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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기자를 참 싫어한다.
덮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자성의 소리를 담고 있고, 냄비같은 대중들에게 각성을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과 공감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 준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이끌려 ‘끼리끼리 공감 만 가능해진 지금, - P5
볼 권리나 볼 자격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으로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런 죄악감을 안고도 마 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 P7
어느 분야에서건 수요와 공급은 서로를 북돋고 창출해 낸다. 무엇이 먼저였든, 언론은 오늘도 안방의 브라운 관 앞까지,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앞까지 고통을 질질 끌어다 놓는다. - P10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 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홍밋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 - P16
10.29 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 - P16
온갖 각도에서 찍힌 동영상이 보여주는 정보는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참상만은 아니었다. 이 영상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었던 건 카메라 뒤에서 일어난 일과 카메라 뒤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 P16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는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더불어 촬영자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 P17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다. - P22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P36
피해자의 인권은 범죄가 발생한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는데 사법부가 최대한 지키려는 건 엉뚱하게 도 피의자의 인권뿐인 것처럼 보인다. - P38
날씨가 재해와 연결될 때는 어떻게 하면 ‘가장 위험해 보이는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 춰진다. - P45
카메라는 날씨가 만들어낸 풍경의 평균치가 아니라 극대치를 포착한다. - P45
그럴 때마다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게 뻔한데도, 혹은 느리게나마 변화가 오더라도 여기까지 닿지 못할 수 있는데도 그의 고통을 속속들이 보여달라고 하여 기록하고 알리는 일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염치없 는 일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눈치했다. 그저 고통의 착즙기처럼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있다는 자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접지만 남아빠진 기자스러 운 다짐은 어쩌면 약자에게 목소리를 빼앗겠다는, 그들의 말을 고르고 편집하여 내보낼 권한을 양보하지 않겠 다는 말의 위선적인 버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 P48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 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 P53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통계는 이 기사 저 기사에 인용되며 산업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잘 정리된 숫자 속으로 진짜 이야기 들을 빨아들여 감춰버리기도 한다. - P53
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 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 하는 무례함이다. - P71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나에게 ‘신경 쓰이는‘ 뉴스만이 가장 중요한 뉴스가 되는 것이다. - P84
<공감의 배신>에서 폰 블륨 Paul Bloom이 이야기 했듯,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감은 지금 여기 있는 특정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스포트라이트"와도 같아서 "그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쓰게 하지만, 그런 행동이 야기하는 장기적 결과에는 둔감해지게 하고, 우리가 공감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 는 사람들의 고통은 보지 못하게 한다." - P84
세상의 변화는 연민보다도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으로 발생한다. - P134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고통의 이미지와 관계를 맺는다. 가장 즉각적인 반응 중 하나는 연민이다. 사진 아래 고펀드미GoFundMe 링크, 계좌번호나 이체가 가능한 ARS 번호 등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적혀있다면 우 리는 구원자나 조력자의 위치에서 다소 편안하게 연민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때로 우리가 그들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효능감은 거리감과 정보 부족, 어긋난 문화적 맥락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다. 그러나 포착된 고통이, 이 술한 장벽 속에서 겨우 기록자의 눈에 띄었던 고립된 파편일 뿐이라면 어떤가? - P138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남의 사정 같은 건 없다. 인종과 언어, 계급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통의 무한한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 P141
일단 보도의 영역으로 넘어온 애도는, 더 이상 사적인 애도만이 아니게 되었다. 대형 사고 현장이나 병원 응급 실, 장례식장처럼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장소로 일이 나를 떠밀 때면, 유족을 만나 긴말을 보태고 살을 끓여도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언론사가 판단한 어떠한 이유로 죽음에 대해 세상에 알 리고 싶으며, 당신이 겪고 있는 상실에 대해서도 우리가 찍고 말하겠다는 말. 당신의 고통을 보여달라는 말. - P143
파편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외로운 사적 애도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해 줄 수 있는 일은, ‘왜‘, "무엇을, ‘어떻 계‘와 같은 구성성분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여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 정도다. 공적 애도에서 진상 규명과 책 임자 처벌이 자주 화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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