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다른 사람처럼 열정적인 독서가도 아니고, 성실하게 서재를 가꿔온 것도 아닌데, '이제 열심히 책 읽기로 한 것 나도 한번 신청해볼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9기 신간평가단에 지원했다가 덜컥 뽑히고 말았다.  첫 번째 미션, 3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 만한 신간도서를 선정하는 과제조차도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이러다 또 망칠라.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주목 신간도서를 선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3월이 특별히 주목할 만한 책들이 많이 발간된 달도 아니지만,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넘쳐나는 법이다. 그 중에서 5권만 추려내는 것은, 유난히 우유부단한 나로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읽고 싶은 책의 목록에서 한 권, 한 권 지워나가려 했지만 차마 잘 지워지지 않는 책들로 목록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작업은 제자리 걸음만 하다가, 과감하게 기준을 세웠다. '내가 추천한 도서가 선정될 수도 있는데 괜히 욕심에 내가 감당하지 못할 책들을 골랐다가 낭패를 볼라'하는 걱정에 내 능력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들만 고르기로 했다.  

  그래도 어렵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겨우 선정한 도서는 이렇다. 

 

1. 언어의 감옥에서-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서경식, 돌베개, 2011.3.28.)  

  서경식의 책들은 제목으로 사로잡는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제 목에 이끌려 책을 훑어보면 그제야 서경식의 책인지 알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언어의 감옥에서>... 대체 무엇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언어를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며, 무엇이 그를, 그리고 우리를 언어라는 감옥의 '수인'으로 만드는가.  

  일본에서 나고 자랐으나,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았고, 그러나 조선어를 박탈당하고 일본어를 모어로 부여받음으로 모든  사고와 표현을 일본어로 해야 하는...  

  그는 자발적인 '경계인'이 아니라, 강제된 디아스포라, 말 그대로 '추방당한 이'다. 언어는 벽이 아니라, 감옥이며, 단절이 아니라 은폐다. 따라서 그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때, 우리는 그의 독자가 되어야만 한다. 

 

2. 문자와 국가-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8(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b, 2011.3.30.) 

  첫째 도서에 이어 공교롭게도 둘째 역시 일본어로 쓰여진 책이다. 위 책이 소수자임을 자처하는 재일조선인이 쓴 것이라면, 이 <문자와 국가>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사상가가 쓴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원서 제목은 <전전의 사고>였으나 국내에는 전전(戰前)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말에 저자가 직접 <문자와 국가>로 제목을 변경했다고 한다. 네이션, 국가, 문자(서경식에는 문자가 아니라 언어이지만) 등 공교롭게도 앞서 고른 서경식의 책과 상당한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특히, 책 소개에 나와 있듯이 고진은 강연자로서도 명성이 자자하니 강연집이란 형식에 특히 기대가 되기도 한다. 

 

3. 꾸리찌바 에필로그(박용남, 서해문집, 2011.3.30) 

  대학 시절, 후배들과 생태주의 세미나를 해보자고 무작정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정치철학이나 경제학, 역사 같은 것은 잘 기획된 커리큘럼이 공유되고 있었지만, 생태주의 세미나는 당시 아무것도 없이 막연히 시작한 것이었다. 난 자료를 만들려고 도서관에서 책 수십권을 쌓아놓고 뒤졌다. 좋은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하며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무언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태주의를 논하며 회귀적 혹은 역행적 주장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그런 자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찾지 못한 것이었지만) 

  현 세계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생태적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공감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관점에서 수행되는 비판은 때때로 너무도 무기력해 보이곤 한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희망'이다.  

 

4. 현대자본주의와 장기불황-새움 총서 2(김성구 엮음, 그린비, 2011.3.15)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 이은 새움 총서 두 번째 책이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의 충격 이후에 많은 출판사들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진단하는 책들을 앞다투어 출판했었다. 물론 대중의 관심에 영합하여 성급히 내놓은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공동의 문제의식이 형성되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출판계는 학술과 언론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어떤 학술계, 언론계보다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역시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경제위기 붐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지금, 당시의 충격, 공포, 열광 등을 포괄하여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역할도 맡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출판사와 저자에 대한 믿음 아래, 자본주의 공황론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받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5. 서양 고대 중세 정치사상사(전경옥, 책세상, 2011.3.20.) 

  우리나라 같은 경우 출판계에서 철학 분야 서적에 대한 편식, 내지는 편향이 유난히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인기 있는 현대철학자들에 대한 번역 및 소개는 활발한 반면, 고대, 중세 철학에 대한 국내 연구의 업적은 외면받는 경향이 있다. 출판도 사업인 만큼 시장 논리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현대 프랑스철학자들의 책이 엄청난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닌 만큼 꼭 시장 논리로 설명되는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양의 고대, 중세철학에 대해서는 대중들의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 그 시기 나름의 다양한 사상사적 맥락들이 모두 '죽은 과거의 형이상학'으로 단순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비록 엄밀한 의미의 철학은 아니라 하더라도 국내 연구자가 우리말로 쓴 고대, 중세 정치사상사가 쓰였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이번 신간평가 도서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꼼꼼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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