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1
이디스 워튼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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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정직한 번역체가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일찍 고아가 된 아름다운 여인인 릴리가 결혼에도 실패하고, 친척의 유산상속에도 실패하고, 사교계 안에서 추문에 휩싸이다 결국 노동자로 전락해 남은 빚을 청산하며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 이야기다. 그녀의 개인적인 불행과, 사람 마음이 다 산만하고 혼란스럽다는 부분은 공감하지만, 그녀의 사고방식과 논리회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당시 결혼만이 삶의 전부였던 여성의 한계에 좌절한 비련의 여주인공을 재밌게 풀어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주변 설명이 사교계 등장 인물들 수만큼 너무 복잡하고 장황해서, 한마디로 재미없다.

페미니즘이 자꾸 소설평에 끼어드는데, 망상적인 피해의식이 여성주의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면 어서 완독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우시라. 다만 그 페미니즘 사이에 버사 도싯의 자리는 어디쯤 위치하는지 설명해 보시길….

그녀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릴리 를 맡겠다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기 적인 행동을 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어도 남들 앞에서 이기 적으로 구는 것은 견딜 수 없어 하는 일종의 가식적인 도덕적 겸양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나섰던 것이다. - P70

그녀가 파티의 여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그녀가 남 달리 사람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 속에 있지 않 으면 자신의 삶을 지속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P78

더욱이 교양의 본능은 적에게 곤란을 주는 것보다 적을 이용하는 데서 더 섬세한 기쁨을 경험하는 법이다. - P242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고통은 절반의 고통에 지나지 않듯 질문을 하는 동정심에는 치유력이 있을 수 없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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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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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참 싫어한다.
덮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자성의 소리를 담고 있고, 냄비같은 대중들에게 각성을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과 공감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 준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이끌려 ‘끼리끼리 공감 만 가능해진 지금, - P5

볼 권리나 볼 자격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으로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런 죄악감을 안고도 마 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 P7

어느 분야에서건 수요와 공급은 서로를 북돋고 창출해 낸다. 무엇이 먼저였든, 언론은 오늘도 안방의 브라운 관 앞까지,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앞까지 고통을 질질 끌어다 놓는다. - P10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 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홍밋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 - P16

10.29 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 - P16

온갖 각도에서 찍힌 동영상이 보여주는 정보는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참상만은 아니었다. 이 영상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었던 건 카메라 뒤에서 일어난 일과 카메라 뒤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 P16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는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더불어 촬영자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 P17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다. - P22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P36

피해자의 인권은 범죄가 발생한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는데 사법부가 최대한 지키려는 건 엉뚱하게 도 피의자의 인권뿐인 것처럼 보인다. - P38

날씨가 재해와 연결될 때는 어떻게 하면 ‘가장 위험해 보이는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 춰진다. - P45

카메라는 날씨가 만들어낸 풍경의 평균치가 아니라 극대치를 포착한다. - P45

그럴 때마다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게 뻔한데도, 혹은 느리게나마 변화가 오더라도 여기까지 닿지 못할 수 있는데도 그의 고통을 속속들이 보여달라고 하여 기록하고 알리는 일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염치없 는 일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눈치했다.
그저 고통의 착즙기처럼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있다는 자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접지만 남아빠진 기자스러 운 다짐은 어쩌면 약자에게 목소리를 빼앗겠다는, 그들의 말을 고르고 편집하여 내보낼 권한을 양보하지 않겠 다는 말의 위선적인 버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 P48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 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 P53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통계는 이 기사 저 기사에 인용되며 산업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잘 정리된 숫자 속으로 진짜 이야기 들을 빨아들여 감춰버리기도 한다. - P53

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 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 하는 무례함이다. - P71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나에게 ‘신경 쓰이는‘ 뉴스만이 가장 중요한 뉴스가 되는 것이다. - P84

<공감의 배신>에서 폰 블륨 Paul Bloom이 이야기 했듯,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감은 지금 여기 있는 특정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스포트라이트"와도 같아서 "그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쓰게 하지만, 그런 행동이 야기하는 장기적 결과에는 둔감해지게 하고, 우리가 공감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 는 사람들의 고통은 보지 못하게 한다." - P84

세상의 변화는
연민보다도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으로 발생한다. - P134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고통의 이미지와 관계를 맺는다. 가장 즉각적인 반응 중 하나는 연민이다. 사진 아래 고펀드미GoFundMe 링크, 계좌번호나 이체가 가능한 ARS 번호 등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적혀있다면 우 리는 구원자나 조력자의 위치에서 다소 편안하게 연민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때로 우리가 그들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효능감은 거리감과 정보 부족, 어긋난 문화적 맥락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다. 그러나 포착된 고통이, 이 술한 장벽 속에서 겨우 기록자의 눈에 띄었던 고립된 파편일 뿐이라면 어떤가? - P138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남의 사정 같은 건 없다.
인종과 언어, 계급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통의 무한한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 P141

일단 보도의 영역으로 넘어온 애도는, 더 이상 사적인 애도만이 아니게 되었다. 대형 사고 현장이나 병원 응급 실, 장례식장처럼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장소로 일이 나를 떠밀 때면, 유족을 만나 긴말을 보태고 살을 끓여도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언론사가 판단한 어떠한 이유로 죽음에 대해 세상에 알 리고 싶으며, 당신이 겪고 있는 상실에 대해서도 우리가 찍고 말하겠다는 말. 당신의 고통을 보여달라는 말. - P143

파편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외로운 사적 애도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해 줄 수 있는 일은, ‘왜‘, "무엇을, ‘어떻 계‘와 같은 구성성분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여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 정도다. 공적 애도에서 진상 규명과 책 임자 처벌이 자주 화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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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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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한번 봐야겠다

"제게도 바보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하나도 바보 같지 않더군요." - P5

다정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 나도 전에는 다정에 의식적인 훈련을 필요로 했는데 현재는 자 율신경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딱히 큰 자각 없이도 친절을 베푸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 P79

모든 것이 영원한 세상에 과연 아름다운 게 있을까? 아름다움을 누리는 만큼 허무는 그에 따르는 필수적인 감 정이다. 의미로만 가득한 삶은 되레 무겁지만 않은가. - P191

기억력은 머리가 똑똑한 거랑 관련 없을지도 몰라.
오히려 다정함에 기반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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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복탄력성 (리커버) -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
김주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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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긍정이라는 자기최면을 종용하는 작자들이 살아있다는 현실이 슬프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17p.)이라는 엽기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21세기에도 장애가 불행이고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구시대적 가치관을 자랑하는 사람이 교수로 재직 중이라니 충격적이다. 링컨 대통령의 과거인 시골 변호사라는 직업을 두고 ‘보잘것없는’(11p.) 직업이다라는 편견을 서슴지 않게 드러내는 저급한 도서이다.
특히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에 담긴 위험한 사고방식이 공부의 내적 보상을 간과한다는 점이라고만 말하는데, 이 작자는 직업을 차별하고,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된 직업으로 판단하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나 보다.
본인의 편협한 시각으로 문제의식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운동과 모든 일에 감사하는 인생낙관.
연구라는 것이 그렇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만한 내용을 아주 힘들게 조사하고, 의미없는 숫자를 생산해서 증빙해야 그 상식이 타당성을 갖게 되는 것. 논문으로만 남았으면 다행인데, 책으로 출간해 일반인들에게 소개된 것이 안타깝다.

이 교수에겐 평생 비교의식에 고통받으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행한 인생의 종착지를 찾아 나가길 바란다. 그게 그의 행복일 테니까. 다만 자신의 보잘것없는 편견을 드러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기 전에 자기 자신을 검열하는 습관은 필요해 보인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보다 나은 세상으로 변화되어가기를 원한다면 인간을 독립변수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 다. 물론 사회적 구조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만 바라보면서 모든 탓을 구조로 돌 려서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인간이 정치-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는 지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이 사는 정치-사회적 조건에 어떻게, 언제, 얼마큼 영향을 미칠 수 있 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한 개인이 그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켜가려면 강력한 회복탄 력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 P9

그 어떤 시련도 없었더라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칭송받는 링컨도 보잘것없는 시골 변호사로 생을 마감했 을 것이고, 처칠 수상은 평생 자그마한 사업이나 운영했을 것이며, 이순신 장군은 이름 없는 말단 장군으로 전 전하다가 정년퇴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 P11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 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서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 어도 한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 P28

긍정성을 습관화한다는 것은 뇌를 긍정적인 뇌로 바꿔나간다는 뜻이다. - P36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스스로 민감하게 알아차 리는 뇌를 지닌 사람들이다. 설령 실수를 범한다 해도 실수로부터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들어 있는 뇌를 지닌 사람들이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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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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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쾌하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조금 신기하다. 성인으로서의 첫해를 시작했을 뿐이면서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가장 명징하게 생각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서른보다 마흔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된 지금도 나는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어색한데, - P25

이혼 이후 많은 사람이 내가 실패하길 바랐다. 나를 실패라는 틀 안에 가두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다 르게 나의 사랑도, 인생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이혼은 무엇의 실패일까? 나는 명확히 말할 수 있 다. 이건 가부장제의 실패다. 한 집안의 가부장제가 균열을 일으키다 무너진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이혼이라 는 사건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혼은 한 여성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결혼과 이혼으로 우리를 협박하 고 옭아맬 수 있던 시대는 이미 붕괴되고 있다.
실패한 사람은 없다.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은 오직 퀴퀴한 냄새를 뿜어내는 낡은 사고방식과 제도뿐이다. - P62

이혼 경력직으로서 말하자면, 이혼을 종용하는 건 다른 누군가가아니라 그 가정의 불화다. 누가 나에게 이혼 을 하라고 암만 고사를 지내도 내가 속한 가정이 행복했다면 ‘뭐래?‘ 하면서 보고 넘겼을 것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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