본주의>와 이 <통치성과 자유>는 동일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조정환의 책이 '자본'에 대해서, 즉 생산과 재생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 책은 '통치'에 대해서, 즉 지배와 저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다. 사실 현 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한다면, 모든 것들은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지자본주의>가 지난 달에 선정된 김에 이 책 역시 함께 선정돼서 같이 다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1492년, 타자의 은폐 (엔리케 두셀 지음, 박병규 옮김, 그린비, 2011.05.20.) 

 그린비의 트랜스 라틴 총서의 다섯 번째 책. 이 책은 "타자의 은폐"라는 제목과 달리 "타자"를 발명하는 유럽적 사고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그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은 타자의 관점, 즉 억압받고 수탈당했던 이의 관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1492년은 상징적이다. 그들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타자를 발명'한 것이다. '타자를 발명'했다는 것은 '타자를 타자로서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동일자로 은폐'시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이 바로 근대성이라고 한다.   

 사실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이제 지겹도록 수행됐다는 느낌이 있다. 근대성이 극복되느냐 안되느냐를 떠나서 이런 '지겨움'은 그 자체로 매우 무서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그런 근대성 비판이 서구의 최신 이론의 세례를 통해 형성된 조류이며, 그런 고답적인 논의구조 속에서 오히려 구체적인 물적 존재는, 그러니까 근대성의 최대 피해자이며 피-수탈자였던 그런 물적 존재와 삶들은 오히려 은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물적 삶과 언어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역사'의 형식을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최신 지성의 살아있는 말보다 영어 한마디 할줄 몰랐던 남미의 어느 원주민의 죽은 말이 더 생생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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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1-06-1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데리다 평전을 추천했는데.. 괜스레 막막한 기분입니다. 이번 책이 너무 어려워서... 한 달 쉬어가는 책 없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 2011-06-12 11:4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같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 생각하면서도 추천 페이퍼 쓸 때는 욕심이 앞서 버리는 것 같아요.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다른 사람처럼 열정적인 독서가도 아니고, 성실하게 서재를 가꿔온 것도 아닌데, '이제 열심히 책 읽기로 한 것 나도 한번 신청해볼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9기 신간평가단에 지원했다가 덜컥 뽑히고 말았다.  첫 번째 미션, 3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 만한 신간도서를 선정하는 과제조차도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이러다 또 망칠라.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주목 신간도서를 선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3월이 특별히 주목할 만한 책들이 많이 발간된 달도 아니지만,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넘쳐나는 법이다. 그 중에서 5권만 추려내는 것은, 유난히 우유부단한 나로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읽고 싶은 책의 목록에서 한 권, 한 권 지워나가려 했지만 차마 잘 지워지지 않는 책들로 목록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작업은 제자리 걸음만 하다가, 과감하게 기준을 세웠다. '내가 추천한 도서가 선정될 수도 있는데 괜히 욕심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책들을 골랐다가 낭패를 볼라'하는 걱정에 내 능력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만 고르기로 했다.  

  그래도 어렵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겨우 선정한 도서는 이렇다. 

 

1. 언어의 감옥에서-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서경식, 돌베개, 2011.3.28.)  

  서경식의 책들은 제목으로 사로잡는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제 목에 이끌려 책을 훑어보면 그제야 서경식의 책인지 알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언어의 감옥에서>... 대체 무엇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언어를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며, 무엇이 그를, 그리고 우리를 언어라는 감옥의 '수인'으로 만드는가.  

  일본에서 나고 자랐으나,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았고, 그러나 조선어를 박탈당하고 일본어를 모어로 부여받음으로 모든  사고와 표현을 일본어로 해야 하는...  

  그는 자발적인 '경계인'이 아니라, 강제된 디아스포라, 말 그대로 '추방당한 이'다. 언어는 벽이 아니라, 감옥이며, 단절이 아니라 은폐다. 따라서 그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때, 우리는 그의 독자가 되어야만 한다. 

 

2. 문자와 국가-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8(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b, 2011.3.30.) 

  첫째 도서에 이어 공교롭게도 둘째 역시 일본어로 쓰여진 책이다. 위 책이 소수자임을 자처하는 재일조선인이 쓴 것이라면, 이 <문자와 국가>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사상가가 쓴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원서 제목은 <전전의 사고>였으나 국내에는 전전(戰前)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말에 저자가 직접 <문자와 국가>로 제목을 변경했다고 한다. 네이션, 국가, 문자(서경식에는 문자가 아니라 언어이지만) 등 공교롭게도 앞서 고른 서경식의 책과 상당한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특히, 책 소개에 나와 있듯이 고진은 강연자로서도 명성이 자자하니 강연집이란 형식에 특히 기대가 되기도 한다. 

 

3. 꾸리찌바 에필로그(박용남, 서해문집, 2011.3.30) 

  대학 시절, 후배들과 생태주의 세미나를 해보자고 무작정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정치철학이나 경제학, 역사 같은 것은 잘 기획된 커리큘럼이 공유되고 있었지만, 생태주의 세미나는 당시 아무것도 없이 막연히 시작한 것이었다. 난 자료를 만들려고 도서관에서 책 수십권을 쌓아놓고 뒤졌다. 좋은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하며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무언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태주의를 논하며 회귀적 혹은 역행적 주장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그런 자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찾지 못한 것이었지만) 

  현 세계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생태적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공감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관점에서 수행되는 비판은 때때로 너무도 무기력해 보이곤 한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희망'이다.  

 

4. 현대자본주의와 장기불황-새움 총서 2(김성구 엮음, 그린비, 2011.3.15)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 이은 새움 총서 두 번째 책이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의 충격 이후에 많은 출판사들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진단하는 책들을 앞다투어 출판했었다. 물론 대중의 관심에 영합하여 성급히 내놓은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공동의 문제의식이 형성되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출판계는 학술과 언론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어떤 학술계, 언론계보다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역시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경제위기 붐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지금, 당시의 충격, 공포, 열광 등을 포괄하여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역할도 맡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출판사와 저자에 대한 믿음 아래, 자본주의 공황론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받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5. 서양 고대 중세 정치사상사(전경옥, 책세상, 2011.3.20.) 

  우리나라 같은 경우 출판계에서 철학 분야 서적에 대한 편식, 내지는 편향이 유난히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인기 있는 현대철학자들에 대한 번역 및 소개는 활발한 반면, 고대, 중세 철학에 대한 국내 연구의 업적은 외면받는 경향이 있다. 출판도 사업인 만큼 시장 논리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현대 프랑스철학자들의 책이 엄청난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닌 만큼 꼭 시장 논리로 설명되는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양의 고대, 중세철학에 대해서는 대중들의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 그 시기 나름의 다양한 사상사적 맥락들이 모두 '죽은 과거의 형이상학'으로 단순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비록 엄밀한 의미의 철학은 아니라 하더라도 국내 연구자가 우리말로 쓴 고대, 중세 정치사상사가 쓰였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이번 신간평가 도서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꼼꼼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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